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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

by 프렌치 북스토어

나의 아침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시작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부엌으로 걸어가 선반에서 작은 그라인더를 꺼내 커피콩을 그 안으로 쓸어 넣는다. 뚜껑을 닫고, 작은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하면 커피가 분쇄되는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으면 모카 포트를 꺼내서 보일러에 물을 붓고, 그 위에 바스켓을 올리고 방금 갈아낸 커피 가루를 쏟아 낸다. 컨테이너를 힘주어 닫고 모카 포트를 불 위에 올려놓으면 금속이 달아오르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잠시 뒤에 물 끓는 소리가 시작된다. 증기와 함께 컨테이너로 에스프레소가 밀려 나오면, 거실까지 진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찬다. 그렇게 하루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커피로 아침잠을 쫓을 필요는 사라졌지만, 나는 늘 이 단순한 과정을 반복한다. 8시 반까지 사무실에 가야 할 때나, 작은 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이나 나의 아침 풍경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변주가 거의 없는 행위. 누군가에게는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은 하루의 리듬이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반복 속에는 묘한 무게감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굵직한 몇몇 사건들을 중심에 놓는다. 눈앞에 놓인 도전, 달려가고 있는 성공, 혹은 쓰디쓴 과거의 실패, 때로는 합격, 졸업, 이후에는 만남, 연애, 결혼, 출산까지, 누군가는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출발, 또 다른 누군가는 아픔 뒤에 겪어야만 했던 순간들로 자신만의 영웅담을 만들고 늘어놓고는 한다. 그렇게 몇몇 큰 사건들로 지금 자신의 모습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현재 자신을 만든 것은 몇몇 사건이 아닐 수 있다. 하루 대부분을 채웠던 순간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알람이 울려 눈을 뜨고, 손가락을 스크롤을 올리는 시간, [3-4]번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출근길, 가끔 들르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시간이 삶의 이정표라고 말하는 한순간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자주 그들의 삶을 그려간다는 사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장 평범한 것들은
왜 기록하지 않을까?



가장 평범한 것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은 긴장도 없고, 또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 익숙한 순간들에 집중했다. 그의 작품 《보통 이하의 것들(L’infra-ordinaire)》은 우리는 왜 우리를 둘러싼 가장 평범한 것들은 기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두가 뉴스 속 사건을 전하는 것처럼 특별한 한 순간만을 기억하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일상의 층위에는 집중하지 않았지만, 페렉은 그 공백을 기록했다. 그리고 결과는 신선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가 경험하는 것, 나머지인 것, 모든 나머지 것, 그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매일 일어나고 날마다 되돌아오는 것, 흔한 것, 일상적인 것, 뻔한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 보통-이하의 것, 잡음 같은 것, 익숙한 것. 어떻게 그것들을 설명하고, 어떻게 그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어떻게 그것들을 묘사할 수 있을까?


작품 서두에 비친 그의 시선은 분명하다.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보통 이하의 것들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의 기록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익숙해서 작디작다는 의미로 소소(小少)하다고 불리는 사건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기록 방식 자체 또한 기존의 형태와는 정반대 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기록, 혹은 문학은 비범한 사건을 품고 있어야만 했다. 왕의 권위, 의미 있는 전쟁, 정치적 변화, 대재난, 발명과 발견 같이 극적이면서, 또 의미를 품고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페렉은 그 시선과는 가장 반대되는 지점을 바라보았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길, 택시의 기본요금, 도시 버스 좌석의 색깔, 신문에 실리는 날씨처럼 그 누구도 쓰지 않았고,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져 왔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특별했던 부분은 그 평범한 시간을 어떤 이벤트 같은 일로 해석하거나 미화하거나 극적인 덧붙임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디테일을 붙잡아 목록처럼 나열했는데, 실제 그는 몽수리 광장(Parc Montsouris)에서 하루 동안 지나간 버스 번호를 기록하고,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나온 설탕 봉지 브랜드에 집중했다. 현대 예술처럼 이해할 수 없는 지루한 글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의외로 명확했다.



▍사소한 기록조차 문학이 되는 순간


그의 기록이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평범함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거나, 어설프게 설명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에서 남들은 발견하지 못한 특별한 의미를 찾기 위해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로 우리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는 순간을 의식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에 집중했다.


페렉은 이러한 의미 없는 순간들에서 삶의 핵심을 짚어 냈다. 사건은 드물게 일어나지만 보통 이하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사건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지만 보통 이하의 것들은 우리를 조금씩 완성시키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 냈다. 투박한 그의 글은 작품을 소비하는 개인이 스스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익숙한 목록은 단순한 나열에서 공동의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역할했다.


그의 글은 무척 단순하다. 그중에는 카페에 앉아 들려오는 말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간 것도 있다. "커피 하나 더 주세요" "계산서 주세요" "담배 있나요?" 같은 문장들이지만, 이 하찮은 문장들이 카페에 앉아 있던 각자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의 기록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누군가의 일상 속 풍경과 맞닿아 있었고, 그렇게 그의 글은 공동의 기억으로 옮겨져 갔고, 만인의 문학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한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감사 일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매일 감사한 일 3가지씩 기록하기처럼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으로 유명해졌다. 과거 나도 잠깐 감사 일기 쓰기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로만 가득한 것 같은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고마운 사람, 그리고 감사한 순간들을 찾을만했다. 그런데 점점 쓸 일이 없어졌다. 일주일도 채우기 전에 감사의 대상과 소재가 바닥나버린 것이다. 하루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해도 도저히 감사한 일이라고는 없는 하루였다. 찾고 찾다가 결국 일면식도 없는 시간에 맞춰 도착해 준 지하철 기사님과 특별히 상냥하지도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은 말투로 계산해 주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매일 아침 5시에 문을 여는 동네 빵집 사장님께 감사의 기록을 남겼다. 그렇게 조금 더 시답잖은 감사의 기록들을 이어가다가 그만두었다.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이렇듯 의미조차 찾을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매일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들이 나 자신을 만드는 가장 정직한 일상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집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사소한 것들에 끊임없이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답잖았던 감사 일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문득, 정시에 지하철은 운행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빵집 사장님처럼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누군가에게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문학을 흔히 이야기 자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이나 의미를 확대시킨 장르로 생각한다. 그러나 페렉은 이야기의 감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관찰을 극대화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다. 과장하지 않고, 단순히 본 것을 노트에 써 내려가는 단순한 방식으로 새로운 감각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기록된 사소함이 공유 가능한 세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소한 것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알아차린다는 뜻과 같다. 편의점에서 건네받은 영수증은 며칠 지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만, 거기에 적힌 날짜와 시간은 내가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은 금세 지워지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순간, 그 발자국은 누군가의 삶에서 기억되는 한 장면으로 남게 된다.


문학은 사고와 경험과 감정을 확대시켜 주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이제는 사건이 되지 못한 것들의 무게를 알려주는 새로운 시야의 확장이라는 이유를 추가해야 할 듯싶다. 일상에서 주목해야 할 순간은 가끔 오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 그 특별함 사이에 놓인 공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페렉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같은 질문을 한다. 나에게 오늘 하루를 지탱하는 ‘보통 이하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은 그런 사소한 순간을 붙잡을 필요가 있다. 그 공백을 기록하는 순간, 보통 이하는 특별함으로 변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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