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여당이 곧장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이번 결정을 “사법 정의의 후퇴”로 규정하며 사법부 전체를 향해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국회 법사위 간사는 사법부가 내란 세력을 비호한다는 식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발언이 단순한 정치적 논평을 넘어 사법부를 겁박하고 판결의 영역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 여당이 ‘특별재판부’를 설치해 원하는 판결을 끌어내겠다는 주장은 헌정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발상이다.
삼권분립의 대원칙은 입법·행정·사법이 서로의 고유 권한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란 특검이 제기한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은 법원의 권한이다. 재판부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불구속 수사가 타당하다고 봤다. 이는 절차적 정의의 기본 원칙을 따른 것이며, 혐의의 중대성과 별개로 구속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각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다. 오히려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를 방조했다는 도의적 책임과 형사법적 책임은 엄연히 다르며, 이를 억지로 동일시하는 것은 법의 영역을 정치적 단죄의 도구로 만드는 위험한 접근이다.
여당의 문제적 발언은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사법부를 공개적으로 흔드는 데 있다. ‘내란특별재판부’라는 용어 자체가 비상 상황을 전제한다. 혁명도, 반란도 아닌 정상적 정권 교체 상황에서 사법부에 특별 재판부를 만들라는 요구는 곧 판결 권한을 입법부와 행정부가 빼앗아오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이는 헌법상 명백히 보장된 사법 독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위헌 소지가 농후하다. 정치권이 스스로의 의도에 맞는 판결을 얻기 위해 재판부를 쥐락펴락하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것과 다름없다.
법원은 수사기관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다퉈볼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을 뿐이다. 이는 사법부 본연의 기능인 판단 행위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이를 두고 “내란 세력 봐주기”라고 매도하는 것은 정치적 언어로 사법 절차를 왜곡하는 행위다. 정치가 사법을 지휘하고 판결까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태도는 결국 ‘정치재판’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국민의 신뢰는 이런 방식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산이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유지된다. 사법부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특별 재판부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사법부가 우리 뜻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제도를 만들어 강제로 원하는 결과를 얻겠다”는 선언과 같다. 정치가 법 위에 군림하는 순간, 법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국론은 극단적 분열로 치닫는다. 정치권이 지향해야 할 길은 판결 불복이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과 증거의 엄밀함을 통해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법이 정치의 하위 개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가 법의 한계 안에서 질서를 존중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법은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서는 최후의 보루다. 여당도 특검도 이제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강압과 무리수를 반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불복과 국론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정치의 역할은 사법부를 겁박하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신뢰를 지켜내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