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Mar 29. 2019

02. 고대 중국 철학 2

사상의 이전투구

앞서 다룬 공자와 묵자는 각각 유가와 묵가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허나 그러한 구분은 춘추전국시대 당시에 이루어진 작업이 아니라 몇 백 년 뒤인 한나라 중후기에 처음 언급된 것이다. 맨 처음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를 제자백가라 칭하며 6개 그룹으로 묶은 사람은 사마 담으로 [사기]의 저자로 알려진 사마 천의 아버지다. 사실 [사기]는 사마 담의 프로젝트였는데 그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해 아들이 이어받은 것이다. [논육가요지]에서 사마 담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명가 음양가 6개로 사상가들을 구분했다.


두 번째 구분은 몇 십 년 뒤 유흠에 의해서다. 그는 10개로 그룹을 늘렸는데 기존 6개에 농가 종횡가 잡가 소설가를 추가했다.


그러므로 공자는 스스로를 유가라 칭하지도 않았으며 묵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러한 구분은 정확하지도 않으며 자칫 개별 사상가들의 철학을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 구분은 구분할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맥락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순자를 유가로 묶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그는 학사의 최고직으로서 모든 학문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받아들이려 했으며 그의 제자가 법가인 한비자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자와 장자를 같은 도가로 묶은 점도 엄청난 실책이다. 어떤 점에서 노자와 장자는 정반대를 지향하는 사상가다. 명가의 혜시와 공손룡도 마찬가지다. 그 둘의 방향성도 정반대다. 상세한 내용은 뒤에서 바로 다루겠다.


또 한 가지 오해는 노자의 생몰 연대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노자를 공자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20세기 초에 학설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여러 사료와 문구 등을 해석할 때 노자는 혜시와 비슷한 시대에 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보통 노자 사상을 황로사상이라 일컬으며 중국철학의 효시처럼 떠받들기도 하는데, 이는 꼼꼼히 따져 봐야 할 일이다. 공자 묵자 노자의 제자들은 서로 자기 스승이 원조라 우기려고 과거의 위인을 소환했다. 유가는 공자를 요순과 묶고, 그런 공자를 넘어서고자 묵가는 묵자를 우임금과 엮고, 또 그 묵가에 앞세우고자 노자를 황제와 이었다.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황제-->우임금-->-->이므로 노자가 가장 먼저 활동한 듯하지만, 그것은 마치, 국밥집의 원조 간판과도 같은 것이다. 오히려 반대 순으로 보는 게 맞다는 말.


노자를 유명하게 만든 또 한 가지 계기는 당나라 이연과 이세민 부자의 활약(?)이다. 수나라 멸망 후 어렵사리 황제 자리에 오른 이연에게 고민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황제가 될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명분이 될 만한 근거를 샅샅이 찾았다. 다행히 [사기]에서 건수를 발견했다. 노자의 본명이 이이李耳라는 것이다. 옳다구나 싶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자의 후손이라고 말하며, 노자를 태상현원황제로 추존했다. 그리고 [노자]를 [도덕경]으로 부르며 과거시험 과목에 추가하고 각 가정에 비치하도록 했다. 숭현학을 설치하여 국가적으로 도가를 연구하게 했으며, 노자의 탄생 연도를 b.c.1301년으로 산정하여 탄생일은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후 노자-황제는 패키지로 묶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행이 되었고, 노자의 생몰연대에 대한 오해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본격적으로 노자   시작하자. 흔히 노자를 ‘무위자연’이라든가 ‘도’를 탐구하는 사상가라 여기며 세상을 초탈한 선인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덕경]의 많은 구절들이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한다. 가령 “도라고 인정되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명名이라고 인정된 명은 영원한 명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만물들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들의 어머니다.”라는 구절. 혹은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 속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릇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방을 만들 때 방문과 창문을 뚫는데 방문과 창문 안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방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같은 구절들이 대표적이다.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규정을 거부하고, 끝없는 비움을 역설하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노자를 마저 이해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서양철학과 중국철학의 차이점에 대해서다.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서양철학은 논리적인 측면을 중시했다면, 중국철학은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당시 시대의 차이에 기인한다. 서양철학의 태동기는 고대 그리스다. 그곳은 (외국인 여성 노예를 제외하면) 특정 지배계층이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 따라서 시민 개인은 자신과 동등한 다른 시민들을 설득하는 화법으로 논의를 펼쳤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를 주로 썼다.


