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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21. 2020

4-02. 기울어진 저울 바로잡기

낭만주의자들이 스피노자에게 배운 것

유태인인 스피노자는 25세(한국 나이 기준)에 교회에서 파문당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종교적으로 개방적인 나라가 네덜란드였던지라 그곳에는 가톨릭이나 신교로부터 박해받던 유태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스피노자 가족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스피노자는 왜 파문당했나? 바로 종교적 교리에 어긋나는 사상을 발설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자유를 찾아 왔지만, 결국 그들도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배척했다는 점에선 그들을 박해한 기독교 집단과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데카르트보다 한 세대 정도 뒤에 활동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와는 거의 정반대 인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거울상처럼 대립적인 사상가라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둘의 연이은 탄생이야말로 근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 책에서 데카르트뿐 아니라 스피노자도 빠진 이유는 둘 다 각각 근대의 절반을 차지한다 생각기 때문이다. 특히 스피노자의 경우 생전에 자신의 철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케이스다. 그가 제대로 인정받은 건 낭만주의자들과 헤겔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러한 스피노자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사람이 이 챕터의 주인공 니체였다.


니체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1차적으로 스피노자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그럼에도 이 챕터에서 앞으로 스피노자는 두 번쯤 더 등장할 것이다) 우선 스피노자는, 신체와 영혼을 전혀 다른 요소라 보고 영혼의 우위를 주장했던 데카르트와 달리 영혼 또한 신체의 연장이라 보았다. 영혼의 작용은 신체에 기인하며, 따라서 신체가 죽으면 영혼도 죽는다고 생각했다. 신체가 각 조직과 기관의 콜라보인 것처럼 영혼도 단일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여러 의식 작용의 종합이라고 보았다. 그러니 신체에 대한 영혼의 우위를 부정했음은 당연하다.


인간의 이성적 사고 능력 또한 영혼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신적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 여겼고,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인간의 이성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았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신이 준 특별한 능력이자 선물이며, 그 이성을 통해 신을 대리하여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인간과 자연이 수직관계는커녕,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독특하고 우월한 입지를 차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한 스피노자의 관점을 이해하려면 그의 신에 대한 인식을 알아야 하는데 그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잠깐 뒤로 미루겠다. 미리 간단히 밝히자면, 스피노자는 인격적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데카르트를 비롯한 그간의 사람들이 가진 생각은 모두 인간으로서의 무지에서 비롯한 인간중심주의라고 판단했다. 단적인 예가 신을 인간과 같은 인격체로 간주한 지점이다. (고대 그리스에도 이미 같은 생각을 한 학자가 있었는데)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신 또한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일 거라 가정했다는 점이다. 만약 고양이가 생각할 수 있다면 신을 고양이의 형상으로 상상하지 않을까.


데카르트가 인간을 신의 대리자로서 우주의 중심으로 위치시켰다면, 스피노자는 그것이 가증스런 인간중심주의라고 비판했다. 인간은 그저 이 우주의 원 오브 올일 뿐 인간이 자연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길 객관적 근거는 없다. 스피노자는 우주의 중심에 있던 인간을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것이 스피노자 파문의 대략적 이유였다. 그리고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그러한 스피노자의 생각을 예술로 받아들여 기울어진 인식의 저울에 다시 균형을 회복시켰다. 예술가는 비록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모사할 능력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보는 고유한 방식 그대로를 작품에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그 누구의 시선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지녔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작품 표현 양식은 그만의 고유한 것이며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또한 그렇다는 것을 함의한다. 아니, 인간뿐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우주에 존재하며 또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는다.


19세기 초 독일은 헤겔이라는 걸출한 학자에 의해 ‘이성’이라는 트랙의 완성작을 선보였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정반대 편에 ‘감성’ 트랙으로 이성에 반기를 드는 무리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입지를 얻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자들이다. 이성의 완성과 감성의 출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근대를 열기 위한 비옥한 토대였다. 그 토대를 밟고 이성과 감성을 모조리 찢어발기며 얼기설기 엮어낸 사상가가 있었으니, 그가 니체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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