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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가장 빛나던

《위대한 몬느》 by 알랭 푸르니에

by 프렌치 북스토어

누구나 과거를 품고 산다. 누구는 그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또 다른 누구는 그 안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흔히들 말한다.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을 살라고. 과연 그럴까? 어쩌면 과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꿈을 되살려내기 위해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찾아야만 하는 어떤 순간, 어떤 장소, 그리고 어떤 사람.


이런 꿈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지만,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우리의 상상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알랭-푸르니에(Alain-Fournier)의 《위대한 몬느(Le Grand Meaulnes)》는 바로 그런 꿈을 현실로 불러내려는 시도이자, 그 꿈이 깨질 때 찾아오는 씁쓸한 이별에 대한 이야기다.




MAH-Enfance-1-1200x800.jpeg "라운드(La Ronde", 엘리자베스 드 스토츠, 1891년작, 제네바, MAH 미술 및 역사박물관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어느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몬느가 우연히 마주한 신비로운 축제,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난 낭만은 바로 그런 상상의 한 조각과도 같다. 찰나의 소나기처럼 스쳐 지나간 그 순간을 되찾으려는 몬느의 여정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감정이다. 어쩌면 어떤 누구도 몬느처럼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그 순간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단순히 개인의 추억과 회상을 넘어 20세기 초 프랑스라는 시대의 감성을 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낭만이라 불렸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며, 아직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지 않았던 순간들. 작품 속의 축제는 단순한 개인적 환상이 아니라, 곧 사라질 시대의 마지막 빛과도 같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여전히 이 소설을 읽는다. 마치 필독서라도 되는 듯이, 대부분은 작품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첫사랑의 이야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순간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과 상실,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잃어버린 풍경을 발견하게 되는 소설.




31683684065_5.jpg 소설 《위대한 몬느》 초판, 원제 : (Le Grand Meaulnes), 1913년




작품 줄거리


소설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트아가트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15살 소년 프랑수아 쇠렐은 교사인 부모님과 함께 마을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학교에 새로운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된다.


그의 이름은 오귀스탱 몬느. 17살의 몬느는 또래보다 크고 당당한 체격을 가졌고, 어디선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다른 학생들은 단숨에 그의 존재에 매료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를 위대한 몬느(Le Grand Meaulne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몬느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금세 중심인물이 되었고, 프랑수아 역시 그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몬느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그를 찾아 나섰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리고 마침내, 몬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멍한 표정이 스며 있었고, 그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오직 프랑수아에게만 몬느는 자신의 실종 동안 겪은 기이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날, 그는 길을 잃었다고 했다. 낯선 곳을 헤매다 우연히 신비로운 저택을 발견했는데, 마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꿈같은 풍경이었다. 저택에서는 한창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었고, 화려한 장식과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프란츠 드 갈레와 그의 약혼녀 발랑틴 블롱도였지만, 정작 신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혼례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곳에서 몬느는 이본 드 갈레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신비로운 저택만큼이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지닌 존재였고, 몬느는 단숨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짧은 만남이 끝난 후,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날 이후, 몬느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지냈다. 그러나 그가 본 저택과 이본 드 갈레의 모습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는 그 환상의 세계를 다시 찾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e5232b0_1649253466442-2ftmp-2f6b21faa6-ea2d-4572-b1e8-91e695e7b8a1.jpg 소설 속 신비의 저택 (나중에 사블로니에르 저택으로 밝혀진다)




몬느가 학교로 돌아온 이후,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날 밤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비로운 저택, 동화 같은 축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본 드 갈레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몬느의 마음 깊숙이 각인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막상 저택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해 내기는 어려웠다.


결국, 몬느와 프랑수아는 저택을 찾기 위해 지도 제작을 시작했다. 몬느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길을 추측하고, 단서를 맞춰 나갔지만, 신비로운 저택을 다시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몬느는 마당에서 수상한 인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섰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한 보헤미안 소년이 번개처럼 달려들어 그들이 만든 지도를 빼앗아 도망쳤다.


