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by 에밀 졸라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요즘 들어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불공정한 사회 구조, 피부로 와닿는 도덕적 타락, 겉에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태로운 모습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때로는 그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영화 같은 일이 직접 일어났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얼마 전 개봉한 영화는 다시금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19세기 프랑스 사회 역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가 이끈 제2제정기의 프랑스는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깊은 불평등과 도덕적 타락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류층은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부르주아 계급은 부를 축적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노동자와 빈민층이 혹독한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눈부신 샹젤리제 거리와 화려한 극장 뒤편에는 불평등과 위선, 그리고 욕망에 의해 무너져가는 인간 군상이 있었다. 그리고 한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냉철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에밀 졸라(Émile Zola)는 단순히 이야기를 창작하는 소설가가 아니었다. 그는 사회를 해부하고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연구자였다. 22년에 걸쳐 20권의 장대한 소설을 집필하면서 프랑스 사회의 모든 계층을 문학 속에 담았다. 그의 작품 《나나(Nana)》는 단순한 한 여인의 흥망성쇠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2제정기의 욕망과 타락, 도덕과 위선, 부르주아 계급의 허영과 몰락을 그린 사회적 보고서였다.
문학이란
인간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에밀 졸라는 문학을 통해 사회를 해부하려 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 속 개인의 욕망과 몰락을 냉철하게 기록했다. 이런 문학적 접근 방식은 자연주의(Naturalism)로 불리며, 에밀은 이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았다.
《나나》는 이 자연주의 문학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나는 무대 위에서는 모두를 매혹하는 여배우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욕망과 권력의 도구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몸을 무기로 삼아 권력자들과 거래하고, 때로는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로 변모한다. 나나를 둘러싼 남성들은 그녀를 소유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 스스로 욕망에 사로잡혀 몰락한다. 에밀은 이를 통해 제2제정기의 부르주아 계급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른다. 나나는 시대의 희생양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를 향해 반기를 든 도전자였을까? 그녀가 욕망의 대상이었을 뿐인지, 혹은 욕망을 이용해 살아남으려 했던 것인지. 그리고 이 질문은 비단 19세기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사회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언제나 어두운 현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를 비추는 불편한 거울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1867년 4월, 〈금발의 비너스〉의 공연에서 나나가 배우로 데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공연의 주연을 맡게 된 나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첫 공연 있고 다음 날, 나나는 조에의 아파트에서 깨어나면서 그녀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나나는 아들 루이와 가족을 돌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돈을 구할 방법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녀의 공연을 극찬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나나는 단숨에 파리 상류층 남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고, 일약 모든 남성들의 구애의 대상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무기로 남성들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정복한 남성들 중에는 뮈파 백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뮈파 백작은 존경받는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나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매혹과 혐오감으로 시작된 그녀와의 관계는 금세 탐욕스러운 열정으로 변질하고 만다. 뮈파 백작과의 뜨거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배신, 질투, 환멸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나의 화려한 생활은 그녀의 이름을 딴 말이 파리의 경마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녀의 비극적인 몰락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방탕한 삶은 점점 더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게 된다. 더욱이 그녀의 연인이었던 드 방되브르 백작은 경마의 승부를 조작했다는 폭로로 평생 사랑했던 말들 틈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에도 그녀의 사치는 계속된다. 그녀의 생활은 결국 뮈파 백작까지 몰락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녀는 엄청난 빚더미를 안고 파리를 떠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몇 달 후, 그녀는 천연두에 걸린 아들을 돌보기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자신도 병에 감염되어 위독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과거 그녀를 원했던 남성들은 그녀의 병상 소식을 듣고 몰려들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외롭고 비참했다. 완전히 몰락한 그녀는 이전의 화려한 모습을 뒤로하고, 1870년 7월에 사망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 프랑스 제2제국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통치 아래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프랑스혁명과 왕정복고, 그리고 1848년 혁명의 격변을 거친 후, 1852년 쿠데타를 일으킨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이끈 제2제정(Second Empire)은 경제적 번영과 산업 발전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낳았다. 이 시기의 파리는 도시 개조, 소비문화의 확산, 부르주아 계층의 등장과 같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는 번영하는 듯 보였던 이 도시는 욕망과 위선, 도덕적 타락이 만연한 곳이기도 했다.
