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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24. 2019

3-08. 그게 당신 몸값이야

노동과 노동력의 차이

상품의 의미를 알았다면 다음으로 자본의 의미로 넘어가자. 자본이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꽤 많은 이들이 화폐와 헷갈려 한다. 하지만 자본과 화폐는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애초에 의미의 층위가 전혀 다르다. 화폐는 교환을 매개하는 모든 수단을 말한다면, 자본은 생산을 위한 모든 요소 전반을 일컫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보자. 1000만원으로 중고차를 구입하면 그것은 그냥 화폐다. 중고차를 교환하기 위한 매개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0만원으로 모 기업의 주식을 구입하면 그것은 자본이 된다. 해당 기업의 영업 활동을 위한 생산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내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곳에 집을 짓고 내가 살면 그것은 그냥 토지다. 하지만 그곳에 공장을 지어 회사를 운영하거나,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한다면 그 토지는 자본이 된다.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사회의 핵심은 자본의 역할과 순환이다. 그리고 자본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을 소유한 부류가 있는 반면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부류가 있다. 세상은 그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것을 유산계급/무산계급이라 부르기도 하고 원어로는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 칭하기도 한다.


부르주아는 자본을 소유하지만 자본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상품을 생산할 수 없다. 토지든 건물이든 돈이든 기계든 간에 그것을 단지 가지고만 있다고 해서 상품이 저절로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활용하여 상품을 만들 요소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은 노동이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는 가진 게 노동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만으로 상품을 만들 수 없듯 노동만으로 상품을 만들 수도 없다. 노동하기 위한 공간(토지와 건물), 상품이나 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 원재료와 그것들을 구입할 자금, 그것들을 조합하여 상품으로 완성할 지식과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 이들 중 하나라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상품 생산에 오직 자신의 노동밖에 더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된다. 그것은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비유할 만하다. 물론 여기서 주인:노예=자본가:노동자 관계로 유비된다. 노예는 주인이 베푸는 재산의 일부로 생을 연명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주인 또한 노예가 제공하는 모든 소일거리 덕분에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주인 또한 노예 없인 못 살게 된다. 이는 정확히 자본가와 노동자 관계에도 딱 맞아 떨어진다.


다시 상품 얘기로 돌아가자.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매매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들을 통틀어 자본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자본을 소유한 자와 못 가진 자로 인간 계층은 구분된다. 이때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의 노동 또한 시장에서 상품처럼 다뤄진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노동 시장’이라는 부문이 따로 형성된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을 활용하여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를 고용하려 한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가로 그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바꿔 말하면 노동이라는 상품을 구입하는 대가로 임금이라는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상품화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는 노동과 노동력 개념을 구분한다. 둘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피카소의 일화를 드는 게 좋겠다. 이미 유명해진 피카소가 어느 날은 의뢰인에게 20분 만에 뚝딱 초상화를 그려준 다음 거액의 금액을 제시하더란다. 어이가 없어진 의뢰인은 겨우 20분 그림 그리고 무슨 그렇게 높은 돈을 받으려 하냐며 반문했다. 피카소가 말하길, “나는 이 그림을 20분 동안 그릴 수 있게 되기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연습하였소.” 여기서 피카소가 생각하는 자신의 그림 그리는 능력을 ‘노동’으로, 의뢰인이 생각하는 피카소가 20분 동안 그림을 그린 행위를 ‘노동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부분은,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에 매겨지는 가격은, 그가 가진 노동의 품질에 있지 않고, 그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품=노동력의 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근대의 평등 사상에 입각한 관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따라서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의 양도 평등하게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생각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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