그리고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지도와 함께 사라졌던 그 보헤미안 소년이 새로운 전학생으로 학교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학교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다른 학생들마저 그의 개성 넘치는 태도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몬느에게 먼저 다가와, 어젯밤에 빼앗았던 지도를 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지도에 중요한 단서까지 덧붙여 신비로운 저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프랑수아, 몬느, 그리고 보헤미안 소년은 더욱 가까워졌고, 깊은 우정을 쌓게 되었다. 셋은 어려울 때 서로를 돕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헤미안 소년은 몬느에게 이본 드 갈레가 현재 머물고 있는 파리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평온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후, 보헤미안 소년의 친구가 사고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그는 마을을 떠나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떠나기 전날 밤, 그는 마지막으로 몬느와 프랑수아를 찾아와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다.


“사실, 나는 프란츠 드 갈레야.”


그는 바로 그 신비로운 저택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던 신랑, 프란츠 드 갈레였던 것이다. 충격적인 진실을 남긴 채, 프란츠는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프란츠가 떠난 후, 몬느는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이본을 찾기 위해 파리로 떠나겠다고. 반면, 프랑수아는 생트아가트에 남아 몬느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몬느가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그의 편지에는 이본이 이미 결혼했다는 소식이 쓰여 있었다.




영화 『위대한 몬느』 포스터, 2006년




몬느가 떠난 지 1년이 지나갈 무렵, 프랑수아는 우연한 계기로 신비로운 저택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곳은 바로 사블로니에르 저택이었다. 몬느가 잊지 못하고 헤매던 그곳이 이제야 현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프랑수아는 망설임 없이 저택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본 드 갈레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몬느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수아는 이본이 몬느를 그리워하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몬느와 이본의 재회를 돕기로 결심한 프랑수아는, 저택 근처에 살고 있는 자신의 삼촌을 통해 몬느와 이본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몬느와 이본은 다시 재회했다. 시간이 흘렀어도 두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몬느는 이본에게 청혼했고,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 날, 예기치 못한 손님이 찾아온다. 프란츠 드 갈레가 몬느를 찾아온 것이다.


프란츠는 다급한 얼굴로 몬느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여전히 사라진 약혼녀, 발랑틴 블롱도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몬느에게 과거를 상기시켰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기로 했던 우리의 약속을 기억해?"


프란츠는 몬느에게 함께 떠나 발랑틴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막 이본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몬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결국, 그는 과거의 우정과 맹세를 저버릴 수 없었다.


결국, 몬느는 결혼식을 앞둔 이본을 두고 프란츠와 함께 떠나기로 결정한다. 이본과 다시 만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헤매었건만, 몬느는 또다시 이본을 뒤로한 채 길을 떠나게 된다.




사블로니에르 저택, 자크 테브네, 1963년작




몬느가 떠난 후, 이본은 혼자 남겨졌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떠나보낸 그녀에게 남은 것은 기다림과 슬픔뿐이었다. 프랑수아는 그녀의 곁을 지키며 위로하려 했지만, 이본의 마음속 허전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본은 결국 몬느의 딸을 낳은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프랑수아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홀로 남았다. 그는 몬느의 일기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몬느의 지난 시간과 고뇌를 알게 되었다.


몬느는 파리에서 이본을 찾던 중, 뜻밖에도 발랑틴 블롱도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랑틴이 프란츠의 약혼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몬느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는 깊은 갈등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이본과의 결혼을 통해 과거의 혼란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결국 프란츠와의 우정을 선택하며 이본을 두고 떠났다. 몬느의 선택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동시에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는 운명적인 방황이었다.


그리고 이본이 세상을 떠난 지 약 1년 후, 몬느는 마침내 사블로니에르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꿈같았던 저택의 풍경도, 환상 속에 존재했던 사랑도 더 이상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프랑수아를 통해 몬느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결국 프란츠와 함께 발랑틴을 찾아냈고,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했다. 하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이본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단 하나, 딸 뿐이었다.


프랑수아는 몬느를 바라보며 불안에 휩싸였다. 몬느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막다른 비극과 아쉬움 속에서 끝을 맺는다.

한때 모든 것이 찬란했던 순간들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잃어버린 꿈의 잔해뿐이었다.




