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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r 27. 2019

게으르고 손쉬운 전략

영화 <우상>의 아쉬운 몇 가지



1. 한석규 vs 설경구

두 배우의 역을 뒤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들었다. 겉으론 따뜻하고 젠틀한 이미지지만 뒤로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배역의 한석규. 배움은 적지만 생활력이 뛰어나며 물불 가리지 않는 거친 스타일의 설경구. 각 배역은 해당 배우들이 기존에 능숙하게 잘 해왔던 캐릭터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장점을 최대한 안고 가겠다는 전략으로 비쳤고, 나는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제작진의 안이함 혹은 게으름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배우들에게 조금은 다른 옷을 입히는 것도 좋은 영화의 몫일 텐데, 하는.



2. 기술 부족 vs 제작 의도

둘째는 음향의 문제다. 정확히는 대사 전달의 문제다. 영화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대사가 절반 가령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공통평이다. 하얼빈 출신이라는 련화(천우희 역)의 중국 억양 심하게 섞인 한국말 대사는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심지어 온전히 표준어를 구사하는 명회(한석규 역)와 중식(설경구 역)의 대사도 상당 부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기술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감독의 의도일 수도 있다. 사실 한국 영화의 음향 문제는 몇 십 년 전부터도 지적돼 왔던 고질적 문제다. 기기와 기술력이 외국만 하지 않다는 게 그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2010년 전후쯤까지의 문제였던 듯하다. 최근 몇 년 간 나온 영화들에서 대사가 전달되지 않아 문제시된 작품은 딱히 없다. 그런데 그 문제가 이제 와서 새삼 다시 불거질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는 대사 전달 문제는 100% 감독의 의도라고 본다. 총제작비 98억원을 들인 영화가, 고작 기술 문제로 대사를 망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감독의 실험이지 않았을까. 대사를 단순히 언어와 의미의 영역이 아닌 이미지의 영역으로 다루려는. 마치 배경음처럼. 혹은 대사의 목적을, 단순히 인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음성과 톤과 억양 등에 실린 인물의 느낌과 감정을 더 부각하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는 의도적으로 대사가 잘 안 들리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 일상의 영역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또렷하게 못 듣는 경우가 많다. 딕션의 문제일 수도 있고 주위 환경(소음 등)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나의 감정 상태 때문일 수도 있고 등등. 그래서 현실에서는 상대에게 되묻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또렷하고 명확한 딕션으로 발화한다. 그런데 그게 인위적이라고 감독은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든, 그 방법이 정당한 방법이었을지는 의문이다. 대사를 뭉갬으로써 모호성을 증가시킨다는 전략은 치사하다. 가령, 의도적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흐려서 화면을 뭉개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떨까. 무언가를 명쾌하게 보고 듣는다는 전제는, 감독과 관객 사이의 약속이 아닌가 말이다.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채, “자,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맞혀봐” 하는 태도는 궁색하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는 외국인은 스크립트와 함께 보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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