이 시기를 그린 소설 속 파리는 화려한 극장과 오페라, 사교계 살롱, 고급 카페가 번성하는 도시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나라는 여성의 삶 역시 이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화려한 도시 속에서 욕망의 대상이 되면서도, 그 구조를 뒤흔드는 존재가 되어 가는 그녀의 모습은 곧 19세기 파리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1852년, 프랑스 제2제정이 시작되었을 때, 파리는 아직도 중세적인 도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하수 시스템이 열악해 위생 상태가 심각했으며, 노동자 계층이 밀집한 빈민가에서는 전염병이 자주 발생했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을 파리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대대적인 도시 개조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오스만 개조의 핵심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1. 도시 위생 개선: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넓은 거리와 공공 공원을 조성하여 전염병을 방지하고 공공 위생을 개선하고자 했다.
2. 교통과 도시 미관 정비: 좁은 골목을 철거하고 직선으로 뻗은 대로를 건설하여 교통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특히 오페라 거리(Avenue de l’Opéra)와 샹젤리제 대로(Avenue des Champs-Élysées)가 대표적인 예다.
3. 사회 통제 강화: 혁명과 반란이 빈번했던 파리의 특성상,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기 쉬운 광활한 대로를 조성하여 민중 봉기를 억제하려 했다. 오스만 개조는 단순한 도시 정비를 넘어 정치적 목적도 포함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파리는 더욱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따랐다. 대규모 개조 과정에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고, 부르주아 계층이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면서 사회적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오스만 개조 이후,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로 거듭났지만, 동시에 극심한 빈부 격차가 발생했다. 부유한 부르주아와 귀족들은 새롭게 건설된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사교계와 오페라 극장을 오가며 사치를 누렸다. 반면, 개조 과정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은 외곽 빈민가로 이주해야 했다.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이러한 격차는 여성들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상류층 여성들은 화려한 사교계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며 남성들의 보호 속에서 살았지만, 하층 계급의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다. 특히 극장과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 상품화되었고, 많은 이들이 부르주아 남성들의 후원을 받으며 살아갔다.
제2제정기 파리는 새로운 소비문화가 탄생한 시기였다. 경제적 번영과 도시 개조로 인해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가 되었고,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은 더욱더 사치와 향락을 즐기게 되었다. 특히 극장, 카페, 오페라 같은 공간은 단순한 문화시설이 아니라 사교와 쾌락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리는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 같은 대규모 공연장을 건설하며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페라는 단순한 예술 공연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만나 사교 활동을 하는 장소였다. 여성 스타들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상류층 남성들의 후원을 받으며 부를 쌓는 존재였다. 나나는 바로 이 공간에서 스타로 떠오르면서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당시의 카페는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문인, 예술가, 정치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거래를 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부유한 남성들은 카페에서 거래를 하고, 사교계를 형성했으며, 때때로 새로운 ‘애인’을 찾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나나는 바로 이 카페에서 부르주아 남성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립해 나간다.
또한, 19세기 후반, 백화점과 고급 부티크가 등장하면서 부르주아 계층의 소비 욕구가 더욱 커졌다. 여성들은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값비싼 드레스와 보석을 구매했으며, 남성들은 애인을 위한 선물로 고급품을 소비했다. 나나 역시 화려한 옷과 보석을 이용해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소설의 초반, 나나는 파리의 한 극장에서 주연을 맡으며 등장한다. 그녀는 뛰어난 배우도, 노래를 잘하는 가수도 아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서는 순간, 그녀는 마치 강렬한 태양처럼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녀의 매력은 단순한 미모를 넘어,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고 조종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나나는 희극 〈금발의 비너스〉에서 요정 같은 존재를 연기한다. 그녀의 어색한 연기와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관능적인 매력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이 만들어낸 환상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극장 밖에서 그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고,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그녀는 부유한 남성들의 보호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상류층으로 올라가려 하지만, 동시에 남성들이 기대하는 여성상을 비웃고 조롱하기도 한다.
