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남용

별별 사람들 37화

by 매콤한 사탕

그 사람은 어느 행사장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이였다.


"전 매일 일기를 써요."

"무언가 매일 꾸준히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시네요."


보통 일기를 쓴다는 것은 좋은 습관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사람의 난데없는 고백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나의 명백한 실수였다. 흡족해진 그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더 바짝 내게 다가왔다.


"우린 왠지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전 사람한테 큰 기대를 안 하는 편인데 OO님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하네요."


감성이 충만한 그 사람은 순식간에 선을 훅 넘어왔다.


"회사생활하다 보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다 내 맘에 들진 않잖아요."


그 사람은 직장 동료들에 대한 불평을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그 사람의 마음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동료들은 그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악당들이었다.

급기야 울먹이기 시작한 그 사람에게 티슈를 건넨 것은 나의 두 번째 명백한 실수였다.


"정말 좋은 분이세요. 제 동료들이 OO님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의 어떤 점이 그 사람을 무장해제시켰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나 말고 여태 없었을지도...

그만큼 이야기는 강 건너 산을 넘고 있었다.

그 사람은 혼자 야근할 때면 몰래 회사 CCTV를 돌려본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동료들의 컴퓨터를 켜고

서랍장을 일일이 열어본다고...

도대체 왜?


그 사람은 순진하고 완전무결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직장동료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일 일기장에 직장동료들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10장씩 쓰는 거라고.


이런 미친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 사람은 내 겁에 질린 표정을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나는 그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내 말을 듣던 척척박사 J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재능이라 네가 심리상담사가 될 걸 그랬다."

"농담하지 마. 그럴 기분 아니야. 혹시나 거래처에서 만나면 어쩌지?"

"세상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편집성 성격장애라..."


척척박사 J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감당할 수 없을 땐 도망가야지. 일기를 데스노트로 쓰는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


일기를 쓰는 것은 자유지만, 자기만의 세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제발, 그런 일기의 등장 인물이 되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이전 06화야수의 심장으로 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