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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Dec 18. 2019

2-01. 역사는 암기 과목이다?

역사학의로서의 역사

예전에 대학 초년생 때, 사학과 전공인 아는 누나는 늘 이런 불평을 해댔다. 역사학은, 본인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최악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유를 물으니 누나가 답했다. 역사학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명확히 전달하는 학문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일에 대한 전달은 온데간데 없고, 토론과 논쟁만 난무하더란다. 서로 자신의 가설과 이론이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누나는 길도 잃고 흥미도 잃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저 누나가 안타깝고, 어서 빨리 자신의 전공에 흥미를 되찾기만을 바랐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그것은 지금의 우리들이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떠한 공통된 인식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단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자라면서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다. 그리고 배운 대로 시험을 쳤다. 인물과 사건과 연도를 외웠고, 외운 대로 5지선다형 보기 중 하나를 찍거나, 주관식 답변을 시험지에 써야 했다. 사람들에게 역사는 전형적인 ‘암기’ 과목이다.


유사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군대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괜찮은 학벌과는 상반되는 독특한(이라 쓰고 ‘무개념’이라 읽는) 행동 때문에 소대에서 꽤 유명했는데, 한 병장 조교가 그런 나의 지력을 늘 테스트하는 걸 즐겼다. 테스트 방식은 간단했다. 역사 지식을 묻는 것이었다. 질문은 더 간단했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 지명이나 조직의 이름 등을 묻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나는 대부분의 질문에 척척 답변하여 해당 조교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편이었다(자랑은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그 조교에게도 역사는, 암기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나 또한 그러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말이다.


요즘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초·중생들은 방학 때 한 번쯤 한국사능력시험을 친다. 공시생이나 취준생에게는 필수 자격증이다. 요즘은 시험을 위한 것 못지않게, 일제 식민 지배라든가, 당시 위안부 문제 등을 기억하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식의 인식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듯하다. 어찌 되었건 역사는 ‘암기’와 ‘기억’의 대상이라는 데는 변함 없다.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생각한다든가, 그것의 이유를 ‘추론’한다든가, 다양한 의견의 ‘쟁점’을 파악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그러한 인식이,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든가, 20세기 말에 들어 생긴 세태는 아니다. 우리의 이와 같은 생각에 대해 가장 먼저 책임 져야 할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레오폴드 폰 랑케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150년 전에 활동한 역사학자로, 역사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졌다. 역사학의 아버지? 그렇다면 그전에는 역사학이 없었다는 말인가? 일단은 ‘그렇다’고 답해 두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역사학’의 역사는 불과 2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역사를 학문의 반열에 올려놓고, 역사‘학’이라는 분과 학문을 정립한 사람이 랑케다. 반대로 말하면, 랑케 이전에는 학문으로서의 역사는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교에 역사학이라는 전공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800년까지만 하더라도 역사는 학문과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아주 오래 전,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시대에도 과거사에 대한 인식 및 그에 대한 서술과 연구는 분명히 있었으며, 그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을 거다. 그럴수록 이어지는 글을 잘 읽길 바란다. 랑케 전과 후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확연히 달랐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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