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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렌치 북스토어 Sep 19. 2024

파리지앵의 사랑을 배우다

레이몽 크노의 《지하철 소녀 쟈지》

파리를 자유와 낭만의 도시라고 말을 한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찾고, 꿈과 기대에 부푼 발걸음으로 오래된 거리를 거닐면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와 낭만'을 즐긴다. 하지만 그들의 파리 여정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더럽고 냄새나고 불편한 도시이거나, 고풍스럽고 여유롭고 다이나믹한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이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사람들이 파리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군가에게 자유와 낭만의 민낯이 불편한 진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파리에서 낭만을 논할 때 유독 조심해야 한다. 낭만이라는 말과 자유라는 말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개막식에서 선보인 통합과 포용의 메시지는 많은 외국인들의 눈에 모호함과 자유분방함 불편함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 현지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의 85% 이상은 성공적인 개막식으로 평가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쉽게 이야기하는 파리지엥, 그들이 이야기하는 낭만, 사랑이 의미하는 민낯을 마주하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난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일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재미없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레이몽 크노의 《지하철 소녀 쟈지》




프랑스 (근현대) 문학이 한국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파격과 난해. 1959년에 출간된 프랑스 작가 레이몽 크노(Raymond Queneau)의 소설 레몽 크노의 《지하철 소녀 쟈지(Zazie dans le métro)》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작품은 줄곧 독창적인 문체와 프랑스 사회의 풍자적인 내용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로 영화, 연극, 만화책 등 다양한 버전으로 재탄생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원작 소설조차 주목받지 못했다.


소설은 단순히 어린 소녀 쟈지(Zazie)가 파리에서 겪는 이틀간의 모험을 다루는 줄거리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이 있는 사회적 비판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숨어 있다. 레이몽 크노는 이 작품을 통해 전후 프랑스 사회의 혼란과 변화 속에서 인간이 겪는 자유, 사랑, 자기애, 그리고 성장을 유머와 재치로 풀어냈다.


짧게 요약하자면 단순히 소녀가 파리를 탐험하는 여행 소설을 넘어서 모험을 통한 자아 발견과 성숙을 이야기한다. 그 성숙의 이면에는 주인공 쟈지의 반항적이고 당돌한 모습이 자리하고, 그 이면에는 자기애를 통해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 녹아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유에 대한 갈망, 사랑의 다양한 형태, 그리고 자아 탐구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전형적인 성장 소설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소설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사랑이 모험 같은 것일까?

아니면 삶이 모험 같은 것일까?




쟈지의 모험은 소설의 중심 줄거리를 차지한다. 어린 소녀가 겪는 파리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은 그녀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주인공 쟈지라는 시골 소녀가 이모부 가브리엘과 함께 파리에서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쟈지는 어머니의 개인적인 일로 인해 잠시 파리로 보내지게 되면서 파리에 살고 있는 이모부 가브리엘과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쟈지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의 상징인 지하철을 타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파리 지하철은 파업 중이어서 탈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쟈지는 실망하지만, 곧 이모부와 함께 파리 구경을 시작한다.


지하철을 타는 대신, 쟈지는 파리를 돌아다니며 이모부 가브리엘과 그의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쟈지는 파리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면서 이모부가 나이트클럽에서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쟈지는 이모부의 집을 몰래 빠져나가 파리를 혼자 탐험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이 짧은 여정 동안 여러 사람들과 엮이게 되면서 기상천외한 모험을 이어나간다. 




영화 속 가브리엘과 쟈지




쟈지의 파리 여정은 시작부터 좌절을 겪는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을 타보고 싶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지하철 파업으로 기대하던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하철이라는 수단이 상징하는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이 불가능해진 상황은, 그녀가 추구하는 자유의 상징적인 차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녀의 반항적 성격과 맞물리며 소설의 주요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파리라는 도시 또한 단순한 배경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쟈지의 자유를 향한 여정에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파리는 전후 사회에서 변화의 중심지로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장소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도시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과 마주하며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모험은 기존 사회적 규범과의 충돌을 통해 이루어지며,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탐구하게 된다.


