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큐레이터,
요즘 프랑스 도서관과 사서

요즘 프랑스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

by 프렌치 북스토어

요즘에는 지식 컨텐츠 산업의 시작이 어쩌면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도서관 사서들은, 사람들을 위한 책을 선정하고, 또 추천하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찾아서 전달하는 역할을 오랫동안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도서관에서 다루는 지식이 지역 시민들과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다중적인 정체성은 여전히 의미 있는 행보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사서들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서기관들은 지식 보존의 역할과 함께 국가 행정을 수행했고, 중세 수도원의 필경사들은 고전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서야 인쇄술 혁명과 지식의 확산이라는 변화와 함께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19세기 공공 도서관 운동이 일어나면서 지식의 대중화라는 길이 열렸고, 현대식 도서관 시스템으로 운영 방식이 체계화되면서 사서에 대한 인식도 변화해 갔다. 특히, 미국 도서관에서는 대부분의 사서들은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선입견이나 스테레오 타입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의 사서들이 등장했다. 도서관 진화의 최전선에서 그(녀)들은 지역 (특히 프랑스에서는 작은 지역이나 동네 중심의) 지식과 문화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관리한다. 지역민을 위한 미디어 정보 교육과 이미자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 교육, 소규모 트워킹, 책을 매개로 하는 토론회, 아이들을 위한 공간,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방면의 활동을 주최하고 있다.


혹시 이런 도서관과 사서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른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제는 지식 큐레이터


과거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을 때 이제 책의 시대는 끝났다는 전망이 나왔다. 오죽하면 텅 빈 도서관(The Deserted Library)이 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도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에는 15,500여 개에 달하는 도서관들이 여전히 운영 중이고, 전국 주민의 85%가 활용하는 생활 밀착형 지식 거점이 되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정보는 이미 디지털화가 되었다. 게다가 SNS에는 새로운 정보들이 넘쳐나듯 쏟아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정보가 생산되면서 개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일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책과 지식을 분류하고 정보의 흐름을 관리해 온 노하우는 디지털 정보의 신뢰성과 품질을 검증하는 새로운 니즈에 더없이 적합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국립정보도서관학교(Enssib)의 엘리자베스 노엘은 "도서관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사서들은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정보 검색과 출처 평가 교육은 예부터 사서 직업의 핵심 업무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은 오래전부터 신문 자료를 활용한 정보 활용 교육 워크숍을 운영해 왔고, 최근에는 디지털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온라인상에서 가짜 정보의 유포(확산) 속도가 진실된 정보보다 약 6배 빠르다는 통계가 보고되기도 했다. 더욱이 프랑스 국민의 약 79%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음모론(혹은 가짜 뉴스)을 믿고 있다는 통계까지 발표되어 사회적 우려를 낳았다.


이러한 가짜뉴스의 범람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 사서들은 전국 각지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정보 해독 능력)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18년 정부가 발표한 도서관 발전 계획(Plan Bibliothèques)은 아예 가짜뉴스 대응 교육을 핵심 의제로 포함시킬 정도로 디지털 정보 분별력을 키우는데 진심이다.


문화부 산하 지역 문화국(DRAC)들은 각 도서관에 시민봉사단 청년을 받아들여 미디어 리터러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고, 각 도서관 직원들을 위한 전문 연수 과정을 개설했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사이 도서관 현장에는 사서들이 주축이 된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교육 활동들이 이어졌다. 실제로 Bpi 등 다양한 프랑스 지역 도서관들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파리 퐁피두 센터의 공공정보도서관(Bpi)에서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앙포/엥톡스(Info/Intox)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언론에 보도된 뉴스 중 어떤 정보가 사실이고 어떤 것이 조작되었는지를 직접 토론하고 판별하는 실습형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소년들의 비판적 사고와 정보 해독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멜랭(Melun)의 미디어테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언론의 목소리(Voix de presse)라는 모임이 운영 중이다. 이 모임의 참가자들은 특정 시사 이슈를 주제로 다양한 언론 보도를 함께 읽고, 각 보도의 관점, 표현 방식, 생략된 정보 등을 토대로 진실성과 편향성을 함께 이야기한다.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실습하면서 언론을 대하는 새로운 학습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리옹 시립도서관은 한발 더 나아가, 언론인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정보 제작소(La Fabrique de l’Info) 시리즈를 통해 뉴스가 생산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해부하는 새로운 비평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 시리즈는 토론과 실습을 통해 시민들이 단순한 정보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인 해석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도서관은 정보 교육을 게임 형식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소르본 대학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헬링크(Hellink) 프로그램은 인터넷에 흩어진 단서를 따라가며 가짜뉴스의 출처를 추적하는 체험형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도서관과 사서들은 가짜뉴스 대응과 정보 해석 교육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를 함께 읽고 의심하고 검토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교육 초기에는 주로 놀이, 토론, 그룹 스터디 중심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지만, 점차 전체 연령층으로 대상이 확대되는 추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이 젊은 층보다 7배나 더 자주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어르신 세대의 디지털 정보 활용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보의 진실성을 지켜내는 일이 도서관 사서들만이 해내야 하는 과업은 아니지만, 거창한 사명처럼만 느껴졌던 거대한 굴레의 작은 해결책이 일상적인 도서관 활동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도서관,

