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기록하기, 그게 무엇이든 - 13
꿈이란 뭘까
꿈은 어디서 찾는 걸까. 왜 나만 없지? 꿈이... 이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꿈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꾸준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니면 글을 쓰는 사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좋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았다. 고르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그렇듯 좋아하는 과목만 굉장히 팠다. 특히 성적이 좋았던 과목은 사회 과목이었다. 역사, 법과 사회, 윤리와 사상 그런 것들... 재밌게 공부하고 친구들에게 신나게 떠들며 가르쳤다. 그 순간이 재미있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역사교육과를 1 지망으로 잡고 열심히 공부했다. 보통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역사교육과는 주로 컷이 낮은 학교의 제일 높은 과였다. 목표했던 역사교육과는 못 갔지만, 내 성적 부근의 학교의 사학과에 가서 교직이수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 돌아서 가는 길 중에서 제일 빠른 길이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내 예상보다 성적이 너무 좋았다. 대부분이 A+였다. (앞으로 졸업 때까지 앞으로 받게 될 성적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일 줄은... 몰랐다.) 이대로만 가면 교직이수는 당연히 내 것이었다. 하지만 1학년 2학기부터 학교 생활에 너무 적응했고, 기존에 내가 경험했던 세계보다 더 넓은 세상의 문이 열렸다.
부지런히 문을 두드리고 약간의 귀찮음만 참아내면 정말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동아리, 학생회, 멘토링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밴드부, 연극부 등 고등학생 때는 일진 친구들이나 잘 노는 친구들의 몫이었던 공간에 내가 한자리 차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 재미를 즐기며 2학년 때 밴드부 정기공연을 3회 나갔다. 친구들이 공연을 보러 왔다. 멘토링이나 학생회를 하면 장학금으로 약간의 푼돈이 주어지는데 이걸로 이렇게 용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학생회도 빠지지 않았고, 남들 한다는 대외활동도 했다. 면접을 보고 합격의 목걸이를 드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나를 증명받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에 중독되어 대외활동과 동아리, 해외봉사 등 대학교 등록금 뽕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교내, 교외 활동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이제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학생회와 대외활동을 동시에 하느라 언니들한테 혼나기도 했다. 친구들은 날 보고 어떻게 그걸 모두 다 하냐고 했다. 잘하지 못했다. 그냥 바쁜 나에게 취했을 뿐...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 여튼, 이런 이유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3.87학점. 그러니까 진짜 대단히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짜 공부 더럽게 안 했네 싶지도 않을 정도. 개성 없는 학점으로 졸업했고, 교직이수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꿈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 나 뭐 먹고살아? 정신 차리니 '취준'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