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08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감탄을 한다. 내 앞에 선택지가 많을 때 혼란스러운 감정을 어찌 그리 잘 표현했을까 싶어서.
편입과 대학원. 사실 1학년 2학기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두 선택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언제든 다시 시작 가능하니까.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쭉 대학생활을 하느니 중도에 그만두고 편입이나 대학원으로 전향하는 게 더 빠르니까.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중간중간 다시 모집요강을 찾아보고 눈여겨보곤 했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상황이 맞지 않아 재선택이 미뤄지고, 그 사이 나는 학년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라 일 년을 보내고, 2학년 종이 땅땅 치자마자, 이제는 딱히 다른 선택지가 고민이 되지 않았다. 그냥 본업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더 앞섰다. 정말 여러 선택지 앞에 서 있으니 마음이 산으로 갈 뻔했다. 차라리 하나의 길만 가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비록 배가 산으로 갈 뻔한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래도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일단 시작을 하면 뭐든 되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편입이나 대학원이라는 더 빠른 길에 대한 갈망 외에도, 나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대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가 가장 걱정이 되었었다. 벌어야 하는 입장인데, 벌러 나서지 않은 것.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하러 나서니 신기하게도 주변의 흐름이 바뀌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내 선택을 응원해 주었고, 학비는 국비나 장학금으로 해결이 되었으며, 생활비는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충당이 되었다. 가장 나다운 마음의 의지를 밀어붙이자 배가 순항할 수 있게 바람이 뒷심이 되어 주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니, 나 또한 마음이 더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도전을 계기로, 시작은 점 하나를 찍은 듯 단순한 시작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작은 마음을 세상으로 옮긴 출사표이고 _ 그 출사표 안에는 나무가 커 갈 과정이 씨앗 안에 담긴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발자취가 이미 찍혀 있었다. 만약 어떻게든 시작을 했다면, 시작 후 할 일은, 태어난 그 발자취를 잘 따라가는 일, 그것뿐이었다.
나는 지금 몸소 체험 중이다. 특히 마음과 함께 호흡하며, 내 진심이 담긴 마음을 따르는 삶에는 어떤 흐름이 날 기다리고 있는지 경험하며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남들은 왜 그렇게 늦었냐며 걱정할지도 모를 36세의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자랑스럽고, 삶은 유유히 방향을 잡아 내게 그때그때 속삭여준다.
할 일이 스스로 떠오르고, 쓸 말이 때가 되면 밀려 나온다. 공부하고 싶은 시기와 산책하고 싶은 시기가 스스로 말을 걸어오면 나는 거기에 발맞추어 행할 뿐이다. 때때로 다양한 감정 안에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 불안이 나를 어떻게 키워나가는지 지켜볼 수 있는 안목이 커졌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시작도 전에 걱정거리가 태산인 당신께
시작은 반 그 이상이니까
하고 싶거든 일단 하기•_<
라고. 그건 걱정만큼 어려운 길이 아니라고, 아니, 어쩌면 더 즐거운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러니 힘을 내자고,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시작을 망설인 경험, 또는 시작 후 잘 풀린 경험 있나요? 우리 서로의 시작을 응원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