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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Oct 08. 2018

간절히 찾아라!

영화 [서치]로 보는 디지털 일상

영화 [서치]의 내러티브는 꽝이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힌다는 반전,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고 경위를 자백하는 범인, 조금은 억지스러운 구출과 해피엔딩. 어느 것 하나 그래 그렇구나 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야기 진행을 기준으로 영화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예전에도 지금도 없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기술과 형식의 예술이므로 [서치] 또한 형식을 통해 의미를 건져 올리고 싶다. [서치]의 미덕은 단연 ‘스크린라이프’라는 장르적 형식에 있다. 영화 속 디지털 기기들의 푸티지로만 러닝타임을 100% 채운다. 모바일이나 랩탑의 페이스타임부터 IP 카메라, CCTV, 방송용 카메라, 뉴스 화면 등의 콜라주만으로도 씬이 되고 시퀀스가 된다.

이는 하이퍼링크가 일상이 된 디지털 세대의 삶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처럼 읽힌다. 모바일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가 메시지가 오면 확인하고 답장 보낸 후 마저 드라마를 시청하다 잊고 있던 화장품이 떠올라 쇼핑앱을 켜고 주문한다. 그러다 메시지 답장이 오면 다시 확인 후 답장하고 다시 드라마를 보다가 내일 날씨가 걱정돼 날씨앱을 켠다. 20분 동안 몇 개의 앱을 켜고 몇 번의 멀티플레이를 했는지 세는 것도 이젠 의미없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그러한 분절된 활동이 분주하고 정신 사나워 보이지만 그게 곧 내 시간을 채워 삶이 되고 의미가 된다.

미디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다는 매클루언의 전언은 뛰어난 분석이자 선견지명이었는지.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는 사람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보다 중간에 매체를 끼고 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 종종 나는 친구와 만나서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 집에서 카톡으로 수다 떠는 게 더 재밌고 편하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기 쉽지 않지만 페북이나 인스타에는 뼛속 깊은 속내를 입력하곤 한다. 감수성 짙은 짤은 옵션이다. 그러한 나의 고백에 인간 친구는 손발을 잃을 게 빤하지만 가상의 세계는 아무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그에게 갠톡을 보낼 필요가 없다. 친구의 SNS를 보는 것이 그와 톡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느낌을 알아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이 진실이고, 온라인 상의 모습은 허구라는 이분법은 바보 같다.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 또한 일정 부분은 허구다. 달라진 건 매체의 차이뿐. 공기와 빛이라는 파장을 미디어로 삼을지 0과 1이라는 디지털 값을 매개로 삼을지의 문제다.

마고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데이빗이 마고의 페이스북과 유캐스트를 보지 못했다면 둘의 관계는 1도 진전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고가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것. 엄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충분히 애도하고 싶어한다는 그녀의 속깊은 마음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디지털 매체를 마냥 좋다고 찬양만 하겠다는 건 아니다. 마고는 바로 그 유캐스트 탓에 실종된 셈이니 말이다. 거기서 거짓 캐릭터를 표방한 가상의 친구를 돕겠다는 오지랖 덕에 아빠를 속이고 금전적인 손실에 더해 마고는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또는 이런 끔찍한 생각도 든다. 오늘 하루 나를 찍은 평균 200개의 CCTV와 블랙박스, 내가 찍은 셀피와 친구가 찍어준 사진 및 동영상만 가지고도, 장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중편의 영화 한 편쯤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며칠 또는 일주일쯤 모으면 장편 하나도 거뜬히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서치]의 푸티지들은 그 가능성을 함의하는 듯하다. 이곳은 처절한 감시사회라고 말이다. 역시나 모든 건 1장1단이고 세상은 제로썸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디지털 매체는 속깊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주변인과의 진실된 소통을 이뤄주는 고마운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은 사용자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 그러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간절히 찾아라. 딱 그 마음만큼 매체는 당신에게 반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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