제2제정기의 파리는 도시 전체가 소비문화에 휩싸여 있었다. 극장, 패션, 오페라, 사교계,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었고, 여성들 역시 그 시장에서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 나나는 이 소비문화의 중심에서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나나의 아름다움은 곧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이 된다.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은 그녀를 소유하려 하고, 그녀에게 값비싼 보석과 옷을 선물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한다. 나나는 이들의 후원을 받으며 점점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어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이 아니라, 여전히 소비되는 존재일 뿐이다.
당대의 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거나, 나나처럼 남성들의 후원을 통해 살아남아야 했다. 그녀가 몸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현실의 반영이었고, 그런 그녀를 비난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려는 남성들의 위선이었다.
다시 말해, 나나는 부유한 남성들에게는 쾌락과 지배의 상징이었다. 그녀는 스타가 될수록 더욱 상품화되었으며,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졌다.
나나의 삶은 극단적인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한다. 그녀는 거리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랐지만, 결국 귀족들과 부르주아 계층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이들 사회에 완전히 속하지도 못하고, 한계에 부딪힌다.
그녀는 부유한 남성들의 후원을 받으며 최고급 생활을 누리지만, 귀족 가문과 부르주아 계층은 결코 그녀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살롱에서 파티의 여왕처럼 군림하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또한, 나나는 부유한 남성들과 어울리지만, 끝까지 정상적인 결혼을 통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얻지 못한다. 그녀는 귀족 여성들과 달리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거리의 여성이라는 낙인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나는 자유롭고 싶어 한다. 그녀는 남성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한계를 가지게 된다. 그녀는 남성들의 세계를 조롱하고 조종하려 하지만, 결국 그 구조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몰락하고 만다.
결국, 나나는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희생양이자 도전자처럼 비친다. 그녀는 욕망을 이용해 성공하려 했지만, 사회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결국 파멸한다. 그리고 그녀의 몰락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2제정기의 사회가 가진 위선과 모순의 상징적인 결말이었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이 향락을 사회적 문화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귀족들이 쇠퇴하는 대신,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와 소비를 주도하게 되었고, 그들은 사교계에서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끝없는 사치를 일삼았다.
특히 살롱(Salon)은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계층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공간이었다. 정치적 논의뿐만 아니라, 예술과 패션, 최신 유행을 논하며 스스로를 ‘문명화된 사람들’이라 여겼다. 하지만 실상은 치열한 경쟁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특히 여성들은 사교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무도회(Bal)와 파티에서 부유층들은 정기적으로 무도회와 파티를 열어 부와 지위를 과시했다. 특히 남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사회적 성공의 일부로 여겼고, 여성들은 고급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하며 자신들의 매력을 강조했다. 소설에서도 이러한 무도회와 연회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나나는 파티를 통해서 남성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는 법을 터득한다.
제2제정기의 프랑스는 경제적 번영과 함께 소비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시기에는 봉 마르셰(La Samaritaine)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더 이상 시장이 아니라 세련된 실내 공간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옷, 보석, 화장품 등 여성들이 소비하는 제품이 고급화되었고, 소비 자체가 곧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나나는 남성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으며 자신을 치장했고, 그녀의 미모와 패션은 곧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되었다.
또한, 전통 귀족들이 몰락하고, 신흥 부르주아들이 돈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서 파리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다. 출신보다는 경제적 능력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사람들은 돈을 과시하기 위해 더 많은 사치를 즐겼다. 이러한 사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까지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남성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아름다운 여성들과 어울렸다. 여배우나 오페라 가수들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부유한 후원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19세기 파리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찬란한 도시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온갖 부패와 타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 고급 매춘과 코르티잔 문화는 단순한 거리의 성매매가 아니라,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여성들이 후원자를 찾고 생활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은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에게는 ‘필수적인 존재’처럼 여겨졌으며, 때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신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권력과 경제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된다. 작품 속에서 나나는 연기력이나 노래 실력이 뛰어난 배우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남성 관객들은 그녀에게 열광한다. 그녀가 출연하는 연극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남성 관객들의 시각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 존재한다. 무대에서 비너스처럼 찬양받지만, 동시에 언제든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여겨진다.