반면, 춘추전국시대는 계급 차이가 뚜렷한 수직 사회였다. 각 사상가들의 신분은 지배층의 밑바닥이거나 아예 피지배계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대화 상대는 왕·제후·대부였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인물을 설득하는 화법은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성과 직관에 의존하는 말하기다. 그런 이유로 고대 중국철학의 텍스트는 상당 부분 비유와 우화로 점철돼 있다. 노자의 텍스트인 [도덕경](=[노자])도 마찬가지다.


그 중 중요한 한 구절을 보자.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들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껴안고 있는데, 가운데의 기로 조화로움을 도모한다.” 이 구절 또한 노자를 오해하기에 충분한 텍스트다. 저것만 떼놓고 읽으면 엄청난 우주의 기원과 본질을 설파하는 경구처럼 느껴진다. 노자는 순식간에 선인으로 승천한다. 하지만 저 구절이 다가 아니다. 바로 다음에 노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천하의 모든 만물들이 싫어하는 것이 ‘외로움孤’, ‘부족함寡’, 혹은 ‘결실 없음不穀’인데, 오히려 제후들은 이것들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삼았다. 만물들은 어떤 경우에 덜어내면 오히려 증가하고 역으로 증가시키면 오히려 덜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으로 나도 또한 남을 가르쳐야 한다. 따라서 “강하고 굳센 사람은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을 나는 배움의 근본으로 삼을 것이다.” 도를 말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이야기의 층위가 현실로 옮겨진다. 노자는 자신의 이야기 상대가 제후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남들이 하듯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제후를 가르치겠다고 고백한다. 무슨 말인가? 자기가 하는 관념적인 얘기는 제후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노자는 우주의 도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제후에게 통치술을 가르치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추정대로 노자가 혜시와 비슷한 세대라면, 노자 또한 당대를 혼란기로 생각하여 어떻게 하면 통치자가 중원을 통일할까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상가들이 그랬듯 자신도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해법을 설파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본론부터 말하면 듣는 제후가 당황스러워 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은 비유로 운을 뗐던 것이다. [도덕경] 전체를 보면 저런 식으로 각 장의 시작을 관념적인 문장으로 펼치지만 대개 국가와 통치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다. 노자에게 손가락은 ‘도’이고 달은 ‘국가’다. 그것이 그의 진의를 읽는 방식이다.


그럼 다시 시작하자.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은 비유다. 무엇에 관한? 국가와 통치자의 관계에 대한 비유다. 노자는 도가 본질이고 만물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본질이고 통치자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한강이라고 하면 무엇을 지칭하는가? 지금 이 순간 한강 줄기를 구성하는 모든 물 분자의 합이 한강인가? 하지만 몇 달만 지나면 지금 강줄기를 채우는 물 분자는 모두 바다로 가버리고 새로운 물 분자들이 그곳을 대신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강이 아니게 되는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국가인가. 현재 5000만 국민의 총합이 대한민국인가.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나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모두 죽어도 그대로 대한민국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본질이 그 구성원은 아닌 셈이다. 이는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노자에게 중요한 건 국가였다. 국가는 불멸할 수 있지만 통치자는 반드시 멸하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계속 바뀌지만 국가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현상이고 국가가 본질이다. 노자는 국가가 영속할 방법을 고민했다. 국가의 본질은 뭘까. 그에 대한 노자의 답은 간단하다. 돈이다. 국가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그 돈으로 살림을 유지한다. 백성들로부터 원활하게 지속적으로 돈을 거둘 수 없으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돈을 거둘 수 있을까. 노자는 통치자가 사적 욕심을 부려서 국가의 세금을 가로채는 것을 염려했다.


