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우리 집 (2021.05)
남편은 부동산 투자를 혐오한다. 평생 집을 소유하지 않겠다며 내게도 따라 줄 것을 요구했다. 결혼 후 딱 한번 오르는 전셋값을 따라가지 못해 집을 산적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도 몇 년 살지 못했다. 해외 이사 네 번, 남의 나라에서의 이사 두 번을 포함해 총 열두 채의 집에 살았다. 계속 오르는 전셋값에 떠밀려 이사한 적도 있고 주인이 입주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사한 적도 있었다. 집을 사지 않아도 한 군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던 남편은, 열 한 번의 이사 후 벽에 못 한 번 내 맘대로 박아보자는 나의 작디작은 소망을 받아주었다.
원래는 아파트 일 층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속에서 숨이 막혀 힘들어하는 나 때문에 결국은 정원 딸린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 사는 집은 우리의 열세 번째 집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주택에 살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주인집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잔디를 주기적으로 깎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그 기억이 좋지 않았는지 이사 후 잔디 깎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우리가 고른 단지는 북향 땅에 조성되어 있다. 북향 땅에 잘못 지은 남향집은 북향집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구조를 가진 집이 동향이라 망설였는데 차라리 동향집이 안전한 선택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은 단지 메인 도로 쪽을 향해 있는 필지라 아직 그때의 결정에 후회는 없다. 동향집이지만 집 구석구석에 빛이 잘 들고 거실에서는 우리 정원만 보이는 아늑한 집이다.
잔금을 치러야 하는 날짜까지 원래 살던 집이 안 나가는 바람에 잔금 날과 이삿날 차이에 일주일의 여유만 있었다. 9년 된 집이었지만 워낙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어 보여서 2층 방 두 개의 벽지 도배만 하고 입주할 생각이었다. 잔금을 치르고 집에 들어가 보니 새로 페인트칠을 했다던 말이 무색하게 가구가 놓여 있던 자리는 칠이 되어 있지 않았다. 급하게 사람을 구하고 페인트 색상을 정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빠졌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동안 매일 새 집에 들러야 했다. 공사 상황을 보거나 택배를 받고 다시 서울로 일을 하러 가야 해서 하루에 150km 이상 운전한 날이 많았다. 매일 밤 두세 시간 정도밖에 못 자던 때라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데크에 앉아 정원을 바라볼 때면 내가 정말 이 집에 살게 되는구나 가슴이 뛰었다.
입주 당시 정원에는 커다란 나무가 참 많았다. 배달을 시키거나 손님이 방문할 때 집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칠 만큼 눈에 띄지 않는 집이었다. 숲처럼 아늑한 느낌이었지만 벌레를 무서워하는 바람에 정원 구석구석을 살필 용기가 생길 때까지 반년이 걸렸다. 가시가 있는 나무가 많아 정원을 돌볼 때 자주 손을 다쳤다.
입주 후 오 개월 만에 하수관 공사할 일이 생겨 남쪽 정원을 다 파헤친 채로 겨울을 났다. 빨래나 샤워도 제대로 못한 석 주간의 공사 기간도 힘들었지만 어수선한 정원 모습 때문에 많이 속상했다. 집주인이 바뀌면 땅에서 꼭 문제가 생긴다는 미신 설파 같은 위로를 받고 어이가 없었지만 진짜 이 집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첫겨울을 보내고 나서 겨울 내 구상했던 모습으로 정원 공사를 시작했다. 직선으로 되어 있던 남쪽 화단 모양도 곡선으로 만들고 지하로 관이 지나가는 두 지역 사이에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벽돌 데크도 동그랗게 만들었다. 네모난 외부 수도 바닥도 동그랗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수명이 다해 가는 체리 나무 두 그루를 베고 도로를 더럽히던 뽕나무도 베어 냈다. 가시가 많은 두릅나무와 병들어 과실을 맺지 못하는 앵두나무, 살구나무도 뽑았다. 들어가기 무서웠던 구석구석이 밝게 정리되었다.
데크 앞을 가리던 영산홍과 회향목도 없앴고 체리나무를 뽑아낸 자리에 산딸나무를 심었다. 병충해가 많은 과실수는 없애고 작은 토종 꽃나무로 하나씩 채워갈 계획을 세웠다. 북쪽 펜스에 맞닿은 집도 해가 많이 들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신 프라이버시를 위해 펜스를 따라 에메랄드그린을 심었다. 나무가 정리되어 땅이 드러난 곳에는 잔디를 심었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정원일을 하는 날이 허다했다.
한 번도 페인트칠을 한 적이 없는 집 외부도 회색빛이 살짝 도는 흰색으로 칠했다. 안방 위에 있는 2층 테라스도 장마 전에 다시 방수 공사를 했다. 나무데크도 뜯어냈다. 처음에는 데크 펜스를 없앴고, 썩어 수리가 필요해진 부엌 앞 데크 자리에는 시멘트와 타일로 바닥을 마감했다. 문을 다 열 수 있는 썬룸을 만들었다.
올봄에는, 사용하지 않고 짐만 쌓이는 안방 앞 파고라도 없앴다. 햇빛이 그대로 안방 창을 통해 들어오게 하고 싶었다. 대신 데크 자리를 화단으로 만들어 안방에서도 정원이 가까이 보이게 했다. 계속 관리가 필요한 나무 데크는 모두 벽돌 데크로 바꾸었다.
이제 벽에 생긴 구멍을 막거나 짧은 우수관을 만드는 등의 작은 공사는 스스로 한다. 삼 년 동안 이사 하자는 말없이 잘 살면 부엌을 원하는 모양으로 고쳐 주겠다던 남편은, 눈만 뜨면 정원에 나가 있고 계속 정원 공사를 하는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무릎에 허리에 이제 발바닥까지 성한 데가 없으니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일하지 말라는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의사도 몸이 힘들어하는 것은 좋은 징후가 아니니 제발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그동안 우리 집은 사람들이 지나치던 집에서 눈길을 끄는 집으로 바뀌었다. 꽃이 피면 펜스 너머로 꽃구경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집이 예뻐졌다며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원래 있던 돌담장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서 당황한 적도 있다. 집을 새로 짓냐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바꾸다 보니 집이 점점 나를 닮아간다. 사람을 만나는데 거부감이 없는 집, 칭찬받기 좋아하는 집이 되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더 나아질 여지가 있는 공간이 있는 점도 나를 닮았다.
며칠 전 대학 친구들이 놀러 왔었다. 서울에 집이 여러 채 있거나 그 집을 다 합친 것만큼 비싼 집에 사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모두 나의 작은 집에서 위안을 받고 갔다. 비가 촉촉한 정원을 즐기며 자주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내가 부지런해서 집이 더 예쁘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사 온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 집 보러 다니지 않아도 되니 좋지?”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물었다.
“응, 괜찮네, 공사만 안 하면.”
“큰 공사는 다 끝났어, 이제 보수만 하면서 살면 돼. 근데 내년에 부엌 고치는 것 맞지?”
순간 커다란 남편 눈이 더 커졌다. 잔소리가 길어지기 전에 다시 정원에 나갔다.
내가 지은 집은 아니지만 점점 나를 닮아가는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구석구석 내 모습이 깃든 나의 마지막 집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