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함께 하는 정원 생활
나는 정원이 있는 집에 산다. 작은 정원은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초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근심과 걱정을 ‘샤르륵’ 녹여주는 곳이라는 의미로 ‘샤르륵 가든’이라 이름도 지었다. 쉽게 ‘샤샤 가든’이라 부른다. <땅의 예찬(한병철 저)>을 읽은 후 SNS에 정원 사진과 정원일기를 올리는 계정도 만들었다. 18개월 만에 내 일기를 함께 읽는 팔로워가 천 명을 넘어섰다.
나는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인한 공황장애 환자이다. 16개월째 병원에 다니며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있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파트에 살 때만큼 빠르게 나빠지지도 않는다.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날에는 ‘샤샤 가든’에 나간다. 맑은 날 데크에 앉아 햇볕을 쬐거나, 비가 내리는 날 파라솔 아래에 둔 의자에 앉아 빗소리를 듣다 보면 불안감이 ‘샤르륵’ 녹아 사라진다. 병원에서 주는 약만큼이나 효과가 좋다.
보통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정원을 돌본다. 진 꽃을 따주고, 장미 잎을 주로 먹는 애벌레도 잡고, 병에 걸린 잎과 가지를 잘라 낸다. 병에 걸린 부분이 넓으면 약도 친다. 계속되는 비나 큰 바람에 쓰러진 꽃들은 잘 묶어 세워 준다. 그리고 정원 구석구석을 살피며 물을 준다. 수형이 나빠진 나무는 자주 가지치기를 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는다. 한 달에 서너 번 잔디도 깎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살아있는 잔디가 더 잘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죽은 잔디를 긁어낸다.
덕분에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끊이지 않는다. 장마 때에도 꽃이 피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에서 내 눈에 가장 잘 띄는 존재는 잡초이다. 비가 며칠 연속으로 내리면 다른 화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무성하게 자란다. 처음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을 때는 잡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뽑았다. 그러다 보니 무릎과 허리도 아프고 피부도 까맣게 탔다. 염색한 머리카락도 금방 탈색이 되고 푸석푸석 해졌다. 정원을 제대로 즐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잡초를 정원에서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해는 잡초뽑기를 위한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우선, 잡초의 범위를 정했다.
어디까지가 잡초인지 결정하지 않으면 신경 써서 만든 정원의 모양이 금세 달라진다. 아직도 잡초와 화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내가 심지 않았거나 제 자리에 있지 않은 경우는 산삼이라 할지라도 모두 잡초로 분류했다.
두 번째, 하루에 뽑을 양을 정했다.
딸기를 담아 파는 빨간색 플라스틱 용기 두 개 분량이 내가 정한 양이다. 의외로 금방 차 버리기 때문에 셀프 샐러드 바의 음식이 리필되지 않던 시절처럼 차곡차곡 눌러가며 잡초를 쌓는다. 용기 두 개를 최선을 다해 꽉 채운 후에는 눈을 질끈 감고 집으로 들어간다.
세 번째, 매일 다른 화단의 잡초를 뽑는다.
작은 정원이지만 구역이 있다. 동쪽 화단은 썬룸 앞에서 시작해 동쪽 펜스를 따라 대문 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남쪽 화단은 펜스 아래에서 서쪽 석축 아래까지 이어지고 현관에서 집 벽을 따라 기역자 모양 화단도 있다. 올해는 서쪽 벽 아래에도 수국 화단을 만들었다. 이제 집 삼면을 따라 화단이 생겼다. 매주 동쪽 화단에서 시작해 남쪽 펜스 아래쪽을 따라 서쪽까지 갔다가 방향을 바꿔 집 벽 쪽 화단, 그리고 잔디밭 순으로 뽑는다. 어느 쪽에도 잡초가 몰려 있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어린 잡초는 뽑지 않는다.
정원을 단정하게 유지하고 다른 화초가 잘 자라게 하려는 것은 내가 잡초를 뽑는 이유 중 아주 작은 부분이다. 매일 뽑는 잡초가 지긋지긋할 것 같지만 잡초가 없으면 되려 초조하다. 우울해지거나 불안한 날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약을 늘여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매우 우울한 날은 어차피 안방에서조차 나오지 못한다. 부엌까지 나와 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날이 아직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울감과 불안함이 다스려지지 않는 날은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하루 종일 호미질을 한다. 기미도 머릿결도 모두 잊고 해가 질 때까지 잡초를 뽑는다. 그런 날 잡초가 없으면 과감한 가지치기가 이어진다. 가지가 다 잘려나가 하나만 남은 나무도 있고, 키가 일 미터 이상 낮아진 나무도 있다.
친구들은 이 모든 것이 나의 정리 본능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리 욕구와는 다른 감정이다. 몇 달 전 <정원의 쓸모(수 스튜어트 스미스 저)>를 읽고 난 후 그 감정이 나의 파괴 본능임을 알았다. 머릿속을 떠도는 잡념을 뽑고, 불안감을 뽑고, 나 자신을 해치려는 마음을 뽑다 보면 점점 마음이 편해진다.
파괴 본능을 알아챈 후부터 잡초뽑기에 조금 게을러졌다. 보기 싫지 않을 정도로만 관리한다. 특히 하루에 뽑을 양은 꼭 지킨다. 파괴 욕구가 강해지는 날을 위해 아껴둔다.
오늘은 오전에 살짝 내린 비를 핑계 삼아 ‘샤샤 가든’ 관리를 하루 쉬었다. 대신 오후에 이웃집 정원에서 나무를 한 그루 베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받고 내 정원엔 잡초가 하루만큼 자랐다. 내가 행복할수록 잡초가 무성해진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애물단지로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나는 잡초와 공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