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09
휙휙 뭐든 빠르면 좋은 시대,
뭐든 많으면 좋고,
화려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좋은 시대.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이 넘치고, 그 플랫폼 안에서 비교 대상이 많아진다. 외부 세상에서는 요란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둥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둥 말이 많다. 나는 이 시대의 다양한 정보가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행을 독촉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최대한 기죽지 않는 선에서만 그것들을 허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정보성 내용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몇 가지 플랫폼은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그중 대학생들을 위한 대학생활 플랫폼 ‘에타(에브리타임 줄임말)’라는 어플을 폰에 깔아 두고 자주 들어가 본다. 그곳에서 대학 공지나 시험 성적 공유, 과제 안내, 교수님 강의 스타일 등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꽤 만족스럽게 사용 중이다. 그런데 새내기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가끔 그런 글이 보인다. “이 학교 왜 선택했어요?” 그러면 답글에는 “수시로 붙어서요.” “다른 곳은 다 떨어졌는데, 여기만 붙어서요.” ”학과 보고요.”와 같은 답글이 주르륵 달린다.
보통은 그 글을 보고 있으면 학교가 별로라는 식의 학생들의 생각이 읽힌다. 그런데 단지 네이밍 약한 학교에 대한 저평가뿐 아니라 자기 자신들에 대한 가치 평가 또한 낮게 매겨놓은 뉘앙스가 많이 보여서, 내 기분은 좀 묘해진다. 무엇보다 그 심경을 잘 아는 나로서 그 친구들의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나는 1-2등급의 내신 성적을 가질 정도로 학업 성과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수능을 기점으로 내 삶의 방향은 많이 달라졌다. 높은 내신 등급이 쓸모를 다하지 못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학 졸업장은 그냥저냥이라 불릴 만한 곳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스무 살의 어린 나는 그 점으로 나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 시절 나는 대학이라는 소속에 대한 가치매김과 나 자신에 대한 가치 평가를 동일시했다. 또는 동일시에 실패했기 때문에 마음이 내내 슬프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 사회생활도 해보고, 두 번째 대학을 선택하면서는 예전의 마음과는 많이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역시 대학을 선택할 때, 대학교 자체에 대한 등급이 신경 쓰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나 주변 아는 사람에게 대학에 대한 평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할수록, 그리고 해가 쌓일수록 내가 알게 되는 건, 내가 다니는 곳이 어디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의도와 본질, 그리고 자세라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때로 착각한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사실 매우 단순하게 일차적인 시선으로만 본다면, 그 생각은 틀리지 않다. 현시대에 예쁜 옷을 입고 비싼 것을 먹고, 상위 클래스 대학 졸업장, 대기업... 그런 것들은 개인의 위상을 드러내기에 얼마나 매력적인 요소들인가. 그리고 그 모습만을 보고 타인을 평가할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삶을 '사는 중인 사람'으로서, 혹은 삶을 진지하게 '꾸려나가는 사람'이라면, 이 점이 자신을 옭아매는 매우 작은 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덩이에 갇히면 삶의 많은 것이 하잘것 없어진다. 그 덩이에 맞물려 자신에 대한 가치 또한 낮게 평가한다면, 자신의 가능성은 그렇게 스스로 무참히 꺾여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 자신에게는 나의 삶이 가장 소중할 수밖에 없는 법 아닌가? 그런데 단순히 외적 모습에 대한 타인의 평가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면, 나에게 주어진 ‘나 자신의 삶’이 너무나 아까워질 뿐이다.
개똥 밭에 굴러도 개똥벌레는 스스로 빛이 난다. 그 빛은 밤하늘을 영화롭게 수놓을 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그 누구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도 햇살은 닿고 꽃은 피어난다. 그곳이 설령 작은 변방일지라도 꽃은 그저 스스로 완벽하게 제 할 일을 마친다.
나 또한 그 친구들의 씁쓸할지도 모를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좋은 곳, 이름 있는 곳에 가지 못한 그 실패감을 모르지 않으며, 그곳에 속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위에 태어난 슬픔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삶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그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내가 어디에 있든 단지 진심이라면,
나의 의도가 나에게는 옳고,
기회를 얻음에 감사함으로,
그곳에서 해내고자 한다면,
그건 언제든 반드시 '좋은 결말'로
우리의 삶을 빛낼 것이라는 걸.
겉모습보다 내면이 왜 더 중요한 지, 살수록 더 느낀다. 그건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둥 바르게 마음먹어야 한다는 둥의 내용이 담긴 것 때문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 나 자신의 삶을 꾸려갈 원동력이 그곳에서 샘솟기 때문이다.
그냥 진심이면 되는 것,
그건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난 오늘도 내 학과와 내 학교,
내 학업과 그 안에서 열성을 다하는 나 자신을
사랑해 보려고... 바쁘다.
아직은 역시 엎치락뒤치락 실수투성이지만*_*
당신의 진심 하나, 그거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