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직설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
문학에서 성sexe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 언제나 그 선정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검열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개방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성, 특히 여성의 성은 언제나 사회적 규범의 대상이었고, 비밀스럽게 감추어지고 은밀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프랑스 문학계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에 가장 직설적이고 선정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비르지니 데팡트Virginie Despentes일 것이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문화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비르지니 데팡트는 성별, 섹슈얼리티, 사회적 계급과 같은 주제를 대담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종종 사회적 타부라고 여겨지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주제를 다룬다. 물론 그 방식도 무척이나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중심에는 여성의 성적 자율성과 힘에 대한 논의를 통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강력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1994년 《Baise-Moi》라는 소설로 문학계에 데뷔했다. 프랑스어로 baiser는 '성교하다'라는 의미로 영어로 번역하면 fxxx me 정도가 된다. 작품은 출판과 동시에 많은 주목과 함께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서 그녀는 이후 여성주의, 사회 비평, 자기 탐구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특히, 2006년도에 발표한 《King Kong Théorie》(킹콩 이론)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여성주의 텍스트로 자리 잡았다.
소설 《Baise-Moi》는 비르지니 데팡트의 데뷔작인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성폭력을 경험한 두 여성, 나딘과 마누가 주인공으로, 이들이 사회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 내용은 매우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일부 비평가들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삶에서 길을 잃은 두 젊은 여성, 마누와 나딘은 파리 교외의 소외된 지역에 살고 있다. 그녀들은 매춘과 포르노 영화에 출현해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첫 범죄를 저지른 직후에 만났다. 나딘은 룸메이트를 살해했고, 마누는 폭력배를 총을 쏘는 범행을 저질렀다. 그녀들의 삶은 이미 위태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 지친 그녀들은 무자비한 범죄와 술, 유혹으로 가득 찬 프랑스 전역을 횡단하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여정의 마지막조차 비극적이다. 마누는 주유소에서 돈울 훔치던 도중에 직원에 의해 살해되고, 나딘은 경찰에 체포된다.
소설은 성, 폭력, 복수, 그리고 여성의 권력에 대한 치열한 몸부림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90년대 초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비교적 대중적이고 온건한 표현이었다면, 암울하고 과격하고 보다 현실적인 페미니즘의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작품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주류 사회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 인물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선은 비르지니 데팡트가 사회적 규범과 여성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는 동시에, 여성의 성적 자율성과 힘을 강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소설 속 많은 부분은 비르지니 데팡트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작품에 실제감과 긴박감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독자들로 하여금 폭력과 그 후유증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작품의 진정성, 그것이 비르지니 데팡트를 무조건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선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문학적이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성취를 이루어 냈다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여성주의 문학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여성의 분노와 복수라는 주제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대표작이 되었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킹콩 이론》은 강력한 여성주의적 선언이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여성성, 성폭력, 포르노그라피, 매춘 등에 대한 비르지니 데팡트의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논평을 담고 있다. 특유의 과감하고 직설적인 목소리는 기존의 여성주의 담론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2006년에 출간된 이후,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며 여성의 권리와 성적 자율성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비르지니 데팡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자서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성적 역할을 재인식하고, 남성적 정체성과 여성적 정체성의 이분법적 분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억압,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솔직하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비르지니 데팡트는 여성을 지배하는 문화적 차별과 수치심의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한다. 여성의 신체는 남성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선입견, 성적 지향은 화폐 역할을 한다는 이론, 여성이 성폭행당한 자신을 변호하거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포르노그라피와 매춘 등을 포함하여, 여성의 성적 표현과 자율성에 대한 폐쇄적인 시선에 대한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던 인식에 대해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부제가 '새로운 페미니즘을 위한 선언문'인 이유이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요약하면, 성혁명Révolution sexuelle 시대를 경험한 그녀는 이러한 변화가 여성의 성적 해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성적 자유의 확대, 피임과 성병에 대한 인식 개선, 성 역할에 대한 변화 등 다양한 부야에서 지속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화에서 육아와 가사에 관한 변화는 미비하다고 꼬집어 지적한다. 따라서 비르지니 데팡트는 젠더 혁명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에 남성들 또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에서 스스로가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인다.
비르지니 데팡트는 피터 잭슨의 영화 킹콩을 여성이 근본적인 권력에서 단절된 현대 세계에 대한 은유로 해석한다.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전통적인 여성성을 '노예의 예술'로 정의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킹콩은 19세기말 정치적으로 강요된 성별 분리 이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킹콩은 남성과 여성을 초월하는 존재로, 인간과 짐승, 어른과 아이, 선과 악, 원시와 문명, 피부색 사이의 고리에 얽혀 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서 그녀는 여성이 권력과 관련된 관행에서 제외도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녀는 17살 때 친구와 히치하이킹을 하던 중 자신이 겪은 성범죄 경험에 대해서 털어놓는다. 그녀는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회상하면서 그 이후 사회가 성폭행 피해자인 여성을 어떻게 비하하고 침묵시키는지 비난한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느껴야 했던 죄책감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해야 했던 폭력이 조차 정당화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피의자들은 그녀가 너무 타락해서(?) 성폭행할 이유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대변했다고 털어놓는다.
비르지니 데팡트는 이러한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희생자라고 말한다. 사회적 고정관념을 감내해야 하는 희생자이며, 또한 이러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페미니즘의 목표가 여성과 남성 사이의 대립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새롭고 더 나은 것을 재창조하기 위해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 그리고 타인을 위한 집단적 모험이다'라고 정의하면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유교주의 나라답게 우리나라에서는 비르지니 데팡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없다. 선정적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녀의 표현 방식이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보는 프랑스 현대 문학과 여성주의 담론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녀의 대담한 서술 방식과 사회적, 문화적 규범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이러한 원색적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여유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행보에는 대중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극명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문학적 대화와 사회적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 역할, 섹슈얼리티, 사회적 계급 등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이슈들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르지니 데팡트의 작품은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는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회에서 이미 정해놓은 선입견과 고정관념, 통념 때문에 고통받는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나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달라졌어요.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이 정말 좋아요. 여성성, 남성의 승인,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덜 신경 쓰게 되었어요. 또, 나이에 대해서도 덜 걱정하게 되었죠: 이성애자는 나이 드는 것이 훨씬 힘들었을 거예요. 여자들 사이에서도 유혹은 있지만, 훨씬 더 더 편안함을 느껴요. 40세가 되어도 (매력이) 추락하지 않으니까요. ... "
2011년 elle québec 인터뷰의 일부
그녀의 한 인터뷰가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성애자라면 나이 드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라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남성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인고를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우리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 남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들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굴레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지금 자신이 겪어 내야 하는 이 힘겨움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옆에 함께 하는 이가 경쟁자가 아닌 똑같이 힘겨워하는 동병상련의 상황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