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

6. 기꺼이 안드로메다로 가자.

by 매콤한 사탕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무음으로 해놨던 스마트폰을 보니 녀석의 학교 담임선생님과 남편으로부터 수십 통의 부재중전화가 와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어느 병원?”


알고 보니 나는 축지법을 쓰는 여자였다. 어떻게 병원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엘리베이터 11층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고 있었다.


“엄마!”


발에 깁스하고 인중에 큼지막한 반창고를 붙인 녀석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괜찮아?”

“괜찮아요. 그냥 넘어진 거예요.”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손이 불에 덴 듯 뜨거웠다.

“당신 이러고 온 거야? 안 추워? 패딩은 어쨌어?”

그제야 나는 행사장에 겉옷을 두고 온 걸 깨달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지금 그게 중요해? 발은 어쩌다가, 얼굴은 또 왜 이래?”
“넘어지면서 입술이 터졌어. 이가 흔들려서 신경 치료해야 할지도 모른데. 발은 인대가 나갔고.”


남편은 ‘인대가 나갔다’는 부분에서 그치지 않고 아들에게 부자가 쌍으로 인공 인대를 갖게 됐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아, 너는 이 순간에 그런 농담이 나오냐? 나는 그만 울컥해 남편을 한 대 쳐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엄마, 그래도 다행이에요. 손 안 다쳤잖아요. 기말고사 준비는 문제없어요!”

“뭐?”

“중학교 마지막 기말고산데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 공부할 수 있어요.”

아들은 웃으며 멀쩡한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이런 씨 발라먹을 놈아, 공부는 무슨 얼어 죽을 공부야! 너 다 나을 때까지 공부하면 아주 내 손에 작살날 줄 알아!”

“봤지, 우리 엄마 완전 욕쟁이다.”

“뭔 개소릴!”

“안녕하세요.”


뒤돌아보니 아들놈 친구 두 명이 인사했다. 나는 갑자기 빈혈이라도 생긴 것처럼 보조 의자에 주저앉았다. 교양 있는 엄마인 척하긴 늦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이 가져온 간식을 나눠 먹다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넘어진 거야?”

“얘들이랑 달리기 시합하다가.”

“엊그제 눈 와서 빙판길이라 학교 올라가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게...”

“너희 설마 학교 끝나고 내리막길에서 달리기 시합했냐?”

“죄송해요.”

“이 새끼가! 돌았어? 네가 슈퍼맨이야? 초능력자야? 이것들이 미쳤나!”

“어머니!”


다인실에서 대차게 욕을 남발한 나는 변명할 새도 없이 간호사 선생님께 몰상식한 욕쟁이 엄마로 찍혀서 병실을 나와야 했다.


남편 패딩을 얻어 입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나는 몇 번이고 창피함에 몸서리쳤다. 아, 한겨울에 이렇게 더웠던 적은 없었다. 나는 남편이 준 패딩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힘이 빠져 나는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스마트폰 진동이 느껴져 열어보니 녀석으로부터 톡이 와 있었다.


- 엄마, 걱정시켜서 죄송해요.


답문을 보내려는데 녀석이 아쿠아리움에서 찍었던 말미잘 동영상을 보내왔다. 흐느적거리는 말미잘 동영상을 재생하고 있는데 녀석에게서 두 번째 톡이 왔다.


- 엄마, 사랑해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말미잘이다!”


어느새 내 앞에 온 막둥이가 말미잘 동영상을 보고는 두 팔을 높이 들고 흔들며 말미잘 흉내를 냈다.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형아 말미잘이죠? 빙판길에서 슈퍼맨 놀이하다가 많이 다쳤잖아요. 아휴~ 사춘기. 엄마! 저는 사춘기라도 형아처럼 안 할 거예요. 엄마 속상하지 않게. 난 받아쓰기 백점 맞는 멋진 남자니까. 그죠?”

“그럼~ 우리 아들 최고 멋진 남자지”


나는 천사 같은 막둥이를 꼭 껴안았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아기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차차!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옛 격언을 잊지 말자!

이 정도의 황소고집이라면 이 녀석의 사춘기는 절대 형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막둥이의 등을 토닥이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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