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

5. 어디 딱 너 같은 거 낳아봐라!

by 매콤한 사탕

말미잘은 아름답게 흐느적거린다. 한 번쯤 만져보고 싶은 우아한 몸짓이지만 절대 만지지 말자. 독이 있다. 다만, 말미잘과 공생관계인 흰동가리라면 괜찮다. 말미잘 독에 면역이 있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주황색 바탕에 흰 줄무늬 물고기가 바로 흰동가리다. 갑자기 흰동가리가 무척 친근해진다. 니모는 다 자란 자신을 과잉보호하는 아빠가 별로다. 녀석의 똥 씹은 표정이 말미잘의 독처럼 내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배은망덕한 자식! 엄마 없이 아빠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니모 아빠는 니모 표정을 못 봤나? 그저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아빠는 매일 걱정과 불안에 가득 차 혼자 잘나서 다 큰 줄 아는 니모 녀석에게 ‘천적이 나타났을 때 말미잘로 재빨리 숨는 방법’을 지치지도 않고 몇 번이고 가르친다. <니모를 찾아서>가 이토록 아프다니!


모처럼 주말 근무가 없는 주라 금요일 야근이 싫지 않았다. 느긋하게 팀원들과 도시락을 까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녀석이 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뿐이 아니었다. 상습 지각에 상습 조퇴 급기야 이번 주 내내 학원에 안 나타났다고 했다. 나는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도시락에 문제가 있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학원 수업 중.


녀석의 태연한 거짓 카톡을 보자마자 눈에서 빨갛게 레이저가 뿜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충혈된 두 눈을 사정없이 비벼댔다.


그때부터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초능력자가 분명했다. 팀장은 단시간에 작성한 내 보고서에 잠시 미심쩍어했지만 이내 엄지 척을 날렸다. 내가 이렇게 효율이 좋은 근로자였다니! 야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는 녀석이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했다. 천사 같은 막둥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말미잘은?”

“말미잘, 아직 안 왔는데요.”

“민준아, 형한테 그러면 안 돼! 넌 아들한테 말미잘이 뭐니? 애 앞에서 철 좀 들어!”


야근 때면 막둥이를 돌봐주시는 친정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타박했다.


“이놈의 자식이 학원을 빠졌더라고!”

“엄마! 놈은 안 돼요! 욕이에요!”

“미안, 엄마가 또 흥분했네. 근데 말미잘이 학원에 빠졌어.”

“민준아 받아쓰기 연습해야지. 내일 시험이잖아. 방에 들어가서 받아쓰기하고 있어!”

“네, 할머니. 엄마, 욕하면 안 돼요. 알았죠?”


막둥이가 공책을 들고 자기 방에 들어가면 신신당부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애가 학원 하루 빠질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열을 내?”

“한 번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게 아주 돈이 남아돌아 학원 보내는 줄 알아!”

“아휴, 애가 오죽 힘들면 그러겠어. 공부하는 게 쉬워?”


나는 친정엄마를 지나쳐 녀석의 방에 갔다. 책장에서 문제집들을 꺼내 보았다. 나의 방심의 결과가 펼쳐졌다. 내가 검사를 멈춘 시점으로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은 게 분명했다.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문제집을 책상에 내동댕이쳤다.


“쯧쯧. 성질머리 하곤…. 네가 빡빡하게 구니까 애가 더 그러지.”

“엄마가 뭘 알아?”

“안 봐도 비디오다. 네가 애를 얼마나 못살게 잡았으면 애가 질린 거 아냐! 고등학교 때 어쩌려고 그래?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생각이 없어! 애를 다독이고 풀어주고 해야지.”

“엄마! 사춘기가 쉬운 줄 알아?”

“아휴, 그래도 너보단 낫다.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냐?”


친정엄마를 무시하고 녀석의 방에서 나오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전속력으로 뛰어가 녀석을 다그쳤다.


“학원은 안 가고 어딜 쏘다니냐?”


문제의 녀석은 잠시 얼음처럼 굳었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 대학 안 가요.”

“뭐?”

“게임 유튜버 할 거예요.”

“뭐라고?”

“게임 유튜버 돈 많이 벌어요. 공부 잘해서 엄마 맘에 드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예요.”

“야! 백만 유튜버는 아무나 하냐?”

“엄마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 싫다면서요. 왜 해보지도 않았는데 안 된다고 해요?”

“게임 유튜버는 노력 안 하는 줄 알아? 영상편집하고, 말재주 있고, 게임 잘해야 하는데, 너 게임 못 하잖아!!! 브론즈 등급인 주제에”


내가 속사포 랩 하듯 떠드는 가운데 녀석의 표정은 사색이 되더니 나를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녀석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갔지만 바람이 세게 일더니 내 코앞에서 방문이 꽝하고 닫혔다.


“너 이 문 안 열어!!!”


나는 문손잡이를 흔들며 소리쳤다. 녀석의 차분하고 차가운 소리가 들렸다.


“아들 꿈이나 짓밟는 사람하고 말 안 해요. 그런 사람은 엄마도 아냐.”


그 말에 나는 그만 맥이 탁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내 머리 위로 바람이 불더니 친정엄마가 문을 정신없이 두드렸다.


“이 호랑 말코 같은 놈아!! 당장 문 열어!! 이게 미쳤냐?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감히 내 딸한테!!!”


이럴 수가! 나랑 늘 티격태격하는 엄마가 실은 내 편이었다니! 눈물이 날 만큼 감격한 나는 어느새 방에서 뛰쳐나온 막둥이와 함께 흥분한 우리 엄마를 겨우 말렸다.


“나쁜 년! 어디 딱 너 같은 딸 낳아봐라!”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나도 착한 딸은 아니었다.


나는 내 멋대로 살면서 녀석은 왜 내 말대로 살아야 하나? 그런 법은 없었다.


나는 녀석과 휴전을 선언했다. 나는 당장 융통성 없는 오래된 법전 같은 내 양육법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었지만, 녀석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포기하지 않기!>를 몸소 실천하기로 했다. 게임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녀석을 위해 유튜브 방송 장비를 사들이고, 프리미어 프로를 컴퓨터에 설치했다. 게임 유튜버가 되는 것을 전적으로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단, 대학은 꼭 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녀석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망설이다가 볼멘 목소리로 게임 유튜버 준비하면서 공부까지 잘하긴 벅차다고 했다. 나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사기꾼처럼 사춘기 아들의 로망을 교묘하게 이용해 ‘대학 가면 비로소 네가 꿈에 그리는 이성과 꿈같이 달콤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쌍팔년도에나 통할만한 새빨간 거짓말로 녀석을 설득했다.


옛말에 사람 쉽게 안 변한다고 하지 않나?

자백하자면, 나는 자식을 꿈을 응원하는 멋진 엄마가 되기엔 부족했다.

나는 여전히 녀석을 내 멋대로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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