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도서관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기까
혁명의 열기 속에서 잠시 공공의 품으로 돌아온 책들은, 19세기 들어 다시금 고요한 서가 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프랑스 혁명이 도서관의 문을 열고 지식의 소유 구조를 뒤흔들었지만, 관리와 보존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더욱이 1830년대에는 지방 도서관을 대중과 소통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열린 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학술적 연구와 자료 보존을 위한 시설의 역할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이유에는 혁명기에 몰수되어 확보된 책들의 성격에 있었다. 당시 수집된 책들은 주로 신학, 과학, 역사, 철학과 같은 지식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몰수한 서적으로 도서관 내 장서는 늘어났지만, 정작 대중들이 읽을만한 책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도서관의 분위기와 기능도 자연스럽게 연구 중심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세기 중 설립된 약 24개의 지방 도서관 중 절반 가까이인 11개가 1830년에서 1848년 사이에 문을 열었는데, 이들 모두 학술기관의 성격이 강한 도서관들이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대중들을 위한 책보다는 역사와 기록 보존과 같은 자료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았다. 1821년에는 아예 기록학자와 고서학자 양성을 위한 에콜 데 샤르트(École des Chartes)가 설립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자 하는 대중들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니즈 덕택에 상업적인 열람실(cabinets de lecture)을 거쳐, 1860년대부터는 대중 도서관(Bibliothèques Populaires)이 이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다. 대중 도서관은 프랑스 교육 연맹(Ligue Française de l’Enseignement)과 같은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관리되었고, 도서관 관리의 기준을 아예 일반인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반면,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지식의 축적과 조직 면에서 눈에 띄는 성장과 혁신이 이루어졌다. 혁명으로 몰수한 수많은 장서들이 국유화되어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1818년까지 약 30년 동안 장서 수는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로 늘어나는 장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체계가 필요했다. 1874년부터 1905년까지 국립 도서관을 이끈 사서 레오폴드-빅토르 들릴(Léopold-Victor Delisle)은 방대한 필사본 컬렉션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면서 도서관의 운영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인쇄된 도서관 카탈로그를 통해서 이용자들이 도서관의 책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더불어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인식도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도서관의 모습은 건축가 앙리 라브루스트(Henri Labrouste)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1838–1850)과 파리 국립 도서관 리슐리외 부지(1859–1875)의 설계를 통해, 지식을 위한 공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유리와 철을 활용한 넓고 밝은 열람실, 그리고 기능에 따라 공간을 구분한 그의 설계는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함과 동시에, 도서관 운영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받아 들어졌다.
1832년 10월 11일, 프랑스 정부는 공공 도서관의 조직을 처음으로 공식화하는 칙령을 발표하면서, 도서관을 공공 교육부(현 교육부)의 관할 아래로 편입하게 되었다. 이는 전국에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던 도서관 관리 체계를 통일하려는 행정적 기반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1839년 2월 22일 칙령을 통해 프랑스 공공 도서관 운영의 기본 틀을 마련했고, 1897년 7월 1일 칙령을 통해 도서관의 사용 규정을 더욱 명확히 했다.
그리고 이어서 사서와 관련된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다. 사서의 임명은 지방 시장에게 독립적인 권한이 주어졌다. 하지만 당시 전국에 40곳에 존재하던 분류된 도서관(bibliothèques classées)의 경우에는 특별한 전문 자격을 갖춘 인물만이 사서로 임명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도서관 행정의 전문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19세기가 지나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 공공 도서관이 변화하게 되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공공 도서관 시스템과 운영 방식이 프랑스에도 전파되었다. 전쟁 이전까지 프랑스 도서관 운영은 책을 보관하는 박물관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면, 전후에는 이용자를 중점에 둔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 ALA)와 미국 황폐 지역 위원회(Commission for Relief in Devastated France, CARD)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프랑스 지역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활동 중에는 무료 공공 도서관 설립을 포함한 문화 복구 사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금과 인력뿐만 아니라 미국의 현대식 도서관 모델을 함께 도입했고, 도서관 서비스는 대중들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과거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현대식 도서관 시스템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용자가 직접 서가에서 책을 고를 수 있는 개가식 서가(open stacks)는 프랑스 대중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했고, 듀이 십진 분류법, 저자·제목·주제별 검색이 가능한 카탈로그, 밝고 편안한 열람 공간, 손쉬운 대출 방식 등은 기존의 권위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프랑스 도서관 문화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다.
