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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Oct 13. 2020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서평 -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다, 신간코너에서 책을 보았다. 굉장이 공감되는 제목이었다. 저자는 87년생. 젊은이들의 관점을 공감하고 읽어내기에 적절한 (?) 나이이겠다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왜 젊은이들이 욜로, 소확행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밀레니얼 세대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고, 그 가치가 형성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사회를 거시적 관점에서 관찰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과 이유를 설명하고 후반부에는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데 명확하지 않은 문체가 답답해 절반까지만 읽고 책을 덮었다.


절반밖에 읽지 않았음에도 밀레니엄 세대의 가치관을 잘 분석해냈기 때문에 절반만 읽더라도 읽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p. 22

우리 세대는 ‘나도 저기 가봐야 하는데, 저걸 가져야 하는데’ 같은 욕망을 느낀다. 타인이 속해 있는 화려한 현재의 이미지, 특히 소비 위에 눌러앉은 그 현란한 행복이야말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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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이미지 소비에 더 영향을 받는 듯하다. 유행이라는 문화에서 이탈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지 않나 싶다. 대부분의 경우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신이 보여줄 이미지 또는 타인이 그려낸 이미지에 감정을 소모한다.


p. 28

우리는 삶의 화려한 이미지를 믿는 만큼이나, 그러한 이미지에서 쫓겨날 가능성, 그로부터 박탈되어 소외될 미래의 어느 모습을 두려워한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나는 환각 이미지들을 이따금 흡입하는 걸 넘어서 더 온전한 삶을 바라게 되었다. 나를 더 안정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찾게 되고, 그리로 이동하고 싶어졌다. 특히 거기에는 주거 안정, 노후의 안락, 지속적인 인정과 다정한 사랑 같은 게 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그토록 ‘좇을’ 필요가 없다고 믿었던 기성세대적인 삶, 안락한 행복이 있는 가정,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일상을 바라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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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는 이미지 만큼은 도태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지 않을까. 나도 대열에 ‘합류’ 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본심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를 SNS에 공유하며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 어찌보면 수능이라는 산을 오르기 위해 10여년의 시간동안 익숙해져 있는 문화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즐기고 향유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수능 성적표를 받듯이 SNS로 알리고 비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 하다.


p. 38

밀레니얼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이 있다면 ‘이중성’ 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개개인의 삶의 경계를 엄격히 지키고 추구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삶이 바탕이 되는 사회의 공정성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려는 특성이 강하다. 이들은 삶을 자기중심으로 만들어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타인들과의 조화로운 관계도 무척 중시하며, 나아가 자기를 넘어서 타인에게 베푸는 선의나 세상에 기여하는 삶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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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은 좋게 표현한 것이고, 다시말하면 룰을 벗어나면 국물도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털끝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면 인정할 수 없다는 거부의 몸짓이다.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 또한 사회적 지위와 보이기 위한 혹은 명목상의 관계인 경우가 많다. 진솔하거나 거리낌 없는 모습보다는 타인의 시선에서 사교적이다는 평가를 위한 몸짓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p. 63

확실한 건 그들이 언제나 밝고 화려한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전시하고, 또 그렇게 전시된 이들 속에 있는 동안에만 온당한 곳에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 나는 예전부터 이를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 불러왔다. 이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음보다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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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성을 내면에서 스스로 갖지 못하고, SNS라는 가상현실에 허구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이 갖추자 못한 부분을 사실과는 다르게 꾸며서 치장하는 모습은 정신적으로 ‘불안’과 ‘인정’이 충족되지 못한 결핍상태를 드러내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p. 68

모두가 집단적 옮음을 공유하고, 그것이 편견이 되고, 나아가 그에 부합하지 않은 이들을 ‘잘못된 이’로 낙인찍고 억압하며, 집단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삶의 영역들이 폄하당하고, 다양한 가치들은 낙오자나 저신승리로 취급받는 ‘집단주의 문화’는 여러모로 밀레니얼들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다. 기존의 선후배 문화라든지 서열 문화, 군대 문화, 정답사회 같은 것들이 점차로 개개인의 삶, 각자의 취향, 개별적인 라이프스타일의 긍정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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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를 싫어한다. 하지만 꼰대 밑에서 견뎌낸 시간의 10배이상의 시간동안 배운대로 행동한다. 꼰대는 인류역사상 영원할 것이다.


p. 76

이 시대는 노력의 가치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하지만 가장 노력하는 시대인 것이다. 노력이 결코 무언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밖에는 할 게 없는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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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다. 다소 덜 불안할 뿐이다. 안정되지 못한 환경속에서 불안을 호소하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인’에게 해결을 떠넘기는 것은 구시대적인 프레임이다. 이제는 씨알도 안먹힌다.


p. 94

실제로 이런 불안은 아직 온전한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수립하기 전부터 전방위적으로 아이들의 인식구조 자체를 지배하는 듯하다. 어릴 때부터 지금 영어를 잘하지 않으면, 수학 선행학습을 제대로 해놓지 못하면, 봉사활동을 이번 방학에 하지 않으면, 이번 시험을 잘 치지 못하면 ‘인생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기묘한 압박이 끝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중략) 모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하나하나의 선택이나 평가, 결과가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위협감 자체가 무척 심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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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사회에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이 학교, 교육, 문화를 통해 겪는 모든 감정들은 고스란히 학습되고 사회에 영향을 드러낼 것이다. 무한 경쟁사회, 불안과 개인주의는 다음 세대의 더 명확한 키워드가 될 것이 분명하다.


p. 103

청년들은 더 이상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대개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의 부모처럼 혹은 그들의 부모보다 좀 더 낫게,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작은 집 하나 마련하고 이따금 호캉스나 다니면서 사는 소소한 삶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삶으로 가는 일조차 태생적으로 대부분 정해져 있고, 삶의 어느 시점에 이미 결정당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나마 그런 소박한 삶에 이르기 위한 마지막 길이 공정성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세상의 평등 대신 공정성을 택했고, 그것이 그들이 딛고 설 수 있는 마지막 대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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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은 밀레니엄 세대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이것마져 잃게 되면 더 이상 남는게 없다.


p. 115

결핍이나 상처가 우리에게 그것을 이겨낼 힘을 주고 결국에는 모든 걸 딛고 일어서게 해줄 것 같지만, 사실 한 사람의 인격, 그가 자신을 과장하는 방식, 감정을 드러내거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 등에는 이미 씻어낼 수 없는 흔적들이 모두 남아 있다. 사실 각자의 성격이란 그렇게 상처로 얼룩진 지표면 같은 느낌이 있어서 언젠가부터는 누군가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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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심리학을 상당히 공감하고 인정한다.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용과 같이 욕망을 가진 뱀은 나올 수 있지만, 건강한 자아와 실력을 갖춘 용이 나오는 것은 실제로 극악한 확률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생각과 습관, 그리고 가치관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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