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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18. 2018

1-12. 눈 먼 시계공을 위한 변론

창조론 VS 진화론

그러한 진화론자/생물학자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여전히 창조론을 옹호하며 진화론의 타락과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특히 한국과 미국에). 심지어 미국의 강성 창조론자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과학 시간에 진화론만 배운다며, 학생들의 균형 잡힌 교육과 사고관을 위해 창조론도 과학 교과에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고 소송까지 낸 적 있다. 비록 창조론은 과학 시간에 배울 수 없다는 판결로 끝맺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창조론자들은 어떤 식으로 진화론을 공격하는지 들어보자. 상당히 많은 근거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럴 듯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세 가지만 살펴보려 한다. 우선, 어떻게 우주상수가 현재와 같은 값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만약 우주상수가 현재보다 크다면 우주는 급격히 팽창하여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이고 현재보다 작은 값이면 우주는 다시 점으로 쪼그라든다고 예측한다. 지금과 같은 특정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쪼그라들지도 급격히 팽창하지도 않은 채 적당히 균형을 맞춰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여기에 대해 신이 우주상수를 미세하게 조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우주에는 몇 가지 고정된 상수가 존재하는데 지구의 생명체는 각 상수값에 맞게끔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또한 조물주의 세심한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 창조론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선후관계를 뒤집어 생각한 것이다. 생물의 탄생과 진화 자체가 이미 주어진 우주 내에서 이루어진 사후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생물의 존재 매커니즘은 현재 우주의 과학 법칙 하에서 원활하게 작용하게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생명체가 각 상수값에 맞게 태어나고 적응한 것이지, 우주의 상수값들이 생명체에 맞춰서 조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창조론자들의 다음 근거는 좀 더 까다롭다. 이것은 사실 찰스 다윈이 태어나기 전 윌리엄 페일리가 라마르크 등을 반박하기 위해 제안한 논증이다. 다윈도 여기에 대해 상당히 고전했으며 지금도 창조론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간주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바다를 걷다가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당연히 그 시계가 자연의 작용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계를 만든 시계공의 존재를 분명히 직감한다(생사 여부를 떠나서). 비록 그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더라도 말이다.


이번엔 바다를 걷다가 거북을 발견했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 거북이 자연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것인가. 진화론자라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앞의 사례와 비교해보자. 시계와 거북 중 어느 것이 더 복잡한가. 당연히 거북이 훨씬 복잡하다. 인간은 무에서 시계를 만들 수 있지만 무에서 거북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시계는 자연이 만들 수 없고 반드시 그것을 만든 제작자를 상상하면서도, 시계보다 몇 만 배는 복잡한 거북을 보면서는 자연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보다 훨씬 지적으로 우수한 존재가 거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 논증은 상당히 논리적으로 느껴지지만 과학적이진 않다. 왜냐하면 거북을 만든 제작자의 존재 유무를 근본적으로 논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북을 자연이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과학적으로 논증 가능하다. 당연히 거북이 파도와 바람, 지층 등의 침식 풍화작용, 혹은 엄청난 압력과 온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최소 35억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자체적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결과물이다. 시계처럼 한 번의 작용으로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구한 과정과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 답은 이미 현재의 생명공학/진화생물학 교과서들이 내놓았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 책들을 참고하면 된다.


창조론자들의 셋째 논거는, 생물의 진화 과정이 열역학 제2 법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우주 만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길게 논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엔트로피를 단순히 ‘무질서’로 이해해도 크게 상관없다. 쉽게 말해 우주 만물은 점점 무질서해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이것은 과학적으로 참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왜 유독 생명 현상만큼은 저 법칙을 거스르는가 하고 창조론자들은 묻는다. 생명 현상은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생물에서 단세포생물로, 그것들이 다시 다세포생물로, 현재의 다양한 종으로 분화된 것이 맞다면, 무질서했던 자연은 점점 질서를 형성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열역학 제2 법칙의 중요한 전제 하나를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고립계 내의 전체 엔트로피 양을 말하는 것이다. 생명체만 본다면 그들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행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생명을 둘러싼 주변 환경까지 고려한다면, 나아가 지구 전체, 더 나아가 태양계까지 고려한다면, 여전히 전체 엔트로피 양은 증가하고 있다. 생명체 하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망가져야 하는 주위 환경과, 그가 죽여야 하는 다생명체를 계산해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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