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신 08.
"나이 들어서 그런가. 요즘은 왜 그렇게 꽃이 좋은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나이와 꽃의 상관관계에 대하여하는 말을. 그리고 요즘은 유독 더 흔하게 들리는 것 같다. 마치 이 말이 우리의 머리에 동일하게 각인되기라도 한 듯. 하지만 왜, 나이 들어감과 꽃을 동일선상에 놓게 된 걸까? 아름다움에 더 감성적으로 빠져드는 나이라서? 호르몬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때라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때라서? 뭐, 이유는 붙이는 대로 가지각색이겠지. 그리고 나는, 나이 들어감과 꽃이 예뻐 보임의 상관관계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동의하지는 못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난 애초에 그냥 꽃이 좋았으니까. 꼬맹이였던 시절부터.
난 항상 꽃이 좋았다. 봄엔 매화꽃이 그렇게도 좋았고, 여름이 되면 나리꽃이며 금낭화, 나팔꽃, 수선화 가리지 않고 좋았다. 가을엔 국화와 코스모스가, 겨울엔 동백꽃이 좋았다. 꽃의 가짓수만큼이나 이유도 다양했다. 고고해서, 수수해서, 특이해서, 화려해서... 등등. 꽃의 모양 하나하나, 자태 하나하나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존재하는 그대로 눈이 가는 게 꽃이었으니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에 꽤나 큰 즐거움을 가지던 나였으니까.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련했기 때문일까? 문득 꽃에서 신을 발견했다. 신이란 아득한 먼 존재가 아닌, 사랑이라는 거대한 이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꽃에서 신을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항상 좋아해 온 꽃에서 신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첫째, 꽃은 필 때 아름답고, 질 때 추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꽃의 양면성을 말한다. 꽃은 피었을 때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싱그럽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이가 들면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알아보는 눈이 더 섬세해지는 걸 보면, 그 아름다움은 보는 시각에 따라 더 깊어진다. 하지만 또한 질 때는 가차 없이 추한 모습을 보인다. 꽃잎은 너덜너덜해지고, 꽃망울은 축 쳐져 볼품이 없어진다. 색 또한 변해서 맥없이 늘어져 있을 뿐이다. 이런 양면성에서 어떻게 신을 볼 수 있을까? 신은 단지 아름답고, 높고, 신성한 그 무엇은 아닐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 말은 시작과 끝을 말한다. 단지 한 극단을 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 양극단 전부인 존재, 그것이 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신은 그랬다. 추할 땐 온전히 추하고, 혹은 스스로 추해지는 존재, 그가 신이었다. 꽃이 필 때도 신, 꽃이 피지 않을 때도 신, 그 전부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둘째, 꽃은 어디에나 핀다. 작은 꽃, 큰 꽃, 조금 더 수수한 꽃, 매우 화려한 꽃 등 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 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명소에도, 사람이 많이 찾는 북적한 곳에도, 어느 이름 모를 집의 담장 위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은 작은 구석에도 피어 있는 꽃. 신 또한 마찬가지는 아닐까? 어디에나 있는 신, 내가 찾기만 하면 찾아지는 신. 대신 내가 보려고 할 때에 볼 수 있는 신, 하지만 보지 않을 땐 보이지 않는 신.
셋째, 꽃은 언제나 핀다. 철마다 꽃이 피어있다. 다른 모양, 다른 종이지만 철을 가리지 않고 꽃은 핀다. 신이야말로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는 않을까? 신은 내 안에도, 내 외부에도 있다. 그 흐르는 에너지 자체가 신이기 때문에. 꽃처럼 언제나 우리 내부에 혹은 곁에 있는 신, 찾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찾게 되는 그런 신.
넷째, 꽃은 느낌으로 전한다. 꽃은 명확한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느낌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때로는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말을 걸어오고, 때로는 위로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향기로 우리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도 하고, 다양한 꽃의 조화로 장소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그 느낌에 실린 감각, 그것은 신의 언어와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신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알아듣기 위하여, 고귀한 상태, 최고의 기쁨 안에 머무르는 일. 꽃에서 전해지는 고고한 느낌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우린 이미 신의 말을 듣고 있는지도.
다섯째, 꽃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듯 꽃에서 전해 듣는 메시지 또한 다르지는 않을까? 어떤 이는 그 느낌을 그저 흘려버릴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근사한 이야기로 들을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그 안에서 신성한 느낌을 들을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꽃을 보는 관점과 해석에 차이가 따른다. 신의 언어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그 미묘한 느낌을 알아듣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도 자기 내부를 정화하는 건 아닌가? 또한 그 다름이 세상을 더욱 재밌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신과의 소통은 그래서 더 스릴 있어지는 건 아닌가?
어쩌면 그저 재밌는 나만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난 그 상상을 이렇게 글로도 썼으니, 아니 나에게는 현실인가?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그냥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도. 특히나 예전의 나처럼, 신을 입에도 올리기 어려운 매우 신성하기만 한 멀고 큰 존재로 여긴다면, 나의 글을 더욱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온전히 사랑 = 신'이라는 관점에서 신을 써본다. 꽃이 만약 신이라면, 신은 참 쉬운 존재다. 어디에서나 그리고 언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아름답고,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존재.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당장 볼 수 있는 아름다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신을 찾는다. 내 앞에 어떤 모습으로 와있는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을 찾는다. 그 어떤 모습이든 기꺼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신을 찾는다. 신이 나에게 꼭 그러했듯 나 또한 그럴 마음자세로 찾는다. 꽃이 만약 신이라면, 신이 만약 꽃이라면, 당장 나를 향해 사랑을 고백해 올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