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aranda』와 침묵의 의미
문학을 침묵을 다루어야 한다. 그 비극이 비록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하더라도.
제주 4·3 사건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의 자리가 영원한 부재로 굳어지는 순간, 뒤늦게 자기 유년을 되짚기 시작한다.
그 기억의 초입에는 해 질 무렵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놀이 있다. 이상한 일이라고 중얼거리던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녁 하늘의 붉은빛이 불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읍내 아이들은 그 불을 그저 방앳불(방홧불의 비표준어)이라고 불렀다.
하늘을 물들이던 불길에 이름을 붙였다고 그날 밤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 불길이 번지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 일이 있고 집 안에서는 하나의 규칙이 늘어났다. 무슨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지, 누가 누구와 가까이 지내면 안 되는지, 어떤 질문은 철없다는 말로 잘려 나가는지,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배워야만 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재만 남는 게 아니었다. 화광 뒤에 남은 사람들의 혀끝에 남는 말,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질문, 꺼낼수록 더 위험해지는 단어를 남겼다.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을 리 없다. 애도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 침묵은 감정의 결핍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로 굳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침묵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면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살아남은 자로서의 체면이었을까?
비극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그 선택이 애도의 방식이었는지, 공포의 습관이었는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까지 슬픔을 전가하는 선택이었는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확하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프랑스 작품이 있다.
가엘 파유(Gaël Faye)의 『자카란다(Jacaranda)』는 르완다에서 벌어진 비극을 겪은 부모에게서 자란 한 아이가 집 안에서 더 단단하게 자라난 침묵과 마주하는 서사를 다룬다.
소설은 스텔라(Stella)가 집 앞 정원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는 모습과 마주하면서 시작한다.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잔디 위에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병원으로 실려온 스텔라에게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혹시 스텔라가 생존자인가요?"
스텔라의 어머니는 그녀가 참사 이후에 태어났다며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대답한다.
병원에 도착한 스텔라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녀는 대답할 수 없다.
친구이자 어린 시절이었고, 그녀에게는 우주와도 같았던 그 나무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 나무는 자카란다(Jacaranda)였기 때문이다.
스텔라는 비극이 남긴 침묵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그녀는 참사 이후에 태어났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반응은 마치 오래 전의 비극을 직접 통과한 생존자처럼 반응한다.
이것이 작품이 초반부터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잔혹한 현실이다. 재난은 한 번 일어나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후 시간은 1994년, 밀란(Milan)의 유년 시절을 비추었다. 열두 살의 밀란은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는 학급 대표 소피(Sophie)와 이번 학기에 떨어진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고, 성적이 나빠진 이유로 엄마 나라의 전쟁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밀란의 엄마는 르완다에서 태어났지만, 밀란은 엄마가 르완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진도, 음식도, 노래도, 심지어 지인의 방문도 없었다.
그러던 그해 여름, 전쟁이라는 단어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바꿔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TV에서 매일 저녁 르완다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뉴스는 앵커의 차분한 목소리로 르완다 방문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반복했고, 화면에는 잠깐씩 시신과 피난 행렬이 스쳐 지나갔다.
밀란은 숟가락을 든 채 엄마의 얼굴을 훔쳐보았지만, 엄마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표정도, 설명도 없었다. 아빠는 말없이 채널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밀란에게 물어보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밀란은 그제야 이 집에는 르완다에 관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름이 끝날 무렵 어느 날, 밀란의 거실 한가운데에는 낯선 아이가 서 있었다. 겁에 질린 눈, 삭발한 머리, 머리 한쪽을 덮은 두꺼운 붕대. 그 아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아무도 밀란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그 아이를 자신의 조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클로드였다.
긴 여행에 지쳤을 테니 자기 방에서 쉬게 하자며 매트리스를 깔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클로드가 앞으로 한동안 함께 지낼 거라고 짧게 덧붙였다.
그리고는 엄마는 다락방에 있던 밀란의 방을 급히 치우기 시작했다. 클로드에게 입힐 옷 몇 벌을 가져다주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저녁 준비를 하러 방을 나가 버렸다. 집 안은 갑자기 북적였지만, 이상하게도 더 조용해졌다.
저녁 식사 내내 클로드는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저 TV만 응시했다. 엄마가 한 숟갈이라도 먹어 보라고 말해도, 클로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밤, 밀란은 옆에서 새어 나오는 클로드의 신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순간 밀란의 머릿속에는 TV 화면 속 르완다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화면 어딘가에 있던 아이가 지금은 자신의 옆, 매트리스 위에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 났다. 밀란은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클로드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 이후로 밀란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클로드를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집 안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말이 사라졌다.
어떤 이야기는 꺼내는 순간 아이를 다시 흔들어 놓을 것 같았고, 어떤 질문은 듣는 사람을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을 것 같았다. 밀란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말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시간이 흐른 뒤, 밀란은 어머니의 과거가 묻힌 땅, 르완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기보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집 안에 존재했던 침묵이 무엇이었는지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가족이 지키려 했던 것과, 그 대가로 남겨버린 것들을 묻는 질문은 그제야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밀란이 도착한 르완다에는 모두가 기억하는 장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곳에 이름을 붙였고, 누군가는 날짜를 외웠으며,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말이 오가는 자리, 증언이 쌓이는 자리, 기념과 기록이 일상이 된 자리, 그 가운데에는 자카란다 나무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곳에 서면 설수록 밀란은 더 자주 프랑스의 거실을 떠올렸다. 아무 말 없이 TV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 밀란이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시선으로 그만하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침묵이 눈앞을 스쳐갔다.
르완다에는 말이 있었고, 집에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밀란은 그 대비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떤 진실은 알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말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알게 될수록 더 말하기 어려워지는 종류의 진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침묵은 누구를 위한 침묵이었을까?
소설이 보여주는 침묵은 하나의 덩어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입을 다물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말을 아끼고, 수치와 죄책감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침묵은 보호였고, 동시에 유산이었다. 분명 지키려 했던 것이 있었지만, 그 대가로 남겨진 것도 분명했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읍내 아이들은 초저녁 하늘을 붉게 밝힌 불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쪽으로 가까이 가지 않겠다는 거리 두기였다. 이름이 생기자 설명은 필요 없어졌다.
그날을 모르는 척 넘기는 기술은 곧 집 안의 질서가 되었다. 어떤 질문들은 혀끝에서 삼켜져야만 했다.
그 질서 속에서 숟가락은 움직였다. 울음은 내려가도 밥은 먹어야 했다. 애도는 뒤로 밀리고, 생존은 매일의 자세가 되었다.
『자카란다』에서 침묵의 자세는 한 그루의 나무로 남는다. 스텔라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마음속에 세워 두고, 설명 대신 그늘로 기억을 보존한다.
방앳불은 멀리서 본 재난을 이름으로 덮고, 숟가락은 그 재난 이후에도 살기 위해 묻지 말라는 규칙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자카란다는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오래 머무는 그늘을 만든다.
사건은 지나가지만, 사건을 둘러싼 말의 부재는 남는다. 그리고 그 부재가 남긴 가장 선명한 흔적은 결국 한 문장으로 돌아온다.
침묵은 누구를 위한 침묵이었을까.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