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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Apr 06. 2019

03. 고대 중국 철학 3

맹자 vs 순자: 누가 공자의 진정한 계승자인가

마지막으로 맹자와 순자에 대해 살펴보자. 둘 다 유가 사상가로 묶이는데 실제로도 둘은 스스로가 공자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듯하다. 우선 [맹자]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 세상에 덕을 쌓은 군자가 없으니 그 누가 공자의 말씀을 이어 가겠는가?” 이 말은 자신이 군자가 되어 이어 가겠다는 말이다. 순자는 더 가관이다. [순자]는 첫 페이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배우니 즐겁다.” [논어]의 첫 페이지도 이렇게 시작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순자는 자신의 책에서 자기야말로 공자님의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셈이다.


맹자는 다 꺼져 숯이 돼버린 공자 사상에 불씨를 다시 피우려 무진장 애쓴 사람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공자는 춘추시대 당시 가장 인기 없는 학자였다. 그 이유는, 공자가 지위를 결정짓는 요소를 혈연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논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노나라의 계손 씨가 팔일무를 추는 광경을 보고 공자가 혀를 끌끌 차는 장면이다. 공자가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팔일무는 왕만 출 수 있는데 계손 씨는 왕이 아니라 대부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구분했다. 그러니 서로 왕이 되고픈 제후/대부들에게 공자의 말이 먹힐 리 없었다.


맹자는 그러한 공자의 생각에서 혈연이라는 요인만 떨궈냈다. 맹자에게 지위란 오직 덕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가장 수양을 열심히 하여 덕성이 끝판왕 급에 오른 자는 왕이 될 수 있고, 덕이 가장 낮은 자는 천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요 임금이 왕위를 아들에게 주지 않고 가장 훌륭한 덕을 쌓은 순 임금에게 물려준 일을 높이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주나라의 무왕이 상나라의 주왕을 몰아낸 것을, 상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무찌른 것을 칭찬했다. 맹자는 왕으로 태어나도 왕답지 못하면 물러나는 게 옳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맹자는 역성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공자와 맹자의 또 다른 차이점은, 공자는 사람의 ‘행동’을 중시했다면 맹자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물론 공자도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문제는 마음 자체를 볼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마음(=인仁)에 걸맞은 행동(=예禮)이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반면 맹자는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보았다. 맹자, 하면 떠오르는 성선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면 맹자는 왜 마음을 중히 여겼을까.


고대 중국의 인성 논쟁을 현대의 우리는 심리학적 논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하지만 당시 인성 논쟁은 심리학적 층위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녔다. 맹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는 가장 도덕적인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였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다는 묵자, 사회는 필요없고 자신만 중요하다는 양주, 인간 세상에 관심 없고 자연과 우주를 논한 장자,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다스리자는 상앙 등에게 맹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진정한 통치는 자발적이고 선량한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맹자는 그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을 신뢰했다. 마음으로 하는 통치가 가장 훌륭하다고 본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그 근본인 마음을 중시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선량하다고 봐야 하는 것 또한 타당한 이치다. 그래서 맹자는 어그로를 끌더라도 무조건 인간의 본성은 선량하다고 주장해야 했다.


그런 맹자가 발견한 것이 바로 사단四端이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몸에는 팔 다리가 4개 있으니 인간의 사지四肢는 본성에 입각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에도 팔 다리와 같은 4가지 근본이 있는데 그것이 사단이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다. 그것은 수양을 통해 인 의 예 지로 발현한다. 맹자가 말했다. 우물에 빠지기 직전의 아이를 봤을 때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려 할 것이라고. 그런데 그 이유가 부모에게 사례금을 받기 위함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함도 아니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시끄러워서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의 유래는 본성이지 않느냐는 게 맹자의 논증이다. 흥미로운 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감정과 연관된다면 사양지심과 시비지심은 이성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감정과 이성 모두 인간의 본성이라 보았다.