▍물리적 경계를 넘다


이제는 굳이 도서관을 직접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물리적 경계는 사라졌다. 방대한 양의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은 과거처럼 누군가의 상상이나 희망 사항이 아닌, 손 안에서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이 더 이상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게 되면서 정보의 불균형, 교육 기회의 불평등, 디지털 소외와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비영리 단체 국경 없는 도서관(Bibliothèques Sans Frontières, BSF)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짊어진 구호 활동가들'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2007년,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사회운동가 패트릭 와이즈만(Patrick Weil)의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인도적 지원에
식량, 의약품, 의복이 있는데,
왜 책은 없을까?


극한 환경에 몰린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지원은 식량, 의약품, 의복 같은 생필품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빵만으로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꿈과 희망, 어쩌면 미래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관점에서 BSF는 시작했다. 그들의 활동에는 분쟁과 재난 같이 삶의 기반이 무너진 곳에서도 지적 자극과 문화적 소속감, 그리고 꿈꿀 수 있는 미래가 필요하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국경 없는 도서관은 정보 접근 또한 인권의 일부라고 말한다. 책과 지식, 교육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힘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들이 전개하는 활동에는 단순히 책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수준을 넘어, 도서관 인프라 구축, 디지털 콘텐츠 제작, 교육 훈련,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 개발 등 폭넓은 문화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프랑스를 비롯해 아이티, 콩고민주공화국, 요르단, 이라크, 방글라데시, 말리, 콜롬비아 등 30여 개국에서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고, 유네스코, UNHCR, 국경 없는 의사회, 프랑스개발청 등과의 협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아이디어 박스(Ideas Box)라는 이름의 이동형 디지털 도서관이 있다.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이 디자인한 이 상자는 단 20분 만에 어디서든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할 수 있다.


작은 박스에는 책 분만이 아니라, 태블릿과 노트북, 충전 장치, 책과 보드게임, 교육 키트, 영화와 다큐멘터리, 디지털 콘텐츠, 위성 인터넷 장비, 자체 전력 시스템까지 모두 가방처럼 접어서 운반할 수 있다. 게대가 필요하다면 전기나 인터넷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아이디어 박스는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난민캠프에 설치되기도 했고, 학교가 무너지고 교사가 없던 곳에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교육 공간을 만들어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고, 미디어를 시청하고, 심지어는 간단한 코딩까지 배울 수 있었다.


요르단 자타리 난민 캠프에서도 시리아 내전으로 피신한 난민 아이들에게 단순한 이동식 도서관 이상으로, 정체성과 언어를 잃어버릴 위기 속에서, 글자와 역사, 어쩌면 문화까지 학습할 수 있는 회복의 발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최근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피란민을 위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루마니아와 폴란드의 접경지에서는 아이들이 전자기기를 통해 학교 교육을 이어갈 수 있었고, 성인들에게는 현지 언어와 구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작은 도서관이 활용되었다.


국경 없는 도서관의 활동은 최근 지역 도서관들이 추구하고 있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자료를 보관하고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넘어, 지역 사회에 깊숙이 연결되어 도서관을 매개로 한 공동체가 운영되는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지향점은 BSF가 난민 캠프에서의 보여준 심리 회복 워크숍, 여성 대상 문해 교육, 청소년을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인종차별 대응을 위한 다문화 독서 프로그램과 결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단발성 지원이 아닌, 현지 사서와 활동가를 교육하고 꾸준한 지원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로컬 지식 운영 시스템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런 점에서 책을 다루는 조직이 아니라, 책을 통해 자립의 씨앗을 심는 조직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도서관의 정이가 확장되고 있다.




※ 이미지 정보

1. 국경 없는 도서관의 아이디어 박스(Ideas 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