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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17. 2018

1-11. 뭐든지 이뻐야 해

성선택의 중요성

자연선택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이 있다. 성선택이다. 자연선택은 먹이·천적·환경 등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을 말한다면, 성선택은 배우자에게 선택되는 문제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은 생존, 성선택은 번식과 관련된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부모의 형질이 자손에게 되물림 되려면 당연히 부모가 살아남아서 번식까지 성공해야 한다. 살아남지 못하거나 살아남아도 번식하지 못한다면 부모의 형질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되고 만다.


그런데 다윈은 성선택을 자연선택보다 부수적인 요인으로 치부했다. 다윈의 생각으로는, 일단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먹이가 부족해서, 천적에게 잡아먹혀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대로 죽어버리면 번식이고 뭐고 끝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살아남으면 번식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다윈은 여겼다. 자연선택이 근본적으로 자손을 낳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라면, 성선택은 자손을 많이 낳냐 적게 낳냐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현대의 진화생물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과 암컷의 지위는 전혀 다르다. 상당수 동물종의 경우 우두머리 수컷 몇 마리가 절대 다수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우두머리가 아닌 다수의 수컷은 평생 한 번도 짝짓기 기회를 못 가진다. 수컷은 자신의 씨를 뿌리기 위해 다른 수컷과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지만, 암컷은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만 암컷은 조금이라도 우수한 수컷을 맞이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래서 수컷이 더 크거나 화려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고릴라와 공작새인데, 공작새의 암컷은 수컷에 비해 외적으로 볼품없다. 화려한 꼬리를 가진 것들은 수컷이다. 암컷 공작새들을 속인 실험을 한 적도 있는데, 원래 꼬리가 화려한 수컷을 밋밋하게 보이도록 조작하고 꼬리가 평범한 수컷에게 화려한 치장을 했더니 예상대로 암컷들은 후자에게 몰려들었다.


자연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꼬리가 덜 예쁜 수컷은 번식에 실패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하게 되고, 공작새의 자손들은 꼬리가 화려한 수컷의 유전자풀(pool)로 채워지게 된다. 그렇다고 수컷만 화려해지는 것은 아니다. 암컷도 수컷도 모두 엄마 아빠에게 절반씩 유전자를 가져오기 때문에 아빠 공작새가 화려해질수록 딸 공작새 또한 화려해질 확률은 비례하게 커진다.


위와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자연선택보다 성선택이야말로 형질을 자손에게 퍼뜨릴 수 있는 결정적 변수일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연구자들의 한 입장이다. 한편, 성선택을 따로 독립된 개념으로 다루지 않고 자연선택의 한 가지 사례로 보는 부류도 존재한다. 배우자가 짝짓기 상대로 선택하냐 마냐 또한 자연의 한 과정이라고 말이다. 이 논쟁은 여기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이 정도로 하자.


성과 관련하여 여전히 심각하게 쟁점이 되는 문제는, 왜 무성생식에서 유성생식으로 진화하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물론 종의 수로 보나 개체수로 보나 압도적 다수는 무성생식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생물의 역사에서 무성생식만 하던 생명체들이 어느 순간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로 분화된 시점이 존재했을 거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 변종들이 살아남아 그들끼리 번식하여 현재처럼 안정적인 유성생식 종들을 대거 만들어냈다는 것은, 어쨌거나 유성생식이 무성생식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생존과 번식에 장점이 있다는 뜻일 게다.


허나 생존의 측면은 모르겠으나 번식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무성생식이 유리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유성생식을 하려면 반드시 짝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컷 동물은 암컷의 선택을 받지 못해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무성생식은 짝을 찾을 필요 없다. 스스로 둘로 나뉘어지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번식 속도도 현저히 빠르다. 무성생식을 하는 단세포 혹은 다세포 생명체의 경우 짧으면 몇 분 내지 몇 십 분마다 번식한다. 하지만 유성생식의 경우 짧아야 몇 주 길면 1년이 걸린다.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무성생식이 우위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유성생식종이 멸하지 않고 살아남은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자들끼리 합의를 못 보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한 가지 가설을 소개하자면, 손상된 유전자를 걸러내기 위함일 수도 있다는 거다. 생명체가 태어난 시점과 죽는 시점에서 체세포의 유전자 지도가 100% 같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유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손상되고 있다. 하루에 거의 천만 번 넘게 손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활성산소와 자외선, 그리고 세포분열 때문이다. 물론 손상의 거의 대부분은 복구되지만 미처 복구되지 못하고 손상된 채로 남게 되는 유전자도 있다.


무성생식을 한다면 손상된 유전자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유성생식이라면 그럴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예를 들어 어떤 생명체의 유전자가 100개라고 치자. 그 중에 1개가 손상됐고 99개는 정상이라고 가정하자. 무성생식이라면 손상된 1개가 그대로 자손에게 이어진다. 하지만 유성생식이라면 100개 중에 50개가 무작위로 선별되어 자손에게 전달된다. 재수가 없으면 물려지는 50개의 유전자에 손상된 1개가 포함될 수 있지만, 웬만큼 운이 좋으면 건강한 유전자 50개가 물려질 것이다. 최소한 질적인 차원에서는 무성생식보다 유성생식이 더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유전인자의 정체를 맨 처음 알게 된 시점이 1940년대인데, 한 세기 전에 살았던 다윈이 유전인자라는 걸 알았을 리, 아니 그런 개념 자체를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그런 면에서 다윈이 성선택의 위력을 무시한 것은 시대적 한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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