조만간 군주의 자리를 내려놓을 일시적인 통치자에게 국가의 세금을 쓰게 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그렇다면? 통치자는 최대한 많은 세금을 다시 백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세금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분배하지 않고 세금만 계속 거둔다면 백성들은 굶어 죽거나, 이탈하거나, 불만을 품고 저항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 유지를 위해서는, 세금을 거두고 분배하고 다시 세금을 거두고 분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순환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노자의 무위자연이나 비움에 대한 설파는 통치자를 대상으로 한 가르침이다. 통치자 개인의 욕심을 거두라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백성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라고 노자는 말한다. 그것이 최상의 국가라고 말이다. 그런데 혹자는, 통치자에게 말한 노자의 가르침을 모든 시민에게 적용시켜 버린다. 그래서 노자가 도를 닦는 선인의 이미지로 변질돼 버렸다. 그것 또한 노자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대 노자의 본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는 오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자 얘기를 하기 전에 두 사람을 먼저 말해야겠다. 양주와 한비자다. 우선 양주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백성자고는 한 개의 터럭으로써도 남을 이롭게 하지 않았고, 나라를 버리고 숨어서 밭을 갈았다. 우임금은 한 몸을 가지고 스스로를 이롭게 하지 않았고 그의 몸을 지치고 깡마르도록 만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여도 뽑아 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기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양주는 몸에 털 한 올과 나라를 맞바꾸자고 해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으로선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금욕주의다. 몸의 털 한 올을 준다는 건 비유다. 그것은, 작은 희생 또는 노력이라는 뜻일 게다. 그것을 통해 무지막지하게 큰 보상을 바라지 말라는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희생하거나 노력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고. 혹은 희생이나 노력보다 훨씬 과분한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전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읽으면 양주는 욕심을 부정하는 입장이 된다.


그보다 좋은 다른 해석은 개인주의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노자에게 국가가 중요하냐 구성원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국가가 중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칠 수 있는가. 유감이지만 나는 국가를 위해 내 생명을 바칠 생각이 1도 없다. 양주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이 먼저 났고 그 다음 국가가 났지, 어떻게 사람보다 국가를 우선시할 수 있냐고 말이다. 다른 사상가들이 너무 논의를 어렵게 끌고 간다고 양주는 생각했다. 다 필요 없고 각자가 스스로를 책임지면 된다고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다면 세상은 다툼이 없고 평화로워질 거라고 양주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양주는 사실 그간 모든 사상가들에 맞서고 있는 셈이다. 공자는 관계를 중시했다. 인仁은 두 사람 사이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일컫는 말이고, 예禮는 그 마음을 적절한 양식으로 표현하는 의례를 일컫는다. 사회의 시작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가장 기본적인 관계조차 올바르게 맺지 못한다면 사회는 바로 설 수 없다. 공자가 인간을 선으로 생각했다면, 양주는 사람을 점으로 생각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공자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만 해서는 사회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성립해야 된다고 말이다. 반면 양주는 사회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다. 내 한 몸 간수 잘 하는 게 장땡이다.


공자에 반대한 묵자에 대해서도 양주는 우습다는 듯 대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거창한 얘기가 왜 필요하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냐고 되묻는다. 적어도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해법이다. 양주에겐 그게 가장 보편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보였다. 묵자처럼 편애니 겸애니 나눠봤자 어쨌든 타인에 대한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정리하면, 양주는 시스템보다 사람이 먼저라 주장하며 노자에 반대했고, 관계보다 존재가 우선이라고 공자에 대항했으며,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애가 근본이라며 묵자에 맞섰다.


한비자는 법가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상가로 인정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의 법가 사상가들, 상앙·신불해·신도의 사상을 통합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법法을 가장 중시했다.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상벌의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불해는 그에 반대하여 술術을 앞세웠다. 법이 있어도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면 허사다. 법을 일상에 적합하게 시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신불해는 말했다. 신도는 그에 반해 세勢를 역설했다. 법을 현실에 시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주의 강력한 권세와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한비자는 세 사람의 사상인 법·술·세를 모두 받아들였다. 어느 하나 빠져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라고 봤다. 한비자는 그것을 노자에게서 배웠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나. 통치자는 유한하지만 국가는 무한하다고 말이다. 통치자 개인의 특성이나 능력보다 먼저 바로 서야 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이니, 한비자는 누가 어떻게 통치해도 국가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는 최상의 법이 전제돼야 함을 강조했다.


한비자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천하를 다스리는 권력의 자루나 민중을 가지런히 하는 제도 등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왕의 가르침을 폐하고 비천한 저의 주장을 실천하려는 것은 법술을 세우고 법도를 설정하는 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고 민중들을 편하게 해주는 도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혼란을 일으키는 군주나 어리석은 군주로부터 받을 불행을 겁내지 않고 반드시 민중들의 이익을 가지런히 하도록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어질고 지혜로운 행동仁智之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혼란을 일으키는 군주나 어리석은 군주로부터 받을 불행을 겁내지 않고’다.


