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2
그건 그냥 본능과도 같은 끌림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늘 그렇게도 물가가 좋았다. 햇살을 받아 모래 위로 찰랑거리는 그 물결이 좋았다. 물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미묘한 느낌을 말로 전달할 수 있을까. 신선하게 찰랑이는 그 좋은 느낌을 내가 감히 손끝으로 써낼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고민이 들 정도로.
이번 방학에 나는 수영을 주요 활동으로 삼았다. 수영은 언제나 나의 오래된 꿈과 같았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누비는 일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하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자유 수영 월권을 끊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을 매일 같이 하다 보니, 문득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글 하나가 떠올랐다. 그 글을 온전히 토해내야만 내 안의 생각이 잠잠해질 것 같았다. 언어치료를 공부해 나가는 과정과 수영의 닮은 점에 관한 내용이었다.
첫째, 좋아하면 알아서 열정이 따른다.
둘 다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랬을까. 일렁이는 물결 안에서 노는 것이 좋았듯 언어치료 공부도 괜스레 끌려서 선택한 과목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것들을 감히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수영은 강습을 배울 때도, 자유로이 수영할 때도 즐거웠고, 전공 공부는 배울수록 흥미가 돋았다.
나는 이것들을 하는 시간이 좋았고, 해내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마음에는 또 다른 열정이 생겼다. '더 잘하고 싶어'라는 욕심이 동반된 열정이었다. 수영을 하면서는 속도가 빠르면서도 선이 예쁜 자유형을 구사하고 싶었다. 전공 공부에서는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평소 귀차니즘이 심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열정은 나를 자연스레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더 빠르고 예쁜 수영을 하기 위해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나는 언어치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종종 책을 찾아 읽었다. 좋아하는 일이라 자연스레 잘도 하고 싶어서.
둘째, 오늘 다 불태울 필요는 없다.
문득 그런 날들이 있다. 체력적으로 매우 받쳐주는 컨디션이 좋은 날.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욕심이 생긴다. '오늘은 더 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더 할 수 있음을 믿고 과하게 자신을 밀어붙이면 탈은 당일이 아니라, 다음 날 나기 십상이다. 근육통이 오거나 갑자기 무기력해지거나, 어제완 너무도 다른 상태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건 수영이건 공부이건 어떤 일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꾸준히 하고 싶거든, 한 번에 몰아서 하지 않는 조절이 필요하다. 오늘 상황이나 컨디션에서 그 모든 일을 단번에 소화 가능할 것처럼 보여도,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 같이 무모하게 행동하는 건 금물이다. 이건 내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바이다. 다음 날 곧 체력적 한계와 심리적 무기력을 동시에 겪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니까. 좋아한다고 화로의 숯을 단번에 태워버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셋째, 기초 자세부터 제대로 하자.
수영을 하다 보면 기초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지 갈수록 알게 된다. 호흡, 발차기, 코어 사용, 어깨 돌리기 등. 만약 기초 자세가 무너지면 아무리 더 나은 실력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어렵다. 게다가 올바르지 않은 자세를 계속하다 보면 그 자세가 굳어져 바로잡기는 더 어렵게 된다. 어쩌면 이 말에 대해 '대회 나갈 거 아니니까, 그냥 생활 수영이니까 앞으로만 나가면 되지, 상관없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어디에 보일 것도 아니고 자기만족인데,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알고 하면 더 좋잖아?
이건 역시 공부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초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다음 심화 단계로 나아가려고 할수록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건 무엇보다 마음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좌절감이나 포기 의식이 쉽게 생기지 않을까. 또는 굳이 더 길게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마음 잡는 일로도 벅차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언어치료 공부는 전문가가 되는 과정의 공부이기 때문에 기초가 매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넷째, 비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겨울에도 한차례 공설 수영장의 자유수영을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난 이제 네 가지 영법을 갓 배운 신입 자유 수영러로서 어떤 오만감과 경쟁심이 있었다. 강습을 배울 땐 그래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온 나로서 더욱이 그런 마음상태였다. 그때엔 25m 레인에서 갓 50m로 넘어간 단계인데도,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25m에서 1,000m는 거뜬하게 쉬지 않고 돈 것처럼 50m 레인에서도 잘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그저 만만의 착각이었다. 50m 레인의 느낌은 그야말로 또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마음에는 유독 타 레인에서 도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비교심이 많이 올라왔다. '저 사람은 꽤 빠른걸?' '잉? 난 왜 이렇게 느리지?' '뭐야, 왜 이렇게 안나가?' 잘할 줄 알았던 내 실력을 큰 세상에서 다시 보게 되자 그 패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좌절감은 자괴감과 함께 때로 분노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자괴감을 낳을 뿐, 나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성장하려면 나에게 맞는 나의 속도가 필요했던 거였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맞는 나의 공부 속도, 공부 내용, 공부 시기가 있는 법이다. 남들과의 비교는 독이 될 뿐, 그래서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거다.
다섯째, 문득 몰입감이 생긴다.
수영을 꾸준히 해보니, 나는 요즘 수영을 하는 동안 어떤 일체감을 느낀다. 그건 생각이 없어지는 마법을 부린다. 장자가 호접지몽에서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남긴 유명한 말처럼, 문득 내가 수영하는 중인지, 수영이 내가 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건 어떤 노력을 동반했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레 찾아온 상태였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수영장을 돌고 있는 나를 불쑥 인식할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이건 때로 전공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읽고 있는데, 내가 글을 읽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 글 안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내가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짧은 상태에, 가끔 경험을 했다.
누구든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좋아하는 걸 잘하거나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한 발자국 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이때의 우린 조금 순수해졌으면 좋겠다. 좋아하면 좋아한 대로 그냥 표현했으면 좋겠다. 그 일이 우리를 진짜 자신으로 이끌 것을 믿으며 말이다.
그런데 정말 본능이었던 걸까. 내가 수영에 끌린 이유가 사주 속에 숨어 있었다니(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