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런 방법들을 쓰지 않고 정신과에 내원도 하지 않은 채로 우울증을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정신병 안아키'로 성장하면서 스스로에게 '우울증 방치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실험 결과, 우울증을 방치하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은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정신질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가 오면 '극심한 불안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불안감,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심리적 묘사다. 그래서 공황장애가 '신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처음 공황장애가 찾아왔을 때 어땠냐면,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더부룩했다. 그래서 심하게 체한 줄 알고 가정의학과에 가서 소화제를 받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공황장애에 소화제라니, 나을 리가 없지.
혹시 정신질환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정신과에 증상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공황장애라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 약을 복용하자 증상이 완화되었다.
이와 같이 공황장애가 왔을 때 정신보다는 '몸'이 아프다고 느끼기에엉뚱한 병원에 내원하게 된다.
나처럼 공황장애를 위장병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심장 박동이 의식되는 증상이 두드러질 경우 심장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숨이 부족하고 답답한 감각이 강할 때에는 폐병, 혹은 비염이 생긴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어지럼증이 심한 사람은 빈혈로 오해하고 피검사를 받아보기도 한다.
물론 정말 몸이 아픈 경우에는 해당 의학과에서 알맞은 치료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공황장애일 경우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공황장애는 정신질환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의학과에서는 공황장애 진단을 내려주지 않는다. 가장 근접하게 나올 수 있는 답변이 '스트레스성'이라는 답변이다.
단순 스트레스성으로 신체가 잠시 아픈 것이라면, 스트레스 상황이 사라질 때 증상도 함께 사라진다. 때문에 따로 내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과에 내원해야 한다.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는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 스트레스를 2주 이상 받고 있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경우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자체적인 스트레스 해소도 어렵다.
둘째, 처음부터 공황장애였는데 알아보지 못했음
앞선 예시들처럼 공황장애의 증상을 신체적 질병이라고 착각한 경우다. 스트레스의 원인 자체는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원래의 정신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위의 두 경우 모두 아직 초기 공황장애를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증상이 나타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공황을 의심하고, 정신과에 내원한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일 때 얼른 가야 잡을 수 있다. 안 그러면 우리가 아는 대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고 공황발작이 온다.
초기 공황장애는 처방받은 약을 성실히 먹는 것만으로 나을 수 있다. 약을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던 것이 사라지고, 숨이 가쁘던 것이 안정된다. 소화불량도 없어진다. 그리고 '아, 원래 이랬었지. 나 원래 이렇게 편했었는데.'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울증이 현대인의 감기라면 공황장애는 현대인의 '심한 감기'이다. 우울증이 악화되면 공황장애가 생길 수 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공황장애가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약 없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초기 공황장애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병을 방치해서 더 아픈 채로 삶을 지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당신의 우울증 표류기』에서 전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것이다.
정신의 병이라고 해서 신체의 병보다 더 간과할 이유도 없고 더 아파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