이렇게만 보면 맹자가 유교적 꼰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맹자는 관념론자보다는 현실론자에 더 가까웠다. 맹자의 위와 같은 이야기는 현실 정치에 관한 지침을 전하기 위한 밑밥 깔기와 같다. 맹자의 세계관에서 신분의 높낮음은 덕성에 비례한다. 왕은 가장 덕을 많이 쌓은 자이고, 차례대로 내려가 노예는 가장 덕을 못 쌓은 자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배층은 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굶주려도 마음을 절제할 수 있지만, 피지배계층은 덕이 부족하기 때문에 며칠만 굶주려도 올바른 마음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무엇보다 삶을 연명할 양식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 지침까지 맹자는 마련했다.


가령, 토지제도 및 조세제도와 관련해서 맹자는 정전제를 주장했다. 정전제란 정井 자라는 이름처럼 땅을 3×3=9개로 구획하여 테두리 8곳은 8명이서 나눠 소작하고, 가운데 한 곳은 그 8명이 공동경작하는 것이다. 각자 소작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공동경작한 것만 나라에 바치면 된다. 정전제를 통해 맹자는 땅이 없는 백성들의 안정적인 생산을 도모했고, 국가에 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납세를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맹자는 고아 과부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나라의 구휼제도에 대해서도 관심 가지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 면에서 맹자는 노자와 비슷하지만, 노자가 사람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이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불신이지 수행적 차원의 염려를 말하는 건 아니다) 시스템에 관심을 가진 것이라면, 맹자는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그 결과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현실 차원의 논의에서 맹자는 공자와 차이를 보이지만, 그 본질적 관점에서 맹자는 공자와 같다. 그것을 우리는 고자와의 논쟁에서 엿볼 수 있다. 고자가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버드나무와 같고, 의義는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다. 인간의 본성이 인의仁義를 행하게 하는 것은 마치 버드나무로써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 사람의 본성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를 것이니, 사람의 본성이 착하고 착하지 아니함에 구분이 없는 것은 물이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고자는 철저히 성무선악설을 외쳤다. 맹자는 그런 고자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선도 없고 악도 없다면, 자신이 꿈꾸는 도덕정치는 원론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대는 버드나무의 성품을 따라서 그릇을 만드는가, 아니면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친 뒤에 그릇을 만드는가? 만일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친 뒤에 그릇을 만든다면, 또한 인간의 본성을 해친 뒤에 인仁과 의義를 행하게 하겠다는 말인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 인仁과 의義를 해치는 것은 바로 그대의 말일 것이다. (...) 물은 진실로 동쪽과 서쪽의 구분은 없지만 위 아래 구분도 없는가? 인간 본성의 착함은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다.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고,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맹자의 반박에서 그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우선 버드나무 논쟁부터 보자. 고자는 버드나무=본성, 버드나무 그릇=인위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맹자는, 버드나무의 본성을 살려서 만든 버드나무 그릇이 본성의 측면에서도 버드나무 자체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버드나무 입장에서 보면 버드나무는 삶이지만 그릇은 죽음이다. 그러므로 맹자의 생각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이다. 세상 어느 버드나무가 죽어서 그릇이 되는 꿈을 꿀까. 물 논쟁도 마찬가지다. 고자가 물에는 동서남북 구분이 없다고 하자 맹자는 위아래 구분은 있지 않느냐고 답한다. 하지만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운동은 물의 내부에 있는 성질인가 외부에 있는 성질인가. 물을 우주 공간에 놔두면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물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은 중력의 영향이다. 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물 분자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맹자는 인간과 사회를 디폴트값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공자와 똑같은 지독한 휴머니스트였다. 물론 학문의 논의를 자연이 아닌 인간 세상으로 옮겼다는 점이 공자를 중국 사상의 시초로 보는 한 가지 이유이긴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론 그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 한계를 그대로 끌어안고 갔다는 점에서 맹자는 공자에 충실한 제자이자 계승자였는지도 모른다.


