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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28. 2020

4-04. 인간이 빠진 철학은 무의미하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비판한 니체

인격신과 형식적 종교와 관습적 도덕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니체는 스피노자와 공통적이다. 실제로 스피노자를 처음 알게 된 젊은 시절의 니체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었었다. 시제가 대과거인 이유는 후에 니체는 스피노자를 비판하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앞서 미뤘던 스피노자의 종교관을 추가적으로 살펴보자.


스피노자는 유대교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믿는, 그들 머릿속의 종교가 허구적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은 그들의 망상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허상이라는 게 그의 비판점이다. 스피노자가 신을 부정한 두 가지 논리는 다음과 같다. 신은 우주에 속하는가 속하지 않는가. 만약 신이 우주에 속한다면 신은 우주의 부분집합이 되어 우주의 법칙에 구속되고 만다. 반대로 신이 우주에 속하지 않는다면 신의 영역과 동떨어진 우주만큼의 결핍이 신에게 생기므로 신은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신이 우주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사람들이 말하는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은 성립 불가능하다.


만약 신이 완벽하다면, 신이 만든 이 우주도 완벽해야 한다. 이 우주가 완벽하다면 더 이상의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므로 추가적인 신의 개입이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우주는 신의 주재 하에 놓여 있지 않다. 이 우주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므로 우리가 기도한들 신은 그 기도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신이 있는 우주와 없는 우주 사이에 차이점은 없으며, 인간은 결코 신과 연결될 수 없다. 사실 신이 완벽하다면, 처음부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를 창조할 수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정말 인간이 신이라 부를 수 있는 완전한 존재는, 바로 이 우주 자체라고 말한다. 신=우주다. 우리 인간들은 우주의 일부분이기에 개개인은 모두 신의 일부다. 그러니 외부의 신을 따로 상정하여 그를 믿고 따를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신의 조각이므로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스피노자의 가르침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스피노자는 니체의 정신적 스승이 되기에 딱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우주의 법칙 자체를 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니체는 스피노자에게서 돌아선다. 너도 나도 결국 이 우주의 일환이기 때문에 스피노자에게 각 개인의 고유한 삶과 행태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게 니체의 해석이다. 스피노자의 눈에는 거시적인 우주만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주체적 노력도 스피노자에겐 무의미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실천적 노력을 보여도 그것은 전체 우주의 부분일 뿐이니 말이다. 그것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활동을 우주 운동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환원론이었으며, 각 대상의 움직임을 우주 법칙에 따른 결과라 보는 데서 인과론이었다. 그 지점이 니체가 스피노자와 결별한 곳이다.


니체가 라이프니츠를 비판한 논리도 위와 비슷하다. 라이프니츠는 ‘예정조화설’과 ‘모나드론(論)’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정조화설이란, 우주는 항상 최상의 상태라는 주장이다. 라이프니츠의 세계관이 그러했는데, 왜냐하면 우주는 항상 신의 주관 하에 있기 때문이며, 신이 지켜보고 개입하는 한, 우주는 먼지 한 톨만큼도 나빠질 수 없다는 말이다. 니체는 그 또한 인간의 주체적 노력과 의지가 완벽하게 배제된 세계이기 때문에 전혀 인정할 수 없었다.


모나드론은 우주를 입자의 합으로 보는 관점으로, 우주를 구성하는 그 최소 입자가 ‘모나드’다. 오해해선 안 될 게,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우주’와 ‘입자’는 물리적 레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모나드론은 형이상학적 레벨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우주와 입자는 순수 관념적 차원에 속한다.


형이상학적 차원의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모나드는 그것이 속한 우주의 법칙에 따라 운동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모나드의 운동은 정해진/예측가능한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과학적/형이하학적 세계에서의 인과론을 형이상학적 세계에 덮어쓰기한 버전이라 봐도 무방하다. 니체의 입장에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인간의 생명력이 완전히 표백된 건조한 ‘기계론’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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