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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l 10. 2018

혼자가 아닌 나

영화 [변산]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



고향을 떠나 아버지를 증오하고 과거의 자신과 모두 연을 끊고 서울 태생인 척하며 서울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쌓아올리려는 학수. 태생이 변산이지만 그곳에서의 과거를 몽땅 단절하려 한다. 그는 MC 심뻑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쇼미더머니 재수 삼수를 넘어 6년 개근. 그럼에도 아직 탑10 진출도 고사하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학수의 의도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그의 발목을 붙잡는 건 고향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발렛 파킹 할 때 학수가 모는 차를 박을 뻔한 차에서 고향 친구들이 내리는 장면. 쇼미더머니 6 녹화 기간 중 쓰러진 아버지. 그걸 빌미로 학수에게 연락해 변산으로 내려오게 만드는 선미. 생방송 스케줄을 방해하는 용대. 모두가 고향 사람들이다. 그는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과거를 무시한 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학수가 바로 서울로 가지 않고 변산에 남아 그들과의 관계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판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마주하지 않는다. 마주할 기회조차 없다. 혹은 기회를 억지로 만들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 절교한 친구, 어릴 때부터 사이가 틀어져 버린 아버지 또는 어머니. 그들과의 상처와 문제를 안은 채 살아갈 뿐이다.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이들은 엄청난 노력을 했거나 운이 좋았던 거다.


하지만 난 [변산]이 판타지이기 때문에 기만적이다,가 아니라 판타지임에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학수가 지난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이다. 과거의 학수는 버림 받고(아버지), 폭력을 저지르고(용대), 짝사랑하는(미경) 입장이었다면. 현재의 학수는 버리고(아버지), 폭력을 당하고(용대), 짝사랑을 받는(선미) 입장이다. 내가 하는 행위의 대상이 직접 되어 보는 것. 쉽게 말해 상대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버림 받고 버리고, 때리고 맞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양 측을 모두 경험해야 비로소 관계가 완성될 수 있다는 뜻일까.


재밌는 건 그러한 의미들이 선미의 대사를 통해 함축적으로 전해지는 장면이다. 우연히 학수가 무덤 앞에서 저녁 노을을 보는 모습을 보고, 쟤는 노을을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 쟤 눈엔 노을이 어떻게 보일까, 하고 궁금해졌다고 말하는 장면. 만약 선미가 혼자 노을을 보았다면 별 생각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선미는 매일 저녁 하굣길에 저녁 노을을 보았지만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노을은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없는 배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선미와 노을 사이에 학수가 끼어드는 순간 노을은 선미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풍경이 되었다.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세계가 아무리 광활하고 복잡해도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를 만들 수 없다. 선미의 노을이 멋진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건 학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서울에서 학수가 진정한 MC가 될 수 없었던 건 혼자였기 때문이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처럼 주는 행위만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 주면 누군가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때 의미와 관계가 발생한다. 그것들이 모이고 쌓여야 이야기가 되고 삶이 된다.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것이 [변산]이 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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