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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08. 2020

2-04. 관념이 아닌 물질로서의 역사

역사가 역사학이 되기까지

‘이야기 또는 교훈’으로서의 역사가 ‘학문’으로서의 역사로 거듭난 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우선 르네상스 이후로 꾸준히 이어져 온 해부학의 발전을 보자. 중세까지만 해도 인간 신체에 대한 이해는 관념적이고 유비적인 수준에 머물렀었다. 예를 들어 4체액설 같은 경우 정말의 인간의 몸이 혈액·점액·황담즙·흑담즙으로 구성됐는지 실험·관찰을 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히포크라테스는 4체액을 모두 직접 본 적도 없다. 단지 학자의 머릿속 연상으로 확립된 이론이다. 각 체액의 존재 유무는 물론 그것들의 정체나 역할·기능 등도 오리무중이다. 이제마의 4상 의학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오래 전부터 내려져 온 전통이 한 학자를 만나 비판적으로 계승된 결과물이다.


동양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에서도 15세기까지만 해도 실제 인체를 들여다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뇌피셜만 믿고 의사라며 활동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놀랍지만 그때는 아무런 문제 없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정말 인간의 몸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랐으며 사실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유럽의 문예부흥기 이후 1500년을 전후로 학자들은 인간 신체의 특성에 다시금 관심 가지기 시작했다. 관심의 대상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보다 자신의 머릿속 이상형에 끼워 맞춰 해석했다. 8등신이 인간의 표준적인 비례라거나, 두팔을 양옆으로 펴고 서면 배꼽을 중심으로 머리와 양손과 발까지의 거리가 일치하는 원이 된다는 생각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다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면서 시신의 배를 갈라 내장을 목격하고 온몸의 뼈와 근육을 확인하고 그것들의 기능과 관계를 살피는 것이 유행하게 된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든 관념을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를 기준으로 받아들이려 한 것이.


그러한 움직임은 학계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과거의 인간사를 이미 머릿속에 정해 놓은 관념의 틀에 맞추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사건 그 자체로 대하려는 인식이 싹텄다. 그 사건들이 각각의 자료가 되고 그것들이 모여 어떠한 흐름이나 법칙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랑케는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서술하는 것이 역사가의 진정한 본업이라 여겼다. 어떠한 주관도 들어가서는 안 되며, 10명의 역사가가 똑같은 사건에 대해 글을 쓰면 결과적으로 똑같은 서술로 귀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랑케에게 역사학은 과학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데이터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법칙을 이끌어내며 그 법칙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역사와 과학의 공통점이었다.


학자들 간의 주관을 없애기 위해 랑케가 특히 강조한 연구 방법이 세미나였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려 학자들이 모여 토의·토론을 거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 등이 희석되어 중화된다고 그는 믿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는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는 거다.


흥미로운 점은 랑케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 그는 세상의 모든 인간 역사는 넓은 틀에서 하나님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시대나 사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각 사회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제각기 다른 인간 사회의 모습 또한 애초에 하나님이 원하던/예측하던 방향이었기에 각 시대와 사회는 모두 똑같이 가치 있다고 랑케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랑케가 볼 때 특정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근거가 없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식이니 말이다. 그것이 랑케가 ‘상대주의’를 강조한 이유다.


세상을 관념적 유비가 아닌 각 요소들의 인과관계로 이해하는 위와 같은 사고방식은 문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추리소설의 등장이다. 개인의 행동에는 반드시 그에 입각한 원인이 선재한다는 발상. 어떤 인물의 버릇·습관·행동 등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하는 접근.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면 반드시 진실을 시간의 역순으로 과학적 인과의 법칙을 따라 추적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아르센 뤼팡이나 셜록 홈즈와 같은 사고방식은 지극히 19세기적인 것이며 그 전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19세기는 대전환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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