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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통 Apr 02. 2018

회사라는 도축장 속,
고기 등급 'C'의 의미

나는 A등급일까 C등급일까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올해도 나의 등급을 확인할 때가 왔다


마치 도축장에서 고기 등급을 매기듯. 

나는 지난 1년 동안 어떠한 육질과 마블링으로 회사를 다녔을까? 복권을 긁듯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클릭한 인사평가 시스템에선, 선명한 글씨로 ‘C’라는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1++ 등급 한우가 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리저리 출산시키고 육질이 질겨진 암소가 된 듯 한 기분에, 바로 담배와 라이터를 챙기고 일어난다.



2년째다. 

2년 연속으로 나는 ‘C’ 등급 판정을 받았고, 대리 진급 과정에서 2년 연속 진급 누락을 하는 희대의 사건을 경험하고 말았다. 덕분에 회사 직급체계 상 4년이던 사원 생활이 6년으로 불어났고, 나는 ‘사원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야 말았다. 

누가 그랬던가? 대리 진급은 그냥 얌전히 숨만 쉬고 다녀도 다 시켜준다던데, 무엇이 나의 고기 육질을 그렇게 질기게 만든 것 일까. 



매년 인사평가 시즌엔 각종 회식으로 회사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회사 근처 식당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넥타이를 머리에 두른 직장인들이 퇴근 후 모여서 술잔을 부딪혀대기 바쁘고, 진급자들은 진급 턱이란 명목으로 한 달 월급을 술집에 탕진한다. 

나 역시 진급 대상자였지만 2년 연속 진급 턱을 안 내게 되었으니, 


난 역시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 해는 조용했다. 


“김대리, 축하해! 진급 턱은 언제 쏠 건가? 날 잡아야지?”


라는 말이 나와야 했지만,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2년 진급 누락으로 나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들이 먼저 대리를 달았지만, 그 들도 소리 내서 본인의 기쁨을 표출하지 못했고, 진급 회식 역시 생략되었다. 뭐 나에게 얘기 안 하고 그들만의 축배를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참으로 애매한 1년을 보냈다. 

나에게도, 나보다 먼저 진급한 후배들에게도. 일단 호칭 자체가 굉장히 어색해졌다. 직급상으론 후배들을 대리님으로 불러야 했고, 그들도 나를 사원님이라고 불러야 했지만, 그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연예인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나보다 잘 나가면, 그게 선배고 형이라고



팀장님은 나를 따로 불러 면담을 진행하였고, 엎질러진 물을 애써 수습하듯 다독였다.  

“이해하지? 올해 진급 대상자 상 어쩔 수 없는 결과였어. 내년엔 반드시 진급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힘써볼게”  

덤덤하게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덤덤한 ‘척’을 위해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전 괜찮아요. 저는 진급, 성과 같은 거에 목매는 스타일 아니에요~” 


나의 대답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쿨한 사람? 쿨한 척하는 사람? 

아니면 회사에서의 성과, 성공이란 원초적 욕구를 초월한, 그 이상의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사람? 



나는 실제로도 회사 생활의 목표를 이 집단에서의 성공 및 임원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입사 후의 회사생활에 대한 목표가 없었던 것 같다. 대기업에 입사를 했을 당시, 주변에선 축하의 말과 함께 ‘열심히 해서 사장까지 올라가야지?’라는 이야기를 했고,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대기업 신입사원은 연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하기 바빴지만, 


사실 ‘대기업 입사’ 자체가 목표였던 수많은 취준생들 중 하나였을 뿐.  



입사라는 목표를 이룬 후,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성공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경험하는 회사 생활이 신기함과 동시에 막연한 기대감으로 피동적인 회사 생활을 했을 뿐. 알고 보면 그 피 튀기는 회사라는 경쟁 체제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뒤쳐짐이라는 것을 경험하기엔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했던 사회 초년생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끝없는 경쟁 속에 자라난다. 

반에서 1등 해야 하고, 남들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성과가 곧 직급이라는 명예와 연봉이라는 돈으로 직결되는 이러한 경험은 낯설기만 하다. 대기업 입사라는 산만 넘으면 평지가 펼쳐질 줄 알았지만, 그 후 진급 누락이라는 더 큰 산을 직면하게 됐을 때, 준비가 되지 않은 다리는 힘이 풀리고 만다.  


2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난 후, 

이제야 저 멀리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많은 취준생들이 대기업 입사를 꿈꾸고, 밤낮없이 취업을 위한 노력으로 바쁘다. 동네 커피숍만 가도 각종 취업 스터디로 북적이는데, 그들을 보면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입사 후에도 수 없는 산들이 있을 텐데, 저들은 과연 그 산들을 오를 준비가 되었을까?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일까?”  


“회사 생활이 말이야 녹록지 않아~ 정신 바짝 차려야 해~” 하는 꼰대 같은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입사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은 ‘C’ 등급의 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목표가 필요하다. 



그냥 입사했으니 됐고, 출퇴근에 맞춰 ‘그냥’ 다니는 것이 아닌. 그것이 회사에서의 성공, 연봉이 아닐지라도,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 또는 경험할 것. 목표하는 바를 이룬 한 해였다면, 

회사 모니터에 보이는 인사 평가 ‘C’ 등급 안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누군가는 진급 누락을 겪을 것이고, 누군가는 ‘C’ 등급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도 나 자신에게 등급을 매길 필요가 있다. 

나는 A등급일까, C등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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