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49화
C는 대학생 때 교육열이 높은 어느 지역의 독서논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전까지 주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쳐왔지만,
사교육 트렌드에 맞게 학원에
저학년 독서논술 반을 확장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반을 강제로 떠맡게 되었다.
초등학생은 처음이라 C는 어리둥절했지만,
다행히 수업은 힘들 게 없었다.
중고생들처럼 자료를 준비하거나 첨삭할 필요 없이
정해진 학습지를 읽고 나서 짧은 글을 쓰면 수업 끝이었다. 게다가 소수정예라 아이들은 4명 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실수라고 한 것일까?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원장실로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잔뜩 긴장한 C는 원장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oo이가 엄마 얘기 안 해요?"
"네. 엄마랑 사이가 무척 좋은가 봐요. 오늘 엄마가 맛있는 간식 만들어줬다고..."
"또 엄마 있는 척했나 보네. 작년에 걔 엄마가 죽었거든. 자꾸 거짓말을 해. 병원에서 그러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데... 얘 아빠가 많이 걱정해요. 전에 있던 반에서도 발작을 해서... 아무튼 선생님 잘 지켜봐요. 다른 애들한테 갑자기 돌발행동할 수 있어."
C는 수업 내내 "선생님 우리 엄마는요~" 하며 엄마자랑을 하던 oo을 떠올렸다.
고작 9살에 엄마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C는 감히 그 슬픔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무슨 이유로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지 알 수 없지만,
C는 아이가 스스로 엄마의 죽음에 대해 말하기 전까지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학구열이 높은 환경에서 공부한 친구들이라 지치지 않고 수업을 잘 따라왔다.
가르치는 것을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신이 나서 C는 1달 분 교재를 3주 만에 끝내버렸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C는 원장에게 혼이 났다.
정해진 분량에 맞춰 딱 맞는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남은 4주 차에 다음 교재를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재비 문제도 있고...
C는 전공을 살려 심리학과에서 그렸던 생의 그래프를 아이들과 함께 해보기로 했다.
생의 그래프를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자신의 생일, 부모님, 산타할아버지의 멋진 선물, 친구들, 장난감, 초등학교 입학...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답게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그래프.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oo이의 생의 그래프도그럴까?
oo이의 생의 그래프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다른 세 아이들의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
학원 가기 싫어요...
너무 졸린데 엄마가 학원 숙제 다 할 때까지 못 자게 해요...
시험 점수가 안 나와서 속상해요...
친구랑 놀고 싶은데 못 놀아요...
그리고 한 아이의 힘든 고백이 있었다.
"학원 끝나고 엄마 몰래 인형 뽑기 하러 갔다가 집에 오는 데 나쁜 사람들을 만났어요. 아는 언니들이랑 있었는데 너 먼저 가라고 해서 혼자 도망쳤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경찰이 언니들을 찾았는데 많이 다쳤대요. 그때 나 혼자 도망쳐서 너무 미안해요."
아이는 엉엉 울었다. 어느새 oo과 다른 아이들도 C의 품에 안겨 함께 울었다.
C와 아이들을 감싸 안고 위로했다.
너 잘못이 아니야...
너는 힘없는 어린아이니까 언니들이 도망치라고 한 거야...
네가 신고하지 않았다면 더 위험했겠지...
눈물바다가 되었던 수업이 끝난 후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마음껏 토해낸 아이들은 개운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교실을 떠나기 전
oo이 C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선생님, 다음엔 제 비밀얘기 해드릴게요. 저기... 선생님한테만요. 비밀 지켜주실 거죠?"
"그래. 그러자."
엄마 잃은 아이의 눈동자가 맑게 흔들렸다.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C는 영영 oo의 속마음을 위로할 수 없게 되었다.
C는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공부 이외의 것을 했다는 이유였다.
"oo 이는 잘 지낼까?"
C는 가끔 내 앞에서 그 아이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그 아이의 슬픔을 들어주지 못해서 내내 아쉬워했다.
나는 C에게 oo이 잘 지낼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 아이의 생의 그래프에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줄 누군가를 분명 또 만났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