나나를 둘러싼 남성들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들의 감정은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녀에게 값비싼 보석과 드레스를 사주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남성들, 그녀를 후원하며 ‘보호자’ 역할을 하려는 남성들은 그녀를 독점 가능한 재산으로 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나나는 이러한 구조를 이용해 부와 명성을 얻지만, 동시에 그녀는 남성들의 소비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나는 사교계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지만, 정작 사회적으로는 존중받지 못한다.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은 그녀를 욕망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를 ‘타락한 여성’이라며 손가락질한다. 결국 그녀의 삶은 여성을 소비하면서도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남성 사회의 위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이중적 잣대이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 아래 살아야 했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어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남성들은 여성을 소비하며 즐겼고, 여성이 성적으로 적극적이면 타락한 존재로 낙인찍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 사회는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했다. 쇼데를로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의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상류층 여성들은 순결한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은 공식적으로 결혼한 아내 외에 애인을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나는 겉으로는 남성들을 조종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녀의 삶은 남성 사회의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녀가 벌어들이는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은 모두 남성들에게 의존하며, 그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점점 무너져가고, 남성들의 욕망이 사라지자 그녀 역시 버려진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나는 병에 걸려 몰락한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을 상징한다. 그녀를 탐닉했던 남성들은 떠나고, 그녀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나나의 몰락은 19세기 사회가 욕망을 부추기면서도, 그 욕망의 결과를 여성에게만 전가했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나가 사교계에서 떠오르면서,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의 태도는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고, 그녀에게 값비싼 선물을 바치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했다. 이들에게 나나는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트로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사랑은 진정한 애정이라기보다, 나나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귀족 출신 남성들은 그녀를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려 했고, 부르주아들은 나나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상류층과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나는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 점점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그녀를 사랑했던 남성들은 그녀로 인해 몰락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부르주아 사회가 쾌락과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했던 방식을 보여준다. 나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사고파는 사회 속에서 가장 강력한 화폐가 되었고, 그녀를 차지하려 했던 남성들은 자신들의 탐욕 속에서 점점 더 깊은 파멸로 빠져들었다.
나나를 향한 욕망은 부와 명예를 걸고 이루어지는 일종의 도박과도 같았다. 남성들은 그녀를 위해 막대한 재산을 탕진했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몰락하거나 사회적으로 추락했다.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성들 중 일부는 모든 재산을 바친 후 결국 파산했고, 어떤 이들은 그녀를 얻지 못한 분노로 인해 파멸했다. 나나를 소유하려 했던 욕망이 결국 그들을 파괴한 것이다. 특히 그녀를 사랑했던 뮈파 백작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친 후 빚더미에 앉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또 다른 남성은 나나에게 버림받은 후 절망과 광기에 사로잡혀 무너진다.
이러한 파멸은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19세기 부르주아 사회가 어떻게 욕망과 허영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유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해야 했던 사회, 돈이 곧 권력이었으며, 여성들조차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졌던 구조 속에서, 나나는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었고, 그녀를 둘러싼 탐욕은 결국 사회 전체를 붕괴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작품에서 에밀은 당시 사회의 도덕적 위선을 폭로하고자 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높은 도덕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나나 같은 여성을 소비하는 데 열중했다.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엄격한 윤리를 강조했지만, 뒤에서는 나나를 찾아 그녀를 소비하고 소유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영향력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려 하자, 그들은 그녀를 타락한 여성으로 몰아붙였다. 나나가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의 욕망과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몰락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가진 허영과 부패의 결과였던 것이다.
에밀 졸라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사회를 해부하고 기록하는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인간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자연주의(naturalisme) 문학을 주도하며, 개인의 운명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개인적인 선택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몰락하거나 성공하게 된다고 말한다.
《나나》 역시 이러한 자연주의적 시각을 기반으로 쓰인 작품이다. 에밀은 나나를 단순한 팜므파탈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통해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을 무너뜨리지만, 그녀 스스로도 사회 구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냈다. 그녀의 출신과 환경,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욕망의 도시 파리는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결국 그녀의 몰락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당시 프랑스 사회 전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은 사실주의(Realism)를 넘어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자연주의 문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문학에 도입하여 인간을 환경과 유전의 영향을 받는 생물학적 존재로 분석했다. 에밀은 작가를 실험실의 연구자로 여기고, 문학을 통해 사회를 실험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중시했다.
