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안녕하신가요

대표들의 밤, 그리고 우리가 불안을 이기는 방식

by Woozik

#1 대표들의 밤


요즘 나는 대표를 만나면 일부러 이렇게 묻는다.
“요즘 괜찮으세요?”


A 대표님을 오랜만에 만난 날이 그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고, 투자도 받으셨고, 인간적으로도 참 좋은 분이다. 그런데 카페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어떠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런웨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밤마다 숫자를 계산하다가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억지로 버티다 결국 공황장애까지 겪었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숨이 막히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쓰러질 것 같았던 날도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밤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B 대표님도 비슷했다. 업계에서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말을 듣는 분이다. 계약도 잘 되고, 팀도 커지고, 외부에서 보면 완전히 궤도에 오른 회사다. 그런데 어느 날 고객사의 작은 컴플레인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평소와 달랐다. 따로 시간을 내어 커피를 마셨다.

조금 지나자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가 나왔다. 동시에 겹쳐버린 여러 사건들, 관계의 붕괴,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 낮에는 대표로서 회의에 들어가고 계약을 체결하지만, 밤에는 거의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매일 새벽에 깨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며 버텨야 할까.


C 대표님과의 점심은 또 다른 결이었다. 한때 정말 유명한 제품을 운영하시던 분이다. 언론에도 자주 나오고, 성공 사례로 언급되던 브랜드였다. 그런데 투자사와 갈등이 있다고 했다. 시드 단계에서 이렇게까지 갈등이 깊어질 수 있나 싶을 만큼 복잡한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나조차 화가 날 정도였다. 아는 변호사님을 소개해드렸다.

몇 달 뒤 다시 만났을 때, 그분은 기존 법인을 적절한 가격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얼굴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지켜낸 선택이 값져보였다.


이 세 분을 만나며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우리는 성과는 자주 공유하지만, 밤의 이야기는 거의 공유하지 않는다. 대표는 흔들려도 티 내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성공은 알지만, 서로의 버팀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묻게 된다. “요즘 괜찮으세요?”라고.


#2 완벽해야 한다는 사회


얼마 전 14F에서 ‘불안은 타고난다?’라는 토론을 보았다. 그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다.

불안은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유전적 소인과 트라우마, 그리고 사회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잘해야 한다’는 과업 수행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가족이나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 완벽주의적 행동 규범, 특정 성취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도적인 기준.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비교 속에서 자란다.
대학, 직장, 연봉, 투자, 매출.
늘 상향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재단한다.


이 구조는 우리 안에 ‘비대한 초자아’를 만든다고 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단하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스스로를 벌주는 자아. 대표라는 자리는 그 압박이 몇 배는 더해진다. 회사가 흔들리면 내 탓 같고, 팀원이 힘들어도 내 책임 같고, 투자자가 실망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비교를 증폭시킨다. 누군가는 대규모 투자를 받고, 누군가는 글로벌 진출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엑싯했다는 소식이 매일 올라온다. 우리는 그 이면의 고통은 보지 못한 채, 결과만 소비한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감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표의 삶은 늘 미래를 붙잡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불안한 건, 어쩌면 너무도 정상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3 그럼 나는 안녕한가


그럼 나는 안녕한가.

웃기게도 나는 잠은 참 잘 잔다. 일이 잘 안 풀려도, 답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자고 시작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하루에 6시간은 잔다. 그래서인지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감정을 한 번 식힌 뒤 움직인다. 하루 자고 나면 생각이 조금 정리된다.


나는 태생적으로 승부욕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 구도가 선명해질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신 나는 오래 가는 사람에 가깝다. 나 스스로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구조에서 성과를 냈다.


우리 회사도 그렇다.

누군가를 이기겠다고 달려가기보다,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다른 회사의 기술을 활용하고, 그 위에 우리의 실행을 얹는다. 시장을 먹겠다는 언어보다, 오래 살아남겠다는 생각에 가깝다 (이 문장을 투자자는 좋아하지않겠지만,,)


나는 팀을 경쟁으로 몰아붙이는 리더가 아니다. 대신 묻는다.
어제보다 나아졌는가.
이번 분기에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어쩌면 그래서 나는 아직 안녕한지도 모른다.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지는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4 불안을 이기는 방법


영상에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라고.
불안은 위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중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도움이 되는 생각’과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을 구분하라고 했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실제로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말은 이것이다. 자존감은 높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낮은 자존감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찾는 것이 목표라고. 불안해도 괜찮다고 했다. 불안은 뿌리 뽑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데리고 가는 감정이라고.


나는 이 말이 좋았다.
대표로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아마 없을 것이다.
런웨이, 팀원, 투자, 고객. 미래는 늘 불확실하다.

하지만 불안 속에서도 잠을 자고,
불안 속에서도 회의를 하고,
불안 속에서도 고객을 만나고,
불안 속에서도 하루를 쌓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가 불안을 이기는 방식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다시 묻는다.

나는 안녕한가. 그리고 당신은, 정말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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