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는 앞을 보여주지만 필연적으로 대상을 왜곡시킨다
내게 [언더독]은 미덕과 단점이 뚜렷한 영화였다. 유기견 이야기를 철저히 개의 시점에서만 다루며 인간의 시점이나 설명이 일체 배제되었다는 점이 첫째 미덕이다. 개의 시선에서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물론 그 또한 인간의 상상의 결과물이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인간이 개에게 어떤 기억과 경험, 감정과 삶을 새기는지를 간접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달까.
또 하나는 유기견의 문제를 인간이 해결하지 않고 인간의 개입없이 개들 스스로 극복한다는 점이다. 물론 숲에서 유기견을 거두어 사는 부부(로 추정되는) 인간들의 원조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 지원이자, 사건의 분기점으로서의 역할이었을 뿐 (짱아를 제외한) 개들의 삶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아니, 애초에 그들은 유기견들을 억지로 붙잡아두거나 그들 문제에 끼어들 마음이 없어 보인다. 부부를 거쳐 유기견 무리는 스스로 비무장지대에까지 나아가 인간 없는 그들만의 삶의 무대를 찾는다.
하지만 빛이 있는 만큼 어둠은 필연인지라. 위에서 말한 두 미덕은 반대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개의 시점에서만 인간을 바라보니 각 인간들의 사연은 거세된다. 왜 그들은 개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까. 분명 개 사냥꾼에게도 자신만의 삶의 역사가 있을 텐데. 왜 사회는 그러한 불법 개 사육장을 그대로 내버려둘까. 등등. 인간의 이야기가 배제된 채 개들의 시선만 쫓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간=피해자:가해자=선:악의 구도가 되어버린다. 선악의 대비가 너무나 명확하다 보니 갈등의 양상이나 이야기 전개가 너무 플랫해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
유기견 문제를 유기견들 스스로가 해결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판타지라는 점이 남은 아쉬움이다. 실제로 산에 가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자기들끼리 뭉쳐 살아가는 유기견들이 꽤 있다. 하지만 현실 속 그 개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인간에 대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먹을 식량이 부족한 상황. 추위와 안전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함 등등. 모든 유기견이 인간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것은 오히려 개들에게 강요된 ‘주체성’을 낭만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낭만이 영화관에 앉은 관객에게는 감동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개를 버리는 인간과 그들에게 버려지는 개에게는 전혀 낭만도 아니며, 심지어 반려견도 반려인도 전혀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개를 유기하는 반려인과 개를 잡아가는 사냥꾼을 악마화함으로써, 개들의 고군분투를 모험화함으로써 얻는 영화적 성취는 수류탄에 터져 하늘에 흩뿌려지는 들꽃만큼이나 허망하고 가련하다. 반려견의 유기 사태에 대한 문제제기까지는 좋았으나 그것의 지나친 심미화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해서 보게 만들 우려가 크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연출자들의 미필적 고의라는 의심마저 들기에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