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레시피'가 만드는 AI 소설의 가능성과 한계
인공지능이 문학 창작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면서, 기계와 인간이 함께 써 내려가는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맞이했다.
AI는 창작의 효율성과 실험성을 극대화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인간성의 결여와 창의적 진정성의 문제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속도, 실험,
그리고 창조적 촉매
AI와 인간이 함께 써 내려가는 문학에는 분명 커다란 장점과 잠재력이 존재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인간이 따라올 수 없는 효율성이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속도와 방대한 양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 오래이다. 한 작가가 한 달 걸릴 분량을 AI는 몇 분 만에 써낼 수 있고, 사람의 상상으로는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스타일 실험을 순식간에 시도해 볼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스티븐 킹이 충돌한 스타일로 이야기를 쓰거나, 극과 극의 설정을 섞은 기묘한 플롯 등 창의적 조합을 AI를 통해 손쉽게 만들어 보고 평가할 수 있다.
AI는 수많은 문학 텍스트를 학습한 덕분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거나 새로운 어휘 발상을 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영감이 고갈된 순간 챗봇에 '다음 문장을 이어줘'라고 하면 뜻밖의 전개가 나와 막힌 글을 풀어주기도 하고, 같은 프롬프트를 수십 번 변주하여 다양한 초안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AI는 이미 하나의 브레인스토밍 파트너이자 무제한 시나리오 생성기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는 올해 초, 공쿠르상 수상 작가 에르베 르 텔리에(Hervé Le Tellier)와 생성형 AI를 맞붙이는 일종의 문학 대결을 기획했다. 과제는 간단하지만 제약은 까다로웠다.
3,000자 분량의 추리 소설을 쓰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동일하게 고정한다는 규칙 아래, 하나는 인간 작가가, 다른 하나는 AI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었다.
이때 AI 쪽의 텍스트를 책임진 사람이 바로 베누아 라파엘(Benoit Raphael)로, 〈Génération IA〉라는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이자 작가로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주일 넘게 이 실험을 위한 단 하나의 프롬프트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그가 한 일은 단순히 줄거리를 AI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스타일의 작품로 작품을 쓸 것인지를 프롬프트 형식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뉴스레터와 강연에서, 이때 자신이 만든 것을 스타일 레시피라고 불렀다.
프롬프트는 '일상의 장면에서 시작해 점점 기괴한 영역으로 미끄러지는 구조', '멜랑콜리하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불안이 배어 있는 분위기', '제삼자 시점이지만 인물의 감정에 스며드는 관찰자'와 같은 다층적인 요구 조건을 층층이 실험한 후 만들어낸 결과였다. 여기에 문장 길이, 리듬, 대화와 묘사의 비율,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라는 지침까지 덧붙여졌다.
AI가 단순히 '추리 소설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정조와 서사 리듬을 가진 텍스트를 생성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실험에 사용된 AI가 써낸 단편의 제목인 「Le Miroir du défunt(죽은 자의 거울)」 역시 프롬프트 설계 단계에서 라파엘이 제시한 장치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결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집었다.
완성된 두 편의 단편은 작가 본인과 〈L’Obs〉 문학기자에 의해 블라인드 방식으로 비교되었는데, 에르베 르 텔리에는 AI 텍스트를 읽고 탄성을 내질렀다. 실험에 참가한 기자 역시 AI가 쓴 작품이 현재 프랑스에서 출간되는 소설의 평균 이상 수준을 가볍게 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실험은 단순한 AI와 인간의 매치를 다룬 이벤트가 아니었다. 창작 방법론 자체를 재정의하는 실험으로 받아들여졌다.
주목할 점은 프롬프트를 고안한 라파엘의 역할이다. 그는 이 매치를 위해 수십 번의 실패와 40~50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비로소 스타일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문장을 직접 쓰는 작가에서 문장을 써내는 규칙을 설계하는 작가로 역할이 이동한 셈이다. 그는 이후 같은 텍스트를 여러 AI 모델(chatGPT, Grok 등)에게 평가시켜 보았을 때, 오히려 AI가 쓴 버전을 더 문학적으로 정교하다고 판단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라파엘이 프롬프트를 실험하는 과정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으로 분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험에서 프롬프트 안에 일부러 모순적이고 애매한 지시를 섞어 넣었고 실험을 진행했던 과정을 정리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예를 들어 '냉정한 제삼자 시점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감정에 과도하게 취약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작성할 것', '장르 규칙을 따르되, 클리셰를 피해 엇나가는 결말' 같은 서로 다른 방향의 요구를 겹쳐 쓰면서, AI가 쉽게 예측 가능한 플롯을 만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프롬프트를 수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은 AI에게 소설을 시키대로 쓴 글이 아니라, AI가 빚어내는 우연성과 기묘함을 활용해 새로운 서사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이었다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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