여기서 우리는 한비자의 속내를 알 수 있다. 한비자가 정작 가장 두려워한 것은 혼란을 일으키거나 어리석은 군주다. 군주 개개인의 역량과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요순이나 우임금 같은 끝판왕급 왕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모든 왕이 그와 같은 내면을 가지지 못했으며 그런 왕을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허무하다. 이때 공자·묵자·노자·맹자 등의 여타 사상가들은 모두 군주 개인의 인성 수양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비자는 달랐다. 왕에게 무조건적인 수양을 권한다 한들 그게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한비자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왕의 폭정을 막을 것인가. 그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법이다. 법의 적용 대상을 피지배계층에 국한하지 말고 지배층 전체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본뜻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친구 이사가 진시황에게 고자질하여 한비자는 옥살이를 하게 됐고, 결국 옥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제 잠시 미뤄두었던 장자를 살펴보자. 장자도 맹자 못지않은 모두까기 사상가였다. 아니 사실 제자백가 대부분이 서로가 서로는 디스하는 살벌한 구도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인군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우선 다음 이야기를 통해 장자가 누구를 겨냥했는지 보자. [장자] 거의 초반에 나오는데, 노나라 왕 이야기다. 그는 새를 사랑하여 한 마리 새를 잡아다 극진히 대접했다. 고기를 먹이고 술도 먹이고 음악도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새는 시름시름 앓더니 사흘 만에 죽었다. 이게 끝이다. 장자는 이 밑도끝도 없는 얘기를 통해 뭘 말하려는 걸까.


앞서 나는 공자를 소개할 때 서恕를 언급했었다. 서란 ‘내가 싫어하는 걸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타인을 이해할 때 자신을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는 말이다. 노나라 왕도 그렇게 새를 대한 것이다. 참고로 장자가 굳이 노나라 왕이라고 말한 이유는, 노나라가 공자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노나라 왕은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와 술과 음악을 새에게 접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새를 죽게 만들었다. 그 말은 공자가 시키는 대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자의 기본적인 생각은,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이해할 때 나를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장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장자]에는 우리가 잘 아는 조삼모사 일화가 나온다. 현재의 우리는 조삼모사를 간교한 꽤 혹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장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그 의도를 그렇게 곡해한 건 맹자였다. 바로 위에서 봤듯 장자가 공자를 저격했기 때문이다. 맹자는, 감히 자기 스승을 디스한 장자에게 복수한 것이다. 장자는 조련사처럼 사기나 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장자의 말을 따르는 사람은 원숭이처럼 어리석다고 비웃은 거다.


이제 장자의 진의를 들어보자. 조련사가 원숭이에게 하루에 줄 수 있는 최대 음식량은 7개다. 어떤 이유든 그 이상은 줄 수 없다. 이때 7개를 주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조련사가 먼저 제안한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어떠냐고. 원숭이는 싫단다.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가 좋다고 한다. 그것은 비유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의 양은 유한하다. 그 유한한 무언가를 타인에게 베푸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원하는 행태가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것이다. 장자의 조삼모사는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베풀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장자는 그것이 소통이라고 말한다.


공자는 애초에 타자와의 소통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타인을 알고 싶으면 나를 알면 되기 때문이다. 공자는 타인에게 묻기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해법을 권했다. 장자는 거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도 존재자도 다 저마다 다르다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가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 걸 상대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장자는 어떻게 하면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지가 우선적인 고민이었다. 조삼모사를 통해 장자는 다시 한 번 공자를 저격했고, 그런 장자를 맹자는 비열한 사기꾼으로 매도한 것이다.


어떨 때 장자는 공자와 노자를 쌍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장자의 더블 플레이. 다음을 보자. “도道는 걸어다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 사물物은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된 것이다.” 공자는 사회에 각자의 자리가 미리 주어진다고 말했다. 왕 신하 아버지 아들의 자리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며, 그 자리에 위치한 개인은 그 자리에 적합한 행실을 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공자의 '군군 신신 부부 자자'는 그 말이다. 그것을 정명론이라 부른다. 노자도 비슷하다. 도와 만물 중 도가 본질이라고 말했다. 우주의 근본 법칙이 우선이고, 현상은 그 법칙에 따라 사후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빗댈 만하다. 하지만 장자는 반대했다. 길이 먼저 있어서 사람들이 그 길로 가는 게 아니라고. 사람들이 자꾸 가니까 나중에 그게 길이 된 거라고 장자는 말했다. 왕이나 아들이라는 자리가 먼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먼저 있고 그 명칭은 나중에 붙인 거다.


