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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22. 2019

3-07. 이 물건 얼마에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

다시 가치 문제로 돌아가자.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스미스는 우파의 아버지, 마르크스는 좌파의 아버지라는 꼬리표 때문인 듯) 상당한 지점에서 마르크스는 아담 스미스의 적자인데 특히 가치 개념에 있어서 마르크스는 아담 스미스의 견해를 적잖이 계승했다.


앞서 밝힌 노동가치설뿐 아니라, 아담 스미스는 물품에는 노동에 의한 가치뿐만 아니라 교환을 위한 가치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각각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고 부르는데 이 둘은 일치하지 않고 각각 독립적인 관계라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신발을 만드는 데 평균적으로 5시간이 걸리고 가방을 만드는 데 평균적으로 10시간이 걸린다고 치자. 이때 가방의 교환가치는 신발의 2배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교환할 때 신발 2개에 가방 1개를 맞바꾸려 할까? 그렇지 않다. 만약 나에게 가방이 20개나 있는 반면 신발이 2개뿐이라면. 그때 누군가가 가방 1개를 줄 테니 신발 2개를 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 교환에 순순히 응하겠는가?


이 지점에서 아담 스미스는 사용 가치란 해당 물품에 대한 당사자의 욕구와 연관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나에게 가방의 가치는 1이지만 신발의 가치는 5다. 그렇다고 가방을 5개나 주고 신발 1개를 얻으려 하겠는가. 그건 바보 같은 짓이고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이때 나는 신발 1개를 얻기 위해 얼마큼의 가방을 제안하겠는가.


인간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기만 하다면, 이때 나는 최대한 신발이 나에게 필요 없는 척, 신발이 나에게 주는 가치가 실제보다 훨씬 낮은 척 연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상대 또한 자신의 욕구를 숨기며, 가방의 가치를 최대한 낮게 잡으려고 안달할 것이다. 이래가지고는 합리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아담 스미스를 경제학자로서가 아닌 윤리학자로서 더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여기서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가 아닌 중립적인 존재라고 간주한다. 지금 발생 중인 교환 활동을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제3자들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상대 또한 중립적인 관점을 견지할 것이라고 신뢰한다.


내가 지금 당장 새치기를 하면 나에겐 무조건 이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치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남에게 해가 된다는 이타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라, 제3자의 눈으로 그 사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중립적 시각이 인간에게 내재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스미스는 간주한다.


다시 거래 상황으로 돌아오자. 지금 당장 나와 상대와의 거래에서 신발과 가방의 가치는 특수하게 작용하지만, 나와 상대는 모두 이 거래를 각자의 이익의 관점에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중립적인 관점으로 조망할 수 있다. 그 결과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로 수렴하게 된다. 지금 당장 나에게 신발의 가치는 5이고 가방의 가치는 1이지만, 이 사회의 평균적 가치는 ‘신발:가방=1:2’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상대는 신발 2개와 가방 1개를 성공적으로 교환하게 된다.


쉽게 말해, 아담 스미스는 진즉에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 사이의 괴리(또는 모순)을 눈치 채고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학문적 목표라고 여겼다. 사람들은 아담 스미스를 ‘보이지 않는 손’의 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의 책 [국부론]에 딱 1번 나오는 수사적 표현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한 건 이후 고전경제학자들의 사후적 작업의 결과라는 것. 스미스는 두 가치의 괴리를 사람들의 도덕 감정. 즉 ‘공평한 관망자’라는 개념을 만들어냄으로써 해결하려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스미스에게 진정 중대한 사안이었다.


스미스의 본심은 아랑곳 않고 그의 가치론을 다른 방향으로 밀고 나간 자가 이후의 알프레드 마셜이다. 마셜은 교환가치가 시장에서 해당 상품을 생산하는 수량과 구입하고자 하는 수량의 균형점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요 공급의 법칙이다.


마르크스는 위의 두 가지 생각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담 스미스의 생각처럼 사용 가치가 교환 가치에 수렴하지도 않으며, 알프레드 마셜의 이론처럼 교환 가치가 공급과 수요의 균형점에서 형성되지도 않는다. 가격은 제품과 제품 사이의 물리적 관계에 의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욕구 관계에 기반하지도 않는다. 제품의 가격은 그 제품의 생산과 교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생산 양식에 의존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추적해야 할 과제는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제품의 가격을 결정짓는 근본 요소인 생산 양식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다음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여기서 잠깐, ‘상품’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상품은 자본주의 사회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상품의 핵심은 교환에 있다. 만약 내가 먹기 위해 옥상에 상추 농사를 지어 수확한 후 실제로 내가 먹었다면, 그 상추는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상추를 시장에 팔기 위해 농사지었다면, 그래도 그건 상품이 아니다. 상품이 되는 시점은 교환 행위가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다.


회사에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만들어 상점에 진열한다고 상품이 되는 게 아니다. 고객이 와서 그것을 구입해가는 그 순간 그것은 상품이 된다. 거래가 끝나고 고객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 그것은 다시 상품이 아니게 된다. 다시 한 번 상품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교환’에 있음을 기억해야 앞으로의 논의가 쉽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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