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은 지금 어떤 책 속에 있나요?

의문당 독서모임을 마무리하며

by Woozik

친구와 술을 마시다 문득 질문 하나를 듣습니다. 앞으로 졸업까지 남은 1년, 그 기간 동안 정말 네가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당장 돈도 벌어야 하고, 취업을 위해 스펙도 준비해야 했죠. 그런데 술기운 때문인지 정말 가슴속 깊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습니다.


독서모임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크게 웃기만 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저는 책을 읽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읽지도 않았던 그냥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며칠 뒤 제가 마음 맞는 친구와 만나서 정말로 독서모임을 만들었죠. 저희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임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생긴 질문을 서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모임입니다. 그렇게 의문을 던지는 독서모임, 의문당(疑問堂)이 시작되었습니다.




독서에 진지하게 뜻을 품지 않은 분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독서모임의 규칙은 유명 독서모임인 트레바리의 방식에서 따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몇 가지 엄격한 규칙을 내세웠죠. 그래서 모집글에 당당히 적었습니다. "친목도모나 향락보다, 함께 독서를 통해 '성장' 하는 것이 본 모임의 목적입니다. 독서에 진지하게 뜻을 품지 않은 분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그렇게 7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첫 독서모임은 시작되었습니다.


모임 전 규칙

완독 후 독후감 (500자 이상) 미리 쓰기.

금요일까지 본인의 독후감 (논의하고 싶은 내용 1가지 포함) 카톡방에 공유

다른 학우들의 독후감에 피드백 댓글 달기.

한 달 (2회) 모임을 진행하는 발제자는 다른 사람들의 독후감을 읽고 토론 주제 2개 선정

모임 전, 토요일까지 카톡방에 주제 공지 띄우기.



바쁜 생활을 지내면서 책을 꾸준히 읽기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부끄럽게도 저 역시 이러한 규칙을 못 지키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규칙을 내세우니 어떻게 서든 책을 읽었습니다. 특히 제가 발제를 맡게 된 날이면 책을 읽고 자료조사까지 하느라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러한 모임 규칙을 끝까지 고수하였으며, 결국 이는 저희 독서모임을 지탱하는 커다란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지난 일 년 간 저로서는 놀랄 만큼 상당량의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의문당 지난 일 년간의 독서 기록들



저희 7명이 모여서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일 학년 때는 고학번 선배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멋있게 팀원들을 이끌고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저도 졸업하고 취업할 때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 제가 지난 일 년 동안 의문당이라는 독서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박준의 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모든 글의 만남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시집에 담긴 이 문장은 저에게 참 많은 의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저희 독서모임 때 그런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순간, 제의 삶은 이미 많은 부분들이 변하였습니다." 어떠한 문장을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 삶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의심 없이 믿고자 합니다.



이제는 저도 이렇게 믿어보려고 합니다.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 모두 각자의 책 속에서

알 수 없는 페이지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글에서 만납시다

글이 아직 미완성일 수 있습니다.

글이 여전히 첫 페이지에서 헤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답다'는 말처럼

글을 통해 만나는 우리의 다음 인연은

언제나 아름다울 텝니다.



책과 의문당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끝으로 시 한 편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 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view] 열 두 발자국, 정재승(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