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쌓여 인생이 된다
지난주 월요일 인스타에 접속하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우리 집 정원을 취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정원이나 전원주택에 대한 잡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던 탓에 시골책방 작가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작가님은 괜찮은 잡지이니 걱정 말고 취재에 응해도 된다고 하셨다. 사진을 예쁘게 찍어 주실 것이라 덧붙이셨다.
이번에는 정원 상태가 문제였다. 예상치도 못했던 가을장마로 꽃나무며 화초며 다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가을 장미도 피기 전이었다. 비를 핑계로 자리를 옮긴 꽃나무들은 아직 잎도 제대로 못 내고 있었다.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던 정원이 갑자기 초라해 보였다.
메시지에 답을 보냈다.
‘제의 감사합니다. 우리 집 정원이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작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답 주셔서 감사해요! 크기가 작아도 수종이 다양하고 조닝이 잘 되어 있어서 충분히 잡지에 예쁘게 담길 것 같아요. 기회 주시면 예쁘게 잘 찍어 볼게요.’
친절한 답변에 홀린 듯 ‘좋은 추억’ 하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장마를 핑계로 뒷전으로 미루어 두었던 잡초도 뽑고 시든 꽃도 정리했다. 비어 있는 화분에 국화도 사다 심었다. 일주일 만에 뭔가를 바꾸는 것이 무리이기도 하고 어색해 보일까 봐 나머지는 그냥 있는 그대로 공개하기로 했다.
촬영 당일이 되었다. 명함을 건네는 기자는 메시지의 말투처럼 상냥했다. 따로 도착한 사진 기자도 인상이 좋았다. 그 와중에 카메라와 렌즈에 자꾸 눈이 갔다. 내가 쓰는 카메라 후속 기종이라 궁금한 게 많았지만 카메라 질문만 할 수는 없어 꾹 참았다.
“정원이 참 이국적이네요. 영국식 정원을 생각했거든요.”
“제가 소나무와 철쭉을 안 좋아해서 입주 때 있던 나무 중 여섯 그루만 남기고 다 다시 심었어요.”
“보통 정원 촬영 나가면 소나무와 철쭉이 많은데 그래서 더 이국적으로 보이나 보네요.”
정원을 거닐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꽃은 주로 어떤 기준으로 심으세요?”
“이제 2년 차라 잘 몰라서요.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세 포트 정도 사서 여러 화단에 나누어 심어 봐요. 그래서 살아남으면 키우고 잘 안되면 포기해요. 이 쪽은 한국 야생화 위주로 꾸미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토종은 안 보이는데요?”
기자가 웃으며 물었다.
“이 수국도 탐라산수국이고 이 나무도 산딸나무예요. 분꽃도 토종이고요. 순비기나무도 보기엔 이국적이지만 토종이래요. 될 수 있으면 월동도 잘 되고 병충해에도 강한 토종나무로 선택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화초가 대부분 수입종이고 사초가 많아서 표시가 안 나요.”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2년 차인데도 아는 게 많으시네요. 공부는 어떻게 하세요?”
“우선 사두고 인터넷 뒤져가며 공부하는 편이에요. 공부해서 사러 나가도 예쁜 꽃 보면 자꾸 들고 와서 다시 해야 하지만요. 막 심은 것 같아도 제가 보는 방향에서 예쁜 구도와 색상 봐가며 신경 써서 심은 거랍니다.”
대화가 이어지니 나의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 혼자 만든 정원에는 주제가 없었다. 그동안 주위에서 아는 것이 많다며 질문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청해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진을 찍을 차례가 되었다. 사진 찍는 건 좋아하지만 찍히는 건 익숙하지 않아 로봇 자세가 되었다. 남편도 아들도 사진 찍는 걸 즐기지 않으니 내가 모델이 될 일은 잘 없었다. 어색해서 안 찍겠다고 하려다가 언제 내 정원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리 앉아도 어색하고 저리 앉아도 어색했다. 결국 강아지와 함께 찍었다. 시선을 시키는 쪽으로 옮겨가며 찍다 보니 점점 어색함이 사라졌다. 선룸에서 정원을 내다보는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잡지면에는 안 실릴 수도 있지만 사진은 보내 주겠다고 했다.
사진 촬영과 인터뷰는 두 시간 내로 끝났다. 취재하러 오기 전에 인스타 피드와 브런치를 다 살펴보았다길래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선물로 주었다. 내 정원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가 함께 나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책에도 나왔는데요 뭘. 괜찮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간 후 메시지로 내 병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내용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다 알고 쓰는 것이 모르는 상태에서 쓰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짧은 방문이었으나 긴장이 풀리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 시간과 책에 인쇄되어 나올 정원 사진 생각 때문인지 기분 나쁜 피로감은 아니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원을 가꿀 때 언제가 제일 좋으냐는 질문이 있었다. 꽃이 잘 필 때라던가 새로 심은 화초가 잘 적응하고 겨울을 넘겨 봄에 새 싹이 돋으면 뿌듯하다던가 그런 답을 기대한 것 같았는데 내 대답은 ‘잡초 뽑을 때요’였다.
“잡초를 뽑으면 잡념이 사라지거든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잡초를 뽑아요. 일부러 작은 잡초는 뽑지 않고 키워요. 나중에 기분이 나빠질 때를 대비해서요.”
그 답을 떠올리니 갑자기 기사 내용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래도 나중에 기억할 추억이 하나 생겼으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