자연주의 문학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객관적이고 냉철한 묘사를 중요시한다. 감정적 서술보다 사실적인 서술이 중요했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보다, 사회의 어두운 현실과 인간의 본능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또한, 사회적·환경적 결정론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과 사회적 조건에 의해 행동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나나 역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작법은 과학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에밀은 소설을 쓸 때 철저한 조사를 거쳤고, 실제 사건과 인물을 참고하여 사실적인 묘사를 구현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당시 프랑스 사교계에서 볼 수 있었던 실존적 유형을 반영하고 있다.
《나나》는 한 여성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실험하고 분석하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작품 속에서 나나는 자유로운 여성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녀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기회도 없었다. 당시 여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지위를 얻거나, 남성들의 후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나나는 후자를 선택했으며,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삼아 남성들의 욕망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에밀은 그녀를 단순히 야망을 가진 여성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나나가 어떻게 시대와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인지 보여주며, 그녀의 행동이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녀를 욕망했던 남성들은 그녀를 소비하며 몰락했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 역시 당시 부르주아 계급의 사회적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에밀은 나나를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해부하고 기록했다. 그의 문학적 접근 방식은 단순한 소설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사회적 현상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 분석이었다. 나나는 단순한 한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19세기 프랑스 사회 전체를 반영하는 상징적 존재로 남았다.
자연주의 문학은 한 시대의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나의 시대와 얼마나 다를까? 여전히 외모와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현실, 소비되고 버려지는 관계들, 부와 권력을 향한 끝없는 탐욕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에밀은 이러한 그의 시선을 22년 동안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라는 시리즈로 총 20권의 방대한 소설에 담아냈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한 가족의 다양한 후손들이 프랑스 사회 여러 계층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작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한 뿌리에서 시작했지만, 각기 다른 환경과 계층에서 살아가면서 권력과 부, 노동과 빈곤, 혁명과 퇴폐, 산업과 도시화, 도덕과 타락 같은 당대 프랑스의 주요 문제들을 경험하게 된다. 《나나》는 본능적 욕망과 사회적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리즈의 9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에밀은 자연주의 문학을 창시하며, 문학에서도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했다. 그는 이 총서를 통해 유전과 환경이 개인의 삶과 사회적 위치를 결정한다는 자연주의적 사고를 실험했다. 주인공들이 속한 루공-마카르 가문은 한 가족이지만, 그들 각자의 성격과 운명은 부모의 유전적 특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은 단순히 유전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사회적 계층과 환경적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같은 가문의 후손이지만, 어떤 이는 귀족이 되고, 어떤 이는 노동자가 되며, 어떤 이는 범죄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통해 에밀은 사회 구조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문학사에서 가장 방대한 자연주의 소설 프로젝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총서는 제2제정기의 정치, 경제, 사회, 노동, 여성 문제, 산업화, 도시화 등 모든 요소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소설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인 이야기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철저히 해부하는 역사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다.
에밀에게 19세기 파리는 단순한 수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부르주아들의 쾌락과 소비를 위한 거대한 무대였다.
오스만 개조로 인해 파리는 아름답고 정돈된 도시로 거듭났다. 광활한 대로와 대형 건축물이 세워졌고, 오페라 극장과 백화점, 카페, 살롱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도시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 중심부는 부유층을 위한 공간이 되었고, 노동자와 빈민층은 외곽으로 밀려났다. 루공-마카르 총서 속 여러 작품은 이러한 파리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도시였으며, 그들의 사치와 향락 뒤에는 노동자 계급과 빈민층의 희생이 있었다.
오스만 개조가 만든
두 개의 파리
오스만 개조 이후, 파리는 도시의 외형뿐만 아니라, 사회적 계층 구조까지 완전히 바뀌었다. 에밀은 이를 루공-마카르 총서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다. 이 개조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한다.
넓은 대로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졌고, 도시 중심부는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로 변했다. 오페라 극장과 살롱, 백화점, 카페가 번성하며, 부유층들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즐겼다. 나나가 드나드는 극장과 사교계가 바로 이 화려한 공간을 상징한다.
하지만 도시 개조 과정에서 빈민가가 철거되었고, 노동자 계층은 파리 외곽으로 내몰렸다. 도시의 부유층이 향락을 즐기는 동안, 하층민들은 점점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파리의 빈민가와 노동자들의 삶은 오스만 개조의 이면에서 여실이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시선은 파리의 개조가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류층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폭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