혜시의 제자였던 장자는 혜시와의 대화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 구절을 보자.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장자: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겠지.

  혜자: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혜자: 나는 자네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를 모르지. 그렇다면 자네도 물고기가 아니니까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

  장자: 자,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는 나더러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냐’고 했지. 이 말은 자네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물은 것이네. 나는 호숫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네.


장자는 혜시 덕분이었는지 논리에 정통해 있었다. 그럼에도 논리를 신봉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장자가 명가와 분리되는 지점이다. 장자는 논리를 뛰어넘어 직접 세계를 대면하려 했다. 타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혜시의 논증에 모순이 있음을 간파한 장자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자신은 물고기의 즐거움과 혜시의 마음을 호숫가에서 알았다고. 대화 속 혜시와 장자가 있는 곳이 어딘가. 바로 호수 위 다리다. 장자는 혜시를 만나 대화하고 호수에서 물고기를 접했기 때문에 그들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자에게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처럼 상대를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자는 차이와 다양성의 사상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장자는 강조했다.


명가의 대표자인 혜시는 장자와 완전히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혜시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혜시의 말을 들어보자. “가장 큰 것은 외부가 없는데 이것을 ‘가장 큰 일자’라 부른다. 가장 작은 것은 내부가 없는데 이것을 ‘가장 작은 일자’라고 부른다. …… 크게 같음과 작게 같음은 다른데, 이것을 ‘작은 같고 다름’이라고 말한다. 만물은 모두 같고 모두 다른데, 이것을 ‘커다란 같고 다름’이라고 말한다. …… 만물을 널리 사랑하면 천지는 하나의 단위로 세어질 수 있다.” 대상을 비교하는 기준에는 크게 다름(대이), 작게 다름(소이), 작게 같음(소동), 크게 같은(대동)이 있다. 예를 들어, 나와 내 친구는 서로 다른 개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나는 이 씨이고 친구는 김 씨라는 점에서 작게 다르다. 하지만 영장류라는 점에서는 작게 같고, 이 우주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자라는 점에서는 크게 같다.


그런데 혜시는 만물을 모두 사랑하면 세상은 하나의 단위로 셀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여기 원숭이 한 마리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도 있다. 원숭이와 소나무를 동물과 식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대상을 작게 다름의 차원으로 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둘이라 묶을 수도 있다. 이는 작게 같음의 차원이다. 하지만 크게 같음의 차원에서는 나와 바위를 묶어서 둘이라 지칭할 수도 있다. 나도 바위도 이 우주를 구성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혜시는 장자와 같은 방식으로는 상대를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차별하게 된다고 봤다. 우리가 모두 다르다면, 우리는 크게 다름의 차원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화합할 수 없다. 반대로 크게 같음의 차원으로 세상을 보면 세계는 하나가 된다. 그것이 바로 혜시가 말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이다. 만남과 소통이 아닌,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통해 대동(크게 같음)을 깨치면 나와 너의 구분은 없을 거라는 말이다.


간혹 혜시를 경험론자라고 오해하는 후세 학자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구절 때문이다. "산보다 호수가 더 높다." 언뜻 어불성설로 읽히는 이 문장은,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을 예로 들면 이해된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 중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극소수 사례를 근거로 저와 같은 일반론을 주장할 수 없다. 혜시가 그 정도로 떼쟁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글을 보자. "나는 오늘 월나라에 갔는데 어제 월나라에 도착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을 안다. 그것은 가장 북쪽 나라의 북쪽에 있고 가장 남쪽 나라의 남쪽에 있다." 이것은 경험으로는 풀 수 없는 난제다. 혜시는 왜 저런 모순된 문장을 뱉었을까.


