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 세상이 정해놓은 표준공식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걷기까지
얼마 전 조수용 님의 인터뷰를 다시 보게 됐다. 그는 나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답다’라는 게 무엇인지 적어보라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건 싫어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말하려 한다고. 그렇게 쭉 정리해보고, 그런 나를 애정 있게 바라보라고. “얘 괜찮은 놈이네.”라고 말해주는 그 마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이 말이었다. 나다움은 혼자 잘 되려는 마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이 있을 때 오히려 거꾸로 나다움이 생긴다고. 타인의 시선으로 감정이입하는 데 익숙해질수록, 나 자신도 객관화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나를 챙기고 좋아할 수 있다고.
그 인터뷰를 보며 나는 멈췄다. 나는 과연 나답게 살아왔는가. 아니면, 세상이 말하는 정답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다크 호스』를 읽으며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세상은 이미 정해놓은 성공의 표준공식이 있다는 말. 좋은 대학, 좋은 자격증, 안정적인 직업. 그 공식을 따르는 사람은 성실하다고 인정받고, 벗어나는 사람은 설명을 해야 하는 구조. 나 역시 그 공식에 꽤 오래 집착했다.
중학생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수능이라는 거대한 목적이 등장했고, 좋아하던 것들은 조용히 밀려났다. 점수와 등급이 우선이 됐다.
대학교에 들어가 군대를 다녀온 뒤, 나는 정신 차린 학생이 되었다. 경영학과 분위기는 명확했다. CPA가 정답이라는 공기. 교수님도 권했고, 부모님도 무척 기뻐하셨다. 졸업 전에 진로가 정해진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멋에 설득됐다. 왜 회계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첫 수업은 그럴듯했고, 나는 장점만 보고 시작했다. 잘된 사람들만 보였고, 그 길이 곧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한 번도 나다움을 묻지 않았다. 그저 안전함을 선택했을 뿐이다.
회계사 공부에 2년을 쏟았다. 첫 해 떨어졌고, 한 번 더 도전했다. 두 번째 해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SNS를 끊고, 카카오톡을 지우고, 독서실 구석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마지막 몇 달은 머리도 자르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커트라인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열심히 했는데도 성과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팠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소질이 없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애정 있게 바라보지 못했다. “얘 괜찮은 놈이네.”라고 말해줄 여유가 없었다. 한동안 나는 그 시간을 ‘내다버린 시간’이라고 불렀다. 그 시간은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실패는 나에게 질문을 남겼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그 질문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회계사를 내려놓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정답을 정해놓지 않기로 했다. 무엇이 맞는지보다, 무엇이 해보고 싶은지를 보기로 했다. 우연히 들은 경영 프로그래밍 수업이 재미있었다. 마침 미국 장학 프로그램이 있었고, ‘컴퓨터를 조금 잘하는 사람’이 조건이었다. 수업을 절반밖에 듣지 않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무모함 덕분에 미국에 가게 됐다. 미국에서 우연히 본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건드렸다. 세상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말,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시기에 그 말은 작은 균열을 냈다. 해커 도조에서 본 스타트업의 모습은 더 큰 균열이었다. 노트북 하나로 일하는 사람들, 대단한 배경 없이도 시작하는 창업자들. 그 장면을 보고 처음 깨달았다.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와 26살에 첫 창업을 시작했다. 회계사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창업을 한다는 건,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다크 호스』는 표준화된 성공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성공 법칙을 만든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뒤늦게 알았다. 내가 겪은 2년은 실패가 아니라, 표준공식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시원 앞을 다시 찾아간 적이 있다. 5년 전 내가 앉아 있던 자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묻고 싶었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이 정말 전부냐고. 왜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믿었냐고. 표준공식은 안전하다. 설명하기 쉽고, 부모님도 안심하고, 주변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길이 반드시 나의 길은 아니다. 회계사 공부 2년은 자존감을 무너뜨린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질문을 남겼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가. 그 질문이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나는 완성된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다만 하나는 안다. 남들이 정해준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삶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 느리더라도, 돌아가더라도, 내 방식으로 공식을 만들어가겠다는 것. 아마 그것이 내가 발견한 나만의 ‘다크 호스’의 시작일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포지셔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장 안에서 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학벌이나 외형적인 기준으로 보면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내가 붙잡은 건 두 가지였다. 성실함과 도전의식. 나는 꿈을 정하면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데 강점이 있다. 지치지 않고 몇 년을 지속한다. 그리고 나는 늘 나를 컴포트존 밖으로 밀어냈다. 미국, 싱가포르. 주변에서는 무모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과감히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한 단어로 정의했다. 우직. 빠르지 않지만, 한 방향을 정하면 끝까지 가는 사람.
이전 회사에서 쓰지 못한 12일의 휴가가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완전히 나를 모르는 환경에서 써보고 싶었다. 회사 이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만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무작정 싱가포르행 티켓을 끊고, 링크드인으로 약 100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름과 연락처만 적힌 명함을 따로 제작했다. 약 10명이 답했고, 실제로 5명을 만났다. 데모데이에 들어갔고, 액셀러레이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아이템도 없고 돈도 없지만 1년 뒤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결국 싱가포르에서 20명 가까운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템은 없었지만, 나는 나 자신을 팔았다. 그 무모함의 근원은 단순했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나’를 브랜딩하고 싶었다. 창업가로서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다.
그 경험은 결국 퇴사와 본격적인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결국 나는 ‘나다움’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매사에 진지하다. 사람 많은 곳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음악을 듣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모습일 수 있다. 외향적이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밤마다 오늘 하루는 왜 이랬을까 자책하기도 한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부족할까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도전한다. 다시 걸어 나간다.
혼자 있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미래를 다짐하고, 매일 아침 오늘 하루를 도전하는 용기를 나에게 주는 삶. 밤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시작하는 삶. 그게 결국 나다움이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의 루카 13,33 구절이다. 이 문장을 나는 실제로 몸에 새겼다. 거창한 성공을 약속하는 문장이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 반드시 이룬다거나, 반드시 높이 올라간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오늘도 걷겠다는 다짐일 뿐이다.
조수용 님이 말한 것처럼, 나를 애정 있게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를 도우려는 방향으로 나를 쓰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걸어가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재능을 믿지 않는다. 한 번의 기회를 믿지도 않는다. 대신 지속을 믿는다. 반복을 믿고, 매일의 선택을 믿는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우직하게, 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