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한동안 한국 영화계를 장악했던 장르는 정치색이 짙게 들어간 범죄 액션물이었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장르물의 범람은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안기는 법, 그런 와중에 개봉한 <불한당>에서는 오리지널 느와르물의 냄새가 풍긴다.
꽤 오랫동안 최근 한국 영화에서는 시각적으로, 특히 연출에 있어 뛰어나다고 할만한 작품이 부재했다. 하지만 비교적 짧은 필모에 느와르 비슷한 장르의 연출 경력조차 없는 변성현 감독은 의외의 번뜩임을 선보이며 영화에 시각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선사한다. 적절한 장면에서의 다채롭고 빠른 화면전환과 순간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디테일한 연출은 물론 수차례 현실과 과거를 이동하는 장면들 또한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백분 긴장감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액션신에서 포인트를 찍어주는 카메라 무빙과 최근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아름답게 쓰인 빛의 활용은 <불한당>이 칸 영화제에 초대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설경구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무뎌진 듯하다. 황정민, 이병헌, 송강호 등 걸쭉한 남배우들이 알찬 필모를 채우는 동안 설경구가 여기저기 골목길을 서성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설경구의 재능과 깊이가 함께 헤맨 건 아니다. 그가 도전한 수많은 배역만큼 그의 연기는 담가지고 재련되어 날카로운 칼처럼 관객들의 가슴을 찌른다. <불한당>에서 임시완의 연기가 일취월장했다고는 하나 설경구가 없었다면 영화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만큼이나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허탈함을 한 얼굴에 담아내는 배우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곱상한 외모, 크지 않은 키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 <불한당>에서 보여준 임시완의 연기는 단연 훌륭했다. 설경구가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감정을 눌러내며 표현했다면 임시완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터뜨리며 연기해야 했다. 둘 다 쉬운 연기는 아니지만 후자는 분명히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연기다. 그리고 임시완은 기대치를 충족하는 것 이상으로 그 모든 순간들을 연기해낸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되는 임시완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가 왜 충무로의 기대주인지를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앞서 말한 대로 <불한당>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정통 느와르 영화라고 부를 만한다. 등장하는 인물부터 이야기의 흐름까지, 중심 메시지 외에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흐르는 영화는 주인공 한재호와 조현수를 중심으로 인물 간의 배신과 믿음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그 과정 중에 어느 정도의 기시감은 피할 수 없으나,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에는 홍콩 느와르의 향기와 한국식 느와르의 향기가 적절히 섞여 꽤 흥미로운 향을 풍긴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사건이 전개되는 순간마다 최소한으로 충족되는 개연성과 비교적 어렵지 않게 마련된 터닝포인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온전히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만족스러웠다.
결론적으로 <불한당>은 120분을 투자하기에 아깝지 않은 영화다. 물론 마지막 시퀀스에서 느려지는 템포에 대한 아쉬움, 크게 두 번의 기승전결로 나뉘어 전개되는 스토리를 따라가기 위한 집중력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영화 전체를 봤을 때 충분히 유지되는 흐름과 훌륭한 조연들의 활약, 청불에도 불구하고 잘 조절된 수위까지, 마이너스 요소보다는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더 많은 영화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무엇보다 최근의 한국 영화에서 끊임없이 느껴지던 저렴한 기시감과 엉성한 스토리, 캐릭터라이징에 비해 확고하게 다가오는 배역들과 힘 있게 치고 나가는 서사는 충분히 영화를 가치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