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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01. 2020

2-03. 하늘의 뜻이 곧 사람의 뜻이다

우주의 법칙과 신의 계시

별자리에 성격을 부여한다거나 별점을 치는 것 등은 서양의 전통에서 계승·유래했다. 사주팔자나 역점을 보는 것 등은 동양의 전통에서 이어져 오거나 변형된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것을 하나의 흥밋거리로 대하거나 혹은 그것이 미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그 결과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라 여기고 만다.


하지만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 그것들은 진리였다. 하늘/우주의 운행 법칙은 하나의 신이든 다수의 신이든 어쨌건 신(들)의 계획에 입각해서 설계된 구축물이다. 그리고 그 우주에 속한 인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의 삶 또한 우주의 일부분이므로 우주의 법칙에 따라 운용되며 그것은 신에 기인한다. 따라서 우주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법칙은 일치한다.


내 삶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면 된다. 우주의 예측을 위해선 법칙이 필요한데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바로 《주역》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역을 후대에 학자들이 자료를 더하고 고쳐 재해석한 것이 ‘사주’라고 부르는 명리학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 생각의 출발은,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으로 우주의 법칙이 곧 인간 사회의 법칙이라는 발상에 있다.


서양에서도 발상의 원리는 흡사했다. 고대인들은 태어난 날의 별자리를 기준으로 그 사람의 운명과 성향을 점쳤다. 특정 별자리가 가까이 있는 시기에는 그에 해당하는 특정 기운이 더 우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에도 역시나 인간이 우주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그에 따른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이 전제된다.


중세에는 가톨릭교의 영향으로 그 생각이 더욱 극단을 치닫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교황이거나 성직자인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며, 사후에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도 이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뜻은 바뀌지 않으며 다만 하나님이 그 사람의 운명을 정한 건 하나님 임의대로가 아닌, 그 사람의 성질에 따른 판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행으로 지정된 사람과 지옥행으로 지정된 사람은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며, 그 둘의 차이는 그들의 삶에서 드러난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건 아주 미미했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이곳 이승에서의 삶에서 아주 미시적인 부분들만 바뀔 뿐, 내가 아무리 의지를 발휘해도 지옥행을 천국행으로 바꾸거나 그 반대를 행할 수는 없었다. 사실상 중세까지만 해도 자유의지라는 인지 자체가 없었다. 그나마 이성에 대한 복권과 자율을 외친 때가 르네상스 시기부터였지만, 그때 세계와 역사에 대한 인식은 지금의 우리와는 확연히 달랐으며 여전히 중세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봐야 옳다.


그 대표적인 예가 데카르트다. 흔히들 데카르트를 근대의 아버지라 많이 칭하는데, 이미 앞 장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데카르트를 근대의 진정한 시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습게 여겼다. 인간의 역사는 연구 대상이 될 수 없고 될 가치조차 없으며, 오직 역사란 신의 역사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신대륙이 발견되고 대항해가 시작된 16-17세기에도 여전히 유럽인들은 신적인 세계를 예찬했고 인간의 이성은 신이 하사한 ‘치트키’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니 2류의 역사를 공부해서 무엇 하겠는가. 1류인 신의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의 역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미루어 짐작할 가치조차 없다. 인간은 신의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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