맹자가 공자에게서 인仁을 재발견했다면, 순자는 공자로부터 예禮를 재발견했다. 순자는 인간의 마음도 본성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보거나 감지할 수 없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유추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행동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바꿀/가꿀 수단은 교육이라는 게 순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순자가 공자를 공부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게 교육이다. 그래서 [논어]가 배움의 기쁨을 예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순자 자신도 자신의 책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것은 심리나 윤리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할 초석 다지기로 이해해야 한다. 맹자 말대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해 버리면, 사람들은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낄 거라고 순자는 우려했다. 그 정도로 순자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춘추시대부터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점쟁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점이 인간 사회를 바꿀 수 없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 전국시대가 되어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 순자는 그러한 생각을 자기 사상의 밑바탕으로 삼았다. [순자]의 한 구절이다.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하지만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기우제를 지내든 안 지내든 비는 온다.” 여기서 순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므로 기우제를 지내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이 부분을 꼼꼼히 봐야 한다.


우리는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별똥별이 떨어질 때면 두 손 꼭 모아 소원을 빈다. 동시에 우리는 안다. 소원을 빌어도 대개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그걸 알면서도 내 삶과 1도 관련 없는 불돌멩이에 소원을 비는 우리는 멍청이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소원을 빎으로써 나는 내 소원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어쩌면 그 기도 행위 덕분에 나는 조금이라도 더 노력할지 모른다. 순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와 같았다. 자연 자체가 인간의 삶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은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개기일식 자체는 우리 사회와 무관하지만, 개기일식을 보며 제사를 지낸다면, 그 제사는 우리 사회와 무관하지 않게 된다.


인간 바깥의 우주에 자연과 인위가 있다면, 인간 내부에도 자연과 인위가 있다. 맥박 혈압 세포분열 신경작용 호르몬 등은 자연이다. 나는 내 혈압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상처가 났다고 해서 내 맘대로 세포분열 속도를 빨리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나의 마음은 내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순자가 말한 성악설과 교육의 관계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아니, 마음 자체를 알 수조차 없다. 다만,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큼은 자제할 수 있다. 그 행동의 변화를 통해 정신의 어떤 부분은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우리는 비록 악한 본성을 타고 났지만, 끝없는 교육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성정은 선하게 가꿀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가꿔진 겉모습이 다시 나의 내면에 일정한 작용을 하고 그것이 다시 나의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순자의 애제자였던 한비자는 바로 위와 같은 지점에서 스승을 안타까워하였다. 맹자만큼은 아니었지만, 순자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 행위의 개선을 믿었다. 한비자는 그마저도 믿지 않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자발적/자연적으로 개선될 거라는 희망은 망상에 가까웠다. 희망고문. 희망이라 쓰고 고문이라 읽는다. 한비자는 인간을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인간 내부에서 찾을 수 없으며, 외부의 강압만이 유일한 수단이라 보았다. 잠깐 [한비자]의 두 구절을 보자.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이가 있었다. 상인은 먼저 창을 들어 보이면서 천하에 뚫을 수 없는 방패가 없다고 하고, 이어서 방패를 들어 보이면서 천하에 막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구경꾼 하나가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묻자 상인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송나라에 한 농부가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도망치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를 들이받고 죽었다. 그걸 본 농부는 일을 멈추고 그루터기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오지 않았으며 결국 온 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모순矛盾과 수주대토守株待兎로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 모순에서 한비자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가장 강한 창과 가장 강한 방패가 공존할 수 없듯, (공맹순이 말하는) 가장 도덕적인 왕과 (자신이 주장하는) 가장 훌륭한 법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의도다. 그렇다면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그 답은 수주대토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토끼의 등장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농부는 다음 토끼가 나타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한 시간일 수도 있지만 평생일 수도 있다. 그것은 농부의 노력 여하와 관계없다.


유가가 말하는 덕스러운 왕의 출현도 그와 같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아무리 열심히 도덕과 교육을 설파해도 좋은 왕이 나타날지 말지에 영향을 줄 수 없다. 한편, 과거에 빗대어 미래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뜻하기도 한다. 주나라 시절만 하더라도 오직 왕의 교육과 인성이 중요했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어림도 없다는 뜻이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에 선한 왕을 기다리는 건 시대착오적인 바보 짓이라는 게 한비자의 일침이다. 그래서 유가로 분류되는 순자에게서 벗어나, 한비자는 법가로 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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