알랭-푸르니에 사진




좋았던 시절, 20세기 초 프랑스


1913년에 출간된 《위대한 몬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시기는 프랑스 사회가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향해 나아가던 과도기였다. 문화적으로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근대적 사고가 공존하며 충돌하는 모순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는 뚜렷했고, 오랜 신분 질서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동시에 평등과 변화의 바람이 점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농촌과 소도시의 풍경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의 농촌은 여전히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차와 기차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전기와 같은 근대적 편의시설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랜 전통 속에서 살아갔으며, 마을 축제와 공동체 모임을 통해 유대를 이어갔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변화는 아직 완전히 스며들지 않은 상태였고, 이러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생트아가트 같은 작은 마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반면, 도시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산업화와 공업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파리 같은 대도시는 근대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 개조 정책으로 인해 파리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철도의 확장과 산업의 발달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통과 현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과거의 전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전통은 오히려 낭만적인 것으로 포장되며 이상화되기 시작했다. 소설 속 신비로운 저택과 잊을 수 없는 축제의 순간은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시절을 더욱 그리워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되찾고 싶은 잃어버린 꿈이 되어갔다.




ecole2-1467x1100.jpg 소설 속 모델이 되었던 학교, 실제로 알랭-푸르니와 그의 부모님이 살던 집, 에피뉴이-르-플루리엘(Epineuil-le-Fleuriel)




당시의 교육 환경 역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1881-1882년 줄 페리 법의 시행으로 프랑스는 무료 의무 초등교육을 도입했고,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맹률이 감소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문학과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세대의 청년들은 개인의 감정과 이상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보다 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질 수 있었고, 문학과 철학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탐구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사회 속에서, 부모와 주변의 기대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고민해야 했던 청년들의 모습은, 소설 속 몬느와 프랑수아가 겪는 내적 갈등과도 맞닿아 있다.


한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프랑스 문학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주의와 상징주의가 공존하던 이 시기의 문학은 두 개의 흐름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사실주의 문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며 사회와 인간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상징주의 문학은 미지의 세계와 신비로운 감각을 강조하며, 현실 너머의 세계를 탐색하려 했다.


《위대한 몬느》 역시 이러한 문학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소설은 사실주의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프랑스 농촌의 현실과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세밀하게 포착하는 한편, 상징주의적인 색채를 가미하여 신비로운 저택, 환상적인 축제, 되찾을 수 없는 첫사랑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 든다.


이러한 문학적 특성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동경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 준다. 독자들은 몬느가 찾아 헤매는 저택과 사랑이 단순한 개인적인 기억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어떤 순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상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2048px-Henri_Alexandre_Gervex_-_Une_soirée_au_Pré_Catelan_-_1909.jpg "프레 카텔란에서의 저녁", 앙리 제르벡스, 1909년 작,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기적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축제 같은 청춘의 한 페이지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단 한 번, 기적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소설에서 몬느가 길을 잃고 우연히 찾아낸 신비로운 저택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바로 그러한 순간을 상징한다. 몬느에게 그곳은 마치 현실이 아닌 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특히 이 축제가 환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곳이 몬느가 살아온 현실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몬느가 살던 생트아가트는 작은 시골 마을로, 단조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반면, 저택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소년 시절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조차 모른 채 흘러가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그때가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몬느가 겪은 꿈같은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발랑틴 블롱도가 끝내 나타나지 않으며 축제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몬느는 이 환상의 세계에서 떠나 현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결국, 이 축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후 남은 것은, 그 순간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과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는 허망함뿐이었다.




영화 『위대한 몬느』




축제에서 몬느는 단순히 화려한 공간과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는 그곳에서 이본 드 갈레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고, 첫눈에 그녀에게 매혹된다.


이본은 몬느에게 있어, 완벽한 이상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또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면서도, 마치 저택처럼 신비롭고 손에 닿지 않는 존재처럼 묘사된다. 몬느가 이본을 사랑하게 된 것은 단순히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몬느가 평생 찾고 싶어 하는 꿈과 이상을 형상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본과의 만남이 너무나 짧았다는 점이다.