우리가 똑바로 서서 세상을 보면 산이 호수보다 높지만,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면 호수가 더 높다. 시점의 상대성을 말한 것이다. ‘나는 오늘 월나라에 갔다’는 문장을 오늘 쓴 후, 이틀 뒤에 이어서 ‘어제 월나라에 도착했다’고 글을 쓰면 모순이 아니다. 시간의 상대성이다. 지구본을 보라. 지구 표면의 중심이 어디인가. 보통은 북극이나 남극을 말할 것이다. 허나 그건 자전축으로서의 중심이지 표면 자체의 중심은 아니다. 중심은 지구 표면 모든 곳이 될 수 있다. 바로 공간의 상대성이다. 혜시가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세상 모든 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옳다 너가 옳다 논쟁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옳고 그름을 넘어설 때 우리는 하나의 단위로 세어질 수 있다.


비슷한 메시지를 장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와 그대가 논쟁을 하였다고 하자. 그대가 이기고 내가 졌다면,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인가. 내기 이기고 그대가 졌다면, 과연 내가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일까? 그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본시부터 멍청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해야 하겠는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해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해줄 수가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는 의견이 다른데 어찌 올바로 판단해줄 수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찌 올바른 판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나 그대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논리를 믿겠는가?” 아마 장자는 그것을 혜시에게서 배우지 않았을까.


명가의 또 다른 대표 사상가는 공손룡이다. 그런데 공손룡의 해법은 혜시가 다다른 곳과는 반대 방향에 있다. 그래서 혜시와 공손룡을 명가로 묶기 어렵다는 말이다. 혜시가 관념론자/합리론자라면 공손룡은 경험론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손룡의 유명한 논쟁 하나를 살펴보자. 백마론이라고도 알려진 논쟁으로 공손룡이 흰 말을 타고 국경을 넘어갈 때 일이다. 당시 말을 타고 국경을 넘으면 통행료를 내야 했다. 그런데 공손룡은 관리에게 흰 말은 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황당한 관리에게 공손룡은 5가지 논증을 밝혔다. 우리는 그 중 하나만 보겠다.


말을 가져오라고 하면 검은 말이든 노란 말이든 흰 말이든 아무 거나 가져와도 된다. 그런데 흰 말을 가져오라고 하면 검은 말이나 노란 말을 가져오면 안 된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라는 결론이 얻어진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허점투성이 논증이다. 하지만 공손룡은 당당했는지 결국 통행료를 내지 않고 가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공손룡이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혜시와 같은 철저한 논리학자라면 저런 궤변을 설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논증을 보자. 견백론이라고 알려진 논증이다.


  여기에 희고 굳은 돌이 있다고 상정해 보자.

  “굳은, 흰, 돌은 셋이라고 칭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

  “둘이라고 칭하면 되겠는가?”

  “된다.”

  “어째서 그런가?”

  “굳지 않고 흰 것을 예로 들면 흰 것과 돌이 합하여 둘이 되고, 희지 않고 굳은 것을 예로 들면 굳은 것과 돌이 합하여 둘이 된다. 보기만 해서는 그 어떤 것이 굳은지 알 수 없고 희다는 것만 알 수 있으니 여기에는 굳은 것이 없고, 만지기만 해서는 그 어떤 것이 흰지 알 수 없고 굳다는 것만 알 수 있으니 여기에는 흰 것이 없다.”


쉽게 풀면 이 말이다. 눈으로 보면 흰색과 흰 돌만 보이기 때문에 두 개다. 눈을 감고 손으로 만지면 굳음과 돌만 만져지기 때문에 두 개다. 역시 논리적이진 않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공손룡이 강조한 것은 감각이다. 눈으로 보냐 손으로 만지냐가 판단 기준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위에서 언급한 백마론에서 공손룡의 의도도 이해된다. 공손룡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개체를 '말'이라는 범주로 묶지 말라는 뜻이다. '말'이라는 언어는 머릿속 사유를 통해서 얻은 사후적 개념일 뿐 현실에서 실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말'이라는 개념으로는 내가 타고 있는 이 개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과격하게 주장하자면 그것은 잘못된 명명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대상을 왜곡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람'이라는 명명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명칭만으로 충분할까. 맹자 묵자 혜시라면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냐고 공손룡은 되묻는다. 경험을 거치지 않은 관념적 사고만으로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해하고 받이들이고 사랑할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지금 이 혼란스런 상황은 무엇이냐고.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경험밖에 없다고 공손룡은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공손룡은 장자의 편에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01. 고대 중국 철학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