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파리를 걷는 작가, 모디아노

기억과 실종을 기록하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문학

by 프렌치 북스토어
사라진 사람들을 찾기 위해
사라져 가는 도시 위를 걷는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줄거리보다 먼저 거리 이름이 남는다. 광장, 카페, 버스 노선. 사건보다 주소가, 인물의 감정보다 지명이 먼저 기억에 걸린다. 그가 지도에서 지워진 파리와 이름을 잃은 인간들을 소설 속에서 다시 불러내는 작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디아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걷고 있다. 어디론가 향하지만, 쉽게 도착하지는 못한다. 이동은 계속되지만 목적지는 늘 흐릿하다. 그들의 방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기억이 만들어낸 상태에 가깝다.


작품 속에서 파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모디아노에게 파리는 기억이 얽히고 막히는 구조, 하나의 기억의 미로(labyrinthe de la mémoire) 자체로 존재한다. 인물들은 도시를 걷는 동시에, 과거의 흔적 속을 더듬는다. 공간은 곧 기억의 형식이 된다.


모디아노에게 기억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정신적 작용이 아니다. 기억은 도시의 표면 위에 남아 있다. 잊힌 골목, 사라진 카페, 이름이 바뀐 거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집. 기억은 이런 장소들을 따라 되살아난다.



누가 여기 살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



모디아노가 펼쳐 보이는 기억의 형식은 사건의 재구성이 아니다. 도시의 지도 위에 흩어진 점들을 하나씩 이어가는, 조심스러운 추적에 가깝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밖에 없는 소설은 아무래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Rue des boutiques obscures)』 일 수밖에 없다. 장소의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기 롤랑(Guy Roland)은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인물이다. 기억상실증 환자인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이 수사는 사건보다 장소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증언보다 먼저, 도시의 표면에 남아 있는 단서들이 그를 붙잡는다.


오래전 들렀던 듯한 카페.

주소는 남았지만 인물은 사라진 아파트.

기록 속에만 존재하는 호텔의 이름.

전쟁 이전엔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길과 표지판.


파리는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을 품고 있는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파리 지도를 펴놓고, 사라진 이름들을 더듬으며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이 과정은 개인의 정체성이 도시 공간과 얼마나 끈질기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모디아노는 이러한 특징은 '거리 이름이 익숙하다'는 정도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거리의 입구에 서서, 나무와 건물과 모퉁이가 마음을 치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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