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문장으로 사적인 경험을 사회적 증언과 해방의 윤리로 바꾼 글쓰기
프랑스 작가 애니 에르노(Annie Ernaux)는 개인의 기억을 사적인 고백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과정을 문학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기억을 사회적 증언이자 윤리적 실천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녀가 바꾸어 놓은 시선의 변화는 간단했다. '나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글쓰기를 하나의 무기로 생각했다. 사회적 출신과 성별이 만들어내는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스물두 살, 대학 시절 일기장에 남긴 문장 하나가 이를 단번에 보여준다.
J’écrirai pour venger ma race.
여기서 그녀가 말한 'race'는 인종이 아니라, 사회적 혈통과 계급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내가 속했던 계급을 위해 쓰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노동자 가정 출신이었던 그녀는, 상류층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중심을 차지하던 대학에서 자신의 위치를 또렷하게 체감했다. 그리고 당시의 경험은 한 가지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증명하는 일이야말로 그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에르노는 교사로 일하고,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한동안 글에서 멀어졌던 시기를 지나오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197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과 사회적 변화를 통과하면서 그녀는 다시 펜을 들게 된다. 사회 계급과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쓰는 일은, 그에게 점점 사명에 가까운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글쓰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둘러싸고 있던 감정이었다.
부끄러움. 침묵. 그리고 말하지 못하게 만들던 공기.
그녀에게 문학은 이러한 감정들을 개인의 내면에 가두지 않고, 사회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문학 여정은 개인의 기억을 사회의 목소리로 되살리는 여정으로 시작되었다.
에르노의 작품 밑바탕에는 사실을 끝까지 사실로 남겨두려는 집요한 윤리의식이 깔려 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꾸밈없고 평평한 문체로 기록한다. 이러한 방식은 기억을 진실에 최대한 가깝게 전달하고픈 문학적 윤리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한 인간의 삶을 다룰 때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이 예술적 멋내기라고 말한다. 감흥을 만들어내는 문장, 독자를 설득하는 장치, 문학적 효과를 위한 과장 같은 것들이 오히려 삶을 왜곡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버지의 일생을 그린 자전적 작품 『남자의 자리(La Place)』에서 그녀는 소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아버지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나 역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내가 부모님께 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글과 같은 글이.
- 『남자의 자리』 중에서...
이 대목에서 드러나듯, 에르노가 추구하는 글쓰기는 언제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필요에 종속된 한 삶을 쓰기 위해서는, 예술적 효과를 내려는 유혹과 감상적인 회고를 먼저 걷어내야 했다.
그녀는 사실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추억의 시(poésie du souvenir)'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을 긋는다.
그렇게 선택된 문체는 겉으로는 담담하고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평평함 속에 날것의 현실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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