특히 그녀의 반항적 태도에서 프랑스 특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불만과 의문을 반항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녀의 여정 중에 파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가 직면했던 권위와 전통적인 질서를 상징하는데, 이러한 규칙과 부조리에 순응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은 무척이나 흥미롭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은 어린 소녀가 어른들의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임과 동시에, 꿈꾸는 자유가 단순히 물리적 이동에 국한되지 않고 정신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삶에도, 그리고 사랑에도 말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쟈지의 모험 속에서도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소설 속에서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나 감정적인 관계를 넘어서, 가족애, 우정, 사회적 유대감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전개된다. 물론 동성애도 그 한자리를 차지한다. 이러한 관계들을 통해 사랑이 개인의 정체성과 성장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었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다면적임을 표현해 냈다.


소녀 쟈지와 그녀의 삼촌 가브리엘 사이의 관계는 무척이나 중요한 사랑의 형태로 그려진다. 가브리엘은 쟈지의 보호자로서 그녀를 돌봐야 하지만, 그 역할에 적합하지 않은 엉뚱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가브리엘은 전형적인 어른의 권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인다. 쟈지에게 강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따르라고 말하기보다는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쟈지 역시 삼촌을 존경하지 않지만, 그와의 관계는 그녀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며 파리에서의 혼란스러운 여정을 이겨내게 만드는 버팀목의 역할을 한다.


이들의 관계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 안에 있지 않다. 양육자와 아이 사이의 사랑이 특정한 형태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가브리엘은 쟈지에게 지나친 간섭 없이 그녀가 자율적으로 세상을 탐험하도록 허락한다. 그럼에도 쟈지는 그에게서 지나치게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가브리엘은 쟈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자기애의 교차점



소설에서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애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쟈지는 매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녀의 자기애는 때때로 이기적이고 반항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기적인 행동조차 성장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쟈지는 자신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게 성장한다.


그녀의 자기애는 특히 성장을 통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녀가 타인과 맺는 사랑의 관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면서 더욱 성숙해지게 된다.






영화에서 쟈지를 연기한 캐서린 데몬지오트





소설은 어떠한 면에서 보면 소녀의 성당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한 모험이 아닌,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자기애가 자리한다. 쟈지는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숨기지 솔직하고 당돌한 소녀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자기애는 자아 탐구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욱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애, 흔히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쉽게 해석되는 행동은 간혹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쟈지의 경우에도 어른들의 규율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도전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려 한다. 이런 태도는 그녀의 자기애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성장은 이루어진다.




충분히 자유롭다는 것



파리에서의 여정은 단순한 도시 탐험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 그녀의 반항적 행동과 자기애는 이러한 자아 탐구의 일환처럼 그려진다.


일정 시기가 되면 빠짐없이 어른들의 세계와 그들이 만든 규칙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들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아를 꿈꾼다. 이는 단순한 반항이 아닌,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우리는 그 여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자유로울 권리는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처럼.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쟈지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경험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녀는 삼촌 가브리엘, 파리의 낯선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규범과 부딪치며 스스로의 생각과 이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간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단순히 반항적인 어린 소녀가 아닌,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하는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쟈지의 일러스트 by 토니 스텔라(Tony Stella)





소설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동성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사랑, 관계, 자기애 같은 요소들은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또 어떻게 성숙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이 작품이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있는 이유은 아직도 충분히 자유롭지 못해서는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감추려는 방법만을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로써의 소설을 넘어 삼촌 가브리엘과의 유대, 파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많은 이들이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유롭게란 종교, 문화, 인종, 나이, 성별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오래되고 낡은 성 앞에서 드랙퀸들이 춤을 추고, 메탈 락을 부르고, 분장을 한 남자가 만찬 테이블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자유로움 앞에서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연습은 길을 잃지 않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반항적이거나 이기적인 모습으로 해석하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힘은 개인이 사회적 규범과 기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이러한 힘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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