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51화
H는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유명 맛집이라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면 쿨하게 포기했고
주말이나 휴일에 가급적이면 놀이공원, 쇼핑몰, 영화관, 마트를 찾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으면 기 빨려."
H는 사람들을 피해
깊은 밤에나 이른 아침 조조로 영화를 보고
번거롭더라도 평일 퇴근 후 잠깐 마트에 들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고
한적한 카페나 음식점을 골라 소소한 데이트를 즐겼다.
하지만, 딱 한 곳만은 예외라고 했다.
H는 이른 새벽에 헬스장으로 향했다.
출근하기 전에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지만, 아무도 없는 헬스장은 플렉스 그 자체였다.
H는 스트레칭을 하고 트레드밀을 가볍게 달렸다.
이어폰은 굳이 켜지 않았다.
상쾌한 아침 기운을 받아 음악이 없이도 흥이 났다.
잠시 후 몇몇 사람이 헬스장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고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후~ 으허~ 아하~"
처음에 H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설마 이 아침에 헬스장에서 누가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인가...
소리를 출처를 찾아 H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아흐~ 으허~ 아하!"
애초에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치가 아니었다.
너무 무리를 해서 저런 신음이 나오는 걸까?
H는 맞은편 거울에서 시선을 느끼고 눈을 들었다.
어떤 여자분이 H와 같이 소리의 출처를 확인하고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H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부끄러워졌다.
공감의 눈빛을 교환하고 둘은 거의 동시에 이어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어폰을 켜고 급하게 볼륨을 올리는 찰나,
쨍! 하고 강철이 세게 부딪히는 굉음이 들리며 바닥에서 큰 진동이 느껴졌다.
"흐하~"
헬스장 빌런은 한 가지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이 다녀간 기구마다 신음과 굉음 그리고 땀이 흥건했다.
상쾌한 아침은 끈적하고 불쾌하게 마무리되었다.
H는 그 사람을 피해 한적한 다른 시간대를 찾기로 했다.
하지만, 거기엔 또 다른 헬스장 빌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에 나란히 앉아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담소를 나누는 통에
H는 귀를 억지로 닫고, 코까지 움켜줘야 할 판이었다.
H는 또 다른 한적한 시간대를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아주 늦은 밤. 최강 빌런과 마주쳤다.
거울 앞에서 훌러덩 상의를 벗고 땀에 젖은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자아도취에 빠진 그 사람을 보고야 만 것이었다.
귀를 닫고 코를 닫고 이제 눈까지 감아야 하는 것인가.
"헬스장 빌런을 피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한 거였어."
"그게 뭔데?"
H가 명쾌하게 말했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 헬스장을 이용할 것!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가. 사람이 많을 땐 빌런도 정상인처럼 행동하더라고. 같은 사람이 아닌 줄 알았잖아."
H는 헬스장만큼은 사람이 붐빌 때 간다고 했다.
기구가 꽉 차서 좀 기다리더라도 사람들이 많을 때
건강하게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고
따로지만 함께 말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나 사람들 많은 데 가는 거 싫어했잖아. 근데 헬스장에 다니면서 알았어. 인간이 왜 사회적 동물인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왜 좋은지 좀 알 것 같아"
세상엔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각각의 사람들은 다 다르고, 다 별나지만
한데 어울리다 보면
완벽하지 않지만, 괜찮은 세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야만 좋아지는 세상.
서로가 서로의 거울 뉴런을 자극하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