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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l 02. 2017

옥자, 현재진행형의 비극

column review

Intro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 봉준호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여전하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엿보였던 번뜩이는 재치와 찌르는 듯 날카로운 연출은 줄어든 것 같아 일면 아쉽기도 하다.


스토리텔러의 면모

감독들은 연출에 있어 각자만의 고유한 특색들을 가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경우 물 흐르는 듯한 내러티브 속에 날 선 듯 관객들의 마음을 찌르는 스토리텔러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펄떡이는 캐릭터들 간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일으키는 경쾌한 마찰음이 들리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힐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었다. 이번 <옥자>역시 과감하게 생략할 부분은 생략하고 집중해야 할 시퀀스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봉준호 특유의 스토리텔러적 역량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강약중강약의 완급조절이 남달랐던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조금은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납치된 옥자를 찾아 떠나는 미자의 모험은 분류상 스릴러도 액션도 아니기에 장르에서 오는 밋밋함이야 어쩌겠느냐만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봉준호 특유의 날카로움은 많이 무뎌진 느낌이다.

스토리텔러


안정적인 그래픽, 선을 넘지 않는 서사

600억이라는 제작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옥자>가 선보이는 옥자와 각양각색의 CG 장면들은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한 장면 한 장면 수놓은 듯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상들은 관객들에게 크리처물의 묘미를 선사한다. 한편 인간의 탐욕스러움과 이기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서사는 영화의 12세관람가 등급과 톤 앤 매너를 철저히 따르는 듯 결코 일정 수준의 선을 넘지 않으며 시각적인 불편함은 끝내 지양한다. 이런 서사의 구성은 일면 지루함을 배가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지만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 함으로써 오히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의미한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막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안정적


다채로운 배우들

글로벌 프로젝트답게 틸다 스윈튼을 필두로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옥자>는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등 주조연진의 활약이 두루 만족스럽다. 하지만 미자 역의 안서현은 준수한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워낙 대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맡은 주연이다 보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봉준호의 페르소나라고도 불릴만한 변희봉의 경우 강력한 캐릭터 소화력을 바탕으로 영화 초반의 어순선 할 수 있는 기류를 단번에 잡아채는 기염을 토하고 1인 2역의 틸다 스윈튼은 영화의 오프닝부터 결말까지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며 결론적으로 영화가 포착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 그 자체가 된다. 오히려 영화의 표면적 주연인 옥자는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역할, 그 이상의 자리로 나오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배우들


현재진행형의 비극

결론적으로 <옥자>는 슈퍼돼지 옥자를 통해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을 얘기한다. 영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비극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으로 잉태한 GMO푸드와 살육당하는 동물들, 그리고 각자의 이익만을 위해 질주하는 개개인과 단체들이지만 그 내면에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보다는 대기업의 CEO부터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굶주리는 누군가까지의 과정과 상황 전부가 비극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봉준호가 역설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120분의 난장판이 끝나는 지점의 인물들이 선보이는 그 장면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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