몬느는 이본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그 순간을 절대 잊지 않으려 한다. 현실에서 다시 이본을 찾기 위해 헤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녀의 모습은 희미해진다. 결국, 몬느가 찾고 있는 것이 진짜 이본인지, 아니면 그날의 감정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인지조차 모호해진다.




so-5e7e40cb66a4bde8014114fe-ph0.jpg 영화 『위대한 몬느』




이본과의 사랑이 몬느의 환상과 이상을 상징한다면, 그의 친구인 프랑수아와 프란츠와의 관계는 청춘의 덧없는 우정을 상징한다.


프랑수아와 몬느, 그리고 프란츠는 서로를 돕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관계였다. 하지만 결국, 몬느는 사랑과 이상을 좇아 길을 떠났고, 프란츠는 약혼녀를 찾아 떠났으며, 프랑수아는 마을에 남아야 했다. 한때 단단했던 우정도 시간이 흐르며 점차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끝없는 갈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함께했던 순간들은 꿈처럼 아름답지만, 이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몬느와 신비의 저택




현실로 돌아온 후의 상실감: 다시 찾을 수 없는 시간


누구나 한 번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몬느 역시 그러했다. 그는 저택을 떠난 후에도 끊임없이 그곳을 다시 찾기 위해 헤매고, 이본을 만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깨닫게 된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설령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몬느는 결국 이본과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과거의 감정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그는 결국 이본을 두고 프란츠와 함께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가 떠난 후, 이본은 몬느의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몬느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가 찾던 꿈의 세계는 이미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결국, 몬느가 찾아 헤매던 것은 장소나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소년 시절,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였던 것이다.


《위대한 몬느》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동경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누구나 마음속에 한 번쯤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으며, 아무리 애써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과거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야말로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ob_1f8884_alainfournier1913ruecassini.jpg 알랭-푸르니에



알랭-푸르니에 (본명: Henri-Alban Fournier)는 1886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주로 지방에서 보내며, 시골의 자연과 생활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기에는 파리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이 시기 다양한 문학적, 철학적 사조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문학적 감성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위대한 몬느》 한 편의 소설 밖에 발표하지 못했다. 소설이 출판되자 비평가들과 독자은 잃어버린 순수, 잃어버린 낙원을 향한 작품이라며 호평과 함께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그가 품고 있던 내면적 갈망과 깊이 닿아 있다. 실제로 소설에서 등장하는 신비로운 저택은 알랭-푸르니에가 실제로 어릴 때 경험했던 장소들과 사람들을 기반으로 한다. 알랭-푸르니에가 18세 때 만난 여성 이본 드 키유브락(Yvonne de Quiévrecourt)과의 관계는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소설 속에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재탄생한다.


알랭-푸르니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14년에 전장에서 사망하게 된다. 그의 죽음 이후, 소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현재에는 프랑스 청소년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Le_bar_de_Maxim's_par_Pierre-Victor_Galland_(A).jpg "벨 에포크", 피에르-빅터 갈란드, 1890년작




벨 에포크 시대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을 가진 표현으로, 일반적으로 1871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황금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산업이 크게 발전했고, 과학과 예술, 문학, 건축, 패션 등이 눈부시게 꽃피었다.


파리를 중심으로 인상주의와 아르누보 같은 미술, 상징주의와 모더니즘으로 구분되는 문학, 클로드 드뷔시 같은 음악 등 다양한 문화적 혁신이 이루어졌다. 더욱이 이 시기에는 전기, 자동차, 비행기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산업화가 가속화되었고, 철도가 확장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크게 변화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벨 에포크 시대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는 여전히 컸고, 부유층과 노동 계층 간의 빈부 격차도 심했다. 하지만 대체로 유럽인들은 이 시기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로 기억한다. 실제로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동경하는 시기가 벨 에포크 시기일 만큼,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소설이 발표된 1913년은 벨 에포크의 말기였다. 소설은 전쟁 전 마지막 평화롭고 낭만적인 시대의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시기에는 과거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낭만적인 감성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소설에서도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찾고, 순수한 감정과 꿈을 좇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몬느가 환상적인 파티에서 만난 신비로운 여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벨 에포크 시대 사람들이 낭만과 꿈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환으로 비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벨 에포크 시대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었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소설은 전쟁으로 인해 곧 사라질 아름다운 시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담아내는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소설은 잃어버린 시대를 향한 마지막 인사와도 같은 작품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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