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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14. 2020

4-01. 첫 번째 인식 혁명

칸트가 초기낭만주의에 끼친 영향과 감성의 시작

내가 데카르트와 대항해의 시대를 근대의 시작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 시대는 반쪽자리 근대였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깊이 신이 존재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의 궁극에도 역시 신이 있었다. 유럽인들이 남미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원주민을 학살하고 그 지역의 자원과 문물을 탈취해 오는 도덕적 근거도 신에게 있었다.


하지만 인식론적 측면에서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성’은 근대적 인식의 전부가 아닌 반쪽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주의는 계몽주의로 귀결됐다. 계몽 또한 근대적 마인드의 절반이라는 점에서 프랑스혁명 전후 18세기 또한 완전한 근대의 시작이라 보기 미흡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무엇인가. 바로 ‘감성’이다. 근대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시대다. 정확히 말하면, 근대는 인간의 인식을 이성과 감성으로 쪼갠 시대다.


이 책에서 칸트를 뺀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어떤 측면에서 칸트는 분명 근대적 사고의 초석을 세운 인물이긴 하다. 진리를 아는 판단과, 도덕을 행하는 판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판단이 제각기 다르며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독립적 영역이라는 그의 발상은 지극히 근대적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철학에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건 ‘이성’이었다. 그에게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미학적 판단은 여전히 ‘감성’의 레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의 생각에 반기를 든 자들이 초기낭만주의자들이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이 무작정 칸트에 반대한 건 아니다. 우선 그들은 칸트의 발상을 차용해 그간의 르네상스적·고전주의적 미술계와 선을 그었다. 그동안 미술계는 외부 세계를 어떻게 하면 오류·착오 없이 모사할 수 있을지에 혈안이 돼있었다. 그 실험과 훈련의 가장 뛰어난 결과물이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미술이다. 르네상스 때 원근법이 처음 개발되었다. 원근법을 더 세련되게 발전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은 연구에 집중했다. 흔히들 아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나 티치아노와 바사리 같은 인물들이 그 시대의 대표자들이다. 미술에 대한 얘기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논외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중요한 포인트는 ‘미메시스’다. 어떻게 하면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냐가 관건이다. 작품을, 자신이 아닌 누가 봐도 현실의 모습과 완전히 부합시키는 게 화가들의 가장 기본적인 퀘스트였다. 이 1차적인 능력도 완수하지 못하면 화가로서 꽝이다. 현대의 우리들도 사실 그와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린다고 하면, 십 중 십은 그의 모사 능력이 뛰어남을 일컫는다. 연예인을 오직 펜으로만 그렸는데도 사진 못지않은 복제 퀄리티를 갖춘다면, 일상의 레벨에서 그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사람이 된다.


르네상스 이후 절대왕정 시대 전까지 크고 작은 반발들이 있었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모사 능력을 중시하는 화풍은 18세기까지 이어진다. 그 절정은 신고전주의 미술이다. 건축학도가 설계한 듯 자로 잰 듯한 수학적 원근법과 과하지 않으면서 친절한 명암과 색채 대비. 모든 이들이 중요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만한 소재 선택 등이 신고전주의의 특징이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러한 기존의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엎었다. 외부 세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화가 본인이 제일 중요하다며 말이다.


그 전복이 가능했던 건 순전히 칸트 덕분이었다. 칸트는, 외부 대상의 존재 유무를 학문적으로 밝힐 수 없으 다만 그것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인간의 판단 자체는 확실히 존재하며, 외부 세계에 대한 상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이라 말했다. 칸트는 인식의 방점을 외부 세계에서 인간 내부로 옮긴 것이다. 그 발상을 낭만주의자들은 그대로 차용했다.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것 또한 외부 세계를 훼손하지 않고 작품 내로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예술가 본인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로써 창작/예술의 방점이 외부 세계에서 예술가로 옮겨졌다. 더 이상 외부 세계를 똑같이 모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미메시스적 미학은 과거의 프레임이 돼버렸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이성의 세계가 감성의 세계로 전치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우리가 현실이라 믿었던 것이 실은 거울이며, 우리가 거울상이라 믿었던 것이 현실이라는 반전인 채 끝나고 만다. 거듭 말하지만 한 쪽이 패하고 한 쪽이 이기는 세계는 근대가 아니다. 어느 게 진짜 현실이고 어느 게 거울상인지 끝내 모르는 시대야말로 진정한 근대다. 지금의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19세기가 무르익으면서 낭만주의자들은 반대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를 다시 바로잡으려 시도한다. 어떻게? 그들이 찾은 답은 스피노자다. 예술가만이 중요한 예술. 인간의 인식만이 중요한 세계관. 감성이 이성에 앞선 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저울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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