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무엇이 달라졌는가
2025년 7월, 상법이 다시 고쳐졌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며, 이사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법은 이번엔 분명한 대답을 남겼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되었고, 이사의 충실의무는 ‘회사’에서 ‘회사 및 모든 주주’로 확대되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해야 하며, 독립이사의 역할도 이전보다 한층 강화되었다. 얼핏 보면 자본시장의 지배구조가 보다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제도는 늘 선언으로 시작하고, 그 선언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언제나 그다음 문제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모든 주주로 확대됐다는 점은 분명 개정의 핵심이다. 하지만 ‘모든 주주’는 생각보다 다양한 요구를 내세운다. 행동주의 펀드는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국민연금은 ESG 경영을 중시한다. 소액주주는 단기 수익을, 외국인 투자자는 환율 안정성을 원한다. 이사에게 이 중 누구의 이해를 “충실히” 따라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법이 충실의무의 대상을 넓히자, 오히려 이사들의 판단 기준은 더 모호해졌다. 의도는 명확했지만, 해석은 더 복잡해졌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해석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다. 미국은 이사회 판단의 기준을 SEC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일본은 주요 상장사들이 이사회 내 위원회(감사·보상 등)를 운영해 사전 숙의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우리는 여전히 충실의무라는 단어를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데 머물고 있다.
전자 주총의 의무화 역시 그럴듯한 표어를 지녔다. ‘참여 장벽을 낮춘다’는 명분 아래, 다수 기업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실시간 질의응답을 차단하거나, 영상 송출 없이 ‘기술적 이유’로 전자 의결만 허용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안건은 클릭 한 번으로 통과되지만, 그 안건이 충분히 토론되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실제로는 전자투표율이 낮고, 전자주총으로 인해 소통이 단절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이름만 ‘전자’, 내용은 ‘관행’에 갇힌 이사회가 늘어나는 것이다. ‘열린 주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회의’에 가까운 제도화는 참여의 형식을 소비하면서도, 그 정신은 비껴가고 있다.
3% 룰은 대주주 견제라는 명분에서 출발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지분을 보유한 외국계 펀드에는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사례처럼, 고배당과 이사회 개편 요구가 현실화되는 구조는 한국 기업에게 전략 유출, 기업가치 훼손의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 주요 방어장치 대부분을 ‘선진국에서 보기 드물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맹목적 수용이 아니라, 조건부 허용을 통한 균형 설계다. 일정 기준 하에서의 방어장치 허용은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 질서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견제는 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방패 역시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상법 개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법은 구조를 바꾸는 최소한의 전제이며, 제대로 설계된 제도는 변화를 위한 발판이 된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그 구조 위에 실천이 쌓일 때 비로소 시작된다.
기업은 사외이사를 단지 ‘외부 사람’으로 임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교육 기회 제공, 회의 자료 사전 공유, 회의록 투명성 확보 등 운영 전반의 정교화를 통해 실질적 독립성을 구현해야 한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또한 예외가 아니다. 전자주총의 질적 운영 여부를 공시 항목으로 포함하거나, 예탁결제원과 함께 공통 플랫폼을 도입해 시스템 비용을 낮추는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충실의무의 해석이 혼란스럽다면, 금융위나 법무부 산하에 ‘이사회 판단 자문단’을 설치해 사전 상담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제는 태도만이 남았다. 법은 구조를 바꿨다. 그러나 제도는 언제나 선언과 실천 사이의 거리로 완성된다. 법이 길을 냈다면, 그 길 위를 걷는 것은 기업이며 시장이며 정부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뀐 법’이 아니라 ‘달라진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