특히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보였던 서비스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어린이들은 공공 서비스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었다. 학교 도서관조차도 잠긴 책장 속의 책장(casier dans l’armoire fermée)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아이들은 책에 대한 접근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책은 교육자의 통제 하에 엄격히 제공되었고, 책은 배워야 할 대상으로 자유롭게 읽거나 즐기는 문화로 여겨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 속에서 1924년 파리에 처음으로 즐거운 시간(L’Heure Joyeuse)이라는 어린이 도서관이 개관했다. 이 도서관은 미국의 어린이 도서관 위원회(Book Committee on Children's Libraries)에 의해서 추진된 프랑스 최초의 공공 어린이 도서관으로, 파리 5구에 위치한 생빅토르 거리(Rue Saint-Victor)에 위치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책과 만나는 경험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도록 기획된 공간이었다.
즐거운 시간은 개관 직후부터 파리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개관 첫해였던 1923년에만 10만 건이 넘는 대출 건수를 기록했고, 단숨에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서관 중 하나로 떠올랐다. 자유로운 열람, 편안한 분위기의 열람 공간, 그림책과 동화책 중심의 장서 구성, 구연동화 서비스(Heure du conte)까지 기존 프랑스 도서관과는 완전히 다른 컨셉의 서비스였다.
사회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은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문화적 실험장으로 인식되었다. 이전까지 도서관은 중산층, 혹은 고학력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면, 이곳은 모든 계층의 남녀 어린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프랑스 도서관에도 또 한 번의 위기를 안겨주었다. 많은 장서가 전쟁 중 소실되거나 약탈당했고, 지방 소도시의 도서관 중 일부는 아예 폐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프랑스는 공공 문화 복원의 핵심으로 도서관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랐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현대식 도서관 체계 구축을 목표로 문화 재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기능만을 하는 공간이 아닌, 시민들의 교양과 민주주의 교육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다시 정의하는 시도였다.
1950년대에는 공공 독서(Public Reading)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정책 문서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계층, 연령,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발상이었다. 도서관은 그 권리를 실현하는 공공 인프라로 정의되었고, 1959년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러한 철학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문화 민주주의,
도서관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말로는 '문화는 선별된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예술과 문학을 모든 국민의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공공 도서관은 학교, 미술관, 문화센터와 연계되기 시작했고,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되었다. 이 시기부터 도서관은 전시, 강연, 워크숍, 커뮤니티 모임 등이 이루어지는 지역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농촌 및 소도시 지역에도 도서관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동도서관(bibliobus)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이 서비스는 문화 접근권이라는 개념을 프랑스 전역에 널리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철학적 맥락에서 도서관은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어 갔다. 특히 1980년대부터 디지털화가 시작되고 또 다른 도서관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면서, 제3의 공간(troisième lieu)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도서관을 집도, 직장도 아닌,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동체 공간으로 기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는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을 더욱 따뜻하고 포용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아이부터 청소년, 노인, 이민자, 비문해자까지 다양한 계층의 도서관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프랑스 공공 도서관은 시민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론장,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는 연대의 공간, 정보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평등의 거점, 생애 주기별 학습과 문화 향유의 통로로서 다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위기, 인공지능, 젠더 문제, 인종차별, 사회적 분열 등 현대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를 담론화하는 장으로서 도서관이 주목받고 있다. 도서관은 책의 공간을 넘어서, 시민의 교육과 공존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 이미지 정보
1. 프랑스 국립 도서관, BnF
2. 즐거운 시간(L